노래하고 춤추며
진흙탕에서 보낸 3일

[김작가 칼럼]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남긴 것

등록 2006.08.07 14:43수정 2006.08.0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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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7월 28일부터 3일간 인천 송도에서 열렸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우리 관객 문화의 수준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지난 7월 28일부터 3일간 인천 송도에서 열렸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우리 관객 문화의 수준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 아이예스컴


악천후도 그들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마존 늪을 방불케 하는 땅도 그들의 열정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지 못했다. 지난 7월 28일부터 3일간 인천 송도에서 열렸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우리 관객 문화의 수준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또한 한국의 공연 문화가 한 발자국 전진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프란즈 퍼디넌드, 스트록스, 플라시보, 블랙 아이드 피스 등 2006년 현재 세계 음악계를 리드하는 트렌드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게 펜타포트의 첫 번째 의의였다. 그동안 국내에 록 페스티벌이 없었던 건 물론 아니다.


인디 음악의 발아기였던 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록 페스티벌이란 이름의 행사는 소란, 땅밑 달리기 같은 크고 작은 행사를 거쳐 현재는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처럼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페스티벌들이 있다.

세계적 밴드들이 한국 찾지 않는 이유

a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포스터.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포스터. ⓒ 아이예스컴

그러나 대부분 국내 뮤지션들 위주로만 섭외된다거나 동시대의 음악적 트렌드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장르의 해외 뮤지션들 중심의 라인업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펜타포트 페스티벌은 현재 영·미의 음악저널에서 스포트 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21세기의 뮤지션들을 대거 볼 수 있었다.

한국의 대중음악 수용자들은 펜타포트를 통해 동시대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성기가 지나서, 즉 몸값이 떨어진 후에야 한국에 왔음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밴드들이 한국을 찾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이 형편없이 작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음반 시장에서 가요와 팝의 점유율은 9:1 정도다. 실질적으로 국내 음악이 독점하고 있는 구조다. 게다가 갈수록 음반 시장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으니 해외에서 난다긴다 하는 아티스트의 앨범도 한국에선 사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일본은 물론이고 태국, 인도네시아까지 스케줄에 있으면서 한국은 쏙 빼놓고 가는 뮤지션들이 많다(팝 시장이 위축되면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차후 논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국내에도 적지 않은 열성 팬을 보유하고 있는 라디오헤드의 경우, 시장이 너무 작기 때문에 한국에선 공연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그들을 섭외하고자 했던 기획사 측에 밝힐 정도였으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팬타포트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컸던 게 사실이다. 물론 공연은 적자가 났다. 그것도 꽤 큰 폭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한하는 뮤지션들마다 큰 감동을 받았던 한국 관객들의 열정이 펜타포트의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비 때문에 2000~3000명의 관객밖에 없었던 첫 날의 헤드라이너, 스트록스는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앞을 지키던 팬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예정에도 없던 노래를 했다. 공연 막판에 폭우가 쏟아지자 자기 머리에 물을 붓고 관객과 똑같은 입장에 서려고 했다. 플라시보와 프란즈 퍼디난드, 블랙 아이드 피스 또한 "다음에 한국에 꼭 다시 오겠다"는 말을 거듭 남기고 갔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열정적인 관객 덕이다. 얌전하기 짝이 없는 일본 관객에 비해, 한국 관객들은 공연 내내 소리 지르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추고 뛴다. 전 세계 관객 문화의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보면 된다. 펜타포트는 그런 자랑스러운 관객 문화의 집대성이었다.

a 펜타포트는 자랑스러운 관객 문화의 집대성이었다.

펜타포트는 자랑스러운 관객 문화의 집대성이었다. ⓒ 아이예스컴


국내 뮤지션엔 리허설 시간 없다?

펜타포트 페스티벌은 일상에서부터 완벽히 벗어나 있는 시간이었다. 허허벌판에 세워진 무대와 캠핑촌에서 벌어졌기에 불편한 화장실과 세면시설, 밟으면 푹푹 꺼지는 진흙탕에서 3일을 보내야했다. 그것도 10만원이 훌쩍 넘는 거금을 주고. 하지만 2만여명까지 모였던 관객들의 표정에는 그런 열악한 상황에 대한 불만보다는 3일 내내 음악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 넘쳐났다.

록 페스티벌에서 얻어가는 건 편안한 휴식이 아닌, 생활의 중심에 들어와있는 생생한 음악들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 저녁, 시간을 쪼개어 실내에서 벌어지는 기존의 공연 문화와는 차원이 다른 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록 페스티벌의 진정한 묘미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는다. 우선 해외 뮤지션에 비해 국내 뮤지션들이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았다. 이번 라인업의 대부분을 채운 인디 밴드들은 더했다. 개런티는 둘째치고서라도, 자신들의 역량을 100% 발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충분한 리허설이 필요했다.

그러나 계약과정에서 국내 밴드에게는 '리허설 시간 없음'이라는 조건이 달렸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런 문제 때문에 간판급 라이브 밴드들이 대거 참가하지 않았다는 말도 들린다.

국내에서 K리그 팀과 프리미어 리그 팀이 시합을 하는데, 국내팀이 홈 어드밴티지는커녕 오히려 핸디캡을 안고 뛰어야 하는 격이다. 록 페스티벌은 평소 음악에 대해 무관심했던 사람들도 음악의 매력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다.

펜타포트 페스티벌이 잘나가는 해외 밴드들 뿐만 아니라 국내 밴드들을 발굴하고 알릴 수 있는, 진정한 음악의 제전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참가팀에 상관없이 여름의 황금 시즌을 펜타포트라는 이름에 맡길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a 28일, 피아의 우중 공연 무대.

28일, 피아의 우중 공연 무대. ⓒ 아이예스컴


첫 걸음 뗀 펜타포트, 내년엔 더 나은 모습으로

그리고 또 하나. 비록 모든 걸 감수하고 온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편의시설이 너무 부족했다. 예상보다 적은 관객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세면시설, 화장실, 편의점에는 언제나 기나 긴 줄이 있었다.

만약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몰렸다면 상상하기도 끔찍한 풍경이 벌어졌을 것이다. 록 페스티벌을 휴양지로 생각하고 오는 사람이야 물론 없겠지만 공연을 보는 시간외에 낭비하는 시간은 적을수록 좋다. 인지상정 아닌가. 그런 기본적인 배려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펜타포트는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뗐을 뿐이다. 폭우로 인해 아예 공연 첫 날 행사가 취소됐던 1999년의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을 생각한다면 장족의 발전이다. 이번 행사를 공동 주최한 한 방송국의 관계자는 환한 표정으로 "비록 적자지만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그곳에 모여있던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 감정을 느꼈으리라. 그 희망들이 모여 펜타포트가 세대에서 세대에서 이어지는 축제가 되기 바란다.

20대의 여름을 펜타포트에서 보냈던 청년이 후일 아버지가 되어 아들에게 '내가 젊었을 때는 누가 나왔었지' 하면서 미소 지을 수 있는 축제가 되기 바란다. 그런 경험을 가지지 못한 우리가 고작해야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기록 영상을 보며 부러워하는 일이 우리 다음 세대에게는 없기를 바란다. 누구보다 뜨거운 한국의 청춘들이 있는 한 실현 가능한 바람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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