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아닌 할리우드에서 부활한 앨 고어

[해외리포트] 주연 맡은 환경 다큐 <불편한 진실> 의외의 선전

등록 2006.08.08 16:38수정 2006.08.0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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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환경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에 출연하여 호평을 받고 있는 앨 고어 전 부통령.

환경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에 출연하여 호평을 받고 있는 앨 고어 전 부통령.

앨 고어가 돌아왔다. 그것도 아주 화려하게.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안타깝게 고배를 마시고 정계를 떠난 지 어언 6년만이다.

그런데 정치인으로서 돌아온 것이 아니다. 앨 고어는 '할리우드 스타'로 돌아왔다. 어엿한 '주연 배우'다.

앨 고어가 '주연'을 맡아 열연한 화제의 영화는 바로 환경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

그가 '주연'한 이 영화가 요즘 미국에서 놀랍게 선전하고 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이고 5월 24일 미국 전역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8월 1일자로 수입 2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에 비하면 별볼 일 없는 수입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1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다큐멘터리로서는 대단한 성적이다.

이 사실은 미국에서 다큐멘터리 영화가 올린 역대 성적표를 보면 확연해진다. 현재 <불편한 진실>의 수입 성적은 <수퍼사이즈 미>를 제치고 역대 다큐멘터리 4위다. 3위는 21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린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

게다가 영화만이 아니다. 앨 고어가 영화에 곁들여 낸 책(companion book)까지 선전에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 아예 <뉴욕타임스>가 집계한 페이퍼북 베스트 셀러 1위까지 거머쥐었다(8월 5일).

환경 다큐멘터리가 재미 있다?

a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의 포스터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의 포스터

도대체 이 영화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잘 나가는' 것일까? 앨 고어의 '스타 파워'? 물론 앨 고어의 인지도를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이 다큐멘터리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불편한 진실>은 앨 고어가 지난 몇십년간 전세계를 돌며 환경을 주제로 펼친 강연회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것이다. 특히 영화에서는 최근 몇 십년간 심각하게 가속화 된 지구 온난화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상 기후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뻣뻣하고 매력 없기로 소문난 전 부통령이 환경 문제를 주제로 슬라이드를 보여주는 것이 영화라니, 딱딱하고 재미 없을 것이라고 짐작하면 오산이다.


1시간 35분짜리 이 영화는 상당히 재미 있다. 물론, 블록버스터 식의 말초적 재미는 아니다. 치고받고, 뒷통수를 치는 반전의 묘미 같은 것은 이 영화에 없다. 그러나 블록버스터가 갖지 못한 재미를 이 영화는 한껏 지니고 있다.

사진 슬라이드와 과학 수치를 담은 그래프 뿐 아니라 만화라든가 멀티미디어, 앨 고어의 삶, 그의 내밀한 개인적 고백, 그리고 유럽과 중국 등을 돌며 한 강연회의 삽화 등이 영화에 짜임새있게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는 재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우리의 삶, 지구와 인류의 관계에 대한 성찰과 각성이다.

인류가 산업화라는 기치 하에 미래의 우리 자손이 살아갈 삶의 터전이기도 한 지구에 얼마나 패악질을 하고 있는 지를 앨 고어는 쉽고 명료한 말로 풀어낸다. 그리고 과학적 증거를 보여준다.

"고어의 강연 들으니 영화화 해야겠다는 생각 들더라"

a 앨 고어가 작년에 미국을 강타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앨 고어가 작년에 미국을 강타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2004년 뉴욕에서 열린 고어의 환경 강연회를 본 영화 관계자 로리 데이비드는 강연회를 영화화 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연락한 감독이 데이빗 구겐하임. 그는 처음에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그러나 직접 앨 고어의 강연회를 본 후 180도 태도를 바꾼다.

"한 시간 반의 강연회가 끝나자 나는 지구 온난화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할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앨 고어 역시 마찬가지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 자신의 강연회를 영화화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게 어떻게 영화가 될까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2005년 여름, 영화 제작이 시작된 후 그는 영화에 전력투구했다.

이 영화를 위해 그는 강연회를 본따 만든 세트와 카메라 앞에서 '연기'도 해야 했다. 그리고 다른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영화가 나올 무렵에는 방송 매체를 돌며 열심히 영화 홍보도 했다. 또 큰 도시들에서 영화 상영에 맞춰 팬들을 직접 만났다. 강행군이었지만 피를 말리는 대선 캠페인을 경험한 앨 고어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영화 홍보를 하는 것과 대선 캠페인 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악수하고 끊임없이 인터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 캠페인에 비하면 영화 홍보는 휴가나 마찬가지다."


앨 고어가 영화의 성공을 위해 종횡무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느 할리우드 배우들과 다를 바 없어보이지만 그들과 다른 점도 있다. <불편한 진실>을 배급한 파라마운트 사의 존 레슬러의 말이다.

"앨 고어의 강점은 그가 자신이 홍보하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화가 나온 타이밍도 더할 나위없이 적절하다. 점점 자주 찾아오는 지구촌의 이상 기온. 미국만 놓고 봐도 2004년 플로리다의 허리케인 피해, 2005년 카트리나 재난 그리고 올해는 살인적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리고 치솟는 유가. 공해를 내뿜고 지구 온실화를 불러일으키는 에너지 사용을 자제하고 대체 에너지를 찾아야 하는 당위성은 앨 고어가 환경 문제를 '인류의 도덕적 문제'(moral issue)라고 갈파하게 한다.

물론 모두가 앨 고어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특히 공화당이 장악한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애써 환경 문제를 회피하고 마치 환경을 생각하면 산업 발전에 지장이 있을 것처럼 홍보한다.

영화로 성공한 앨 고어, 이젠 어디로?

a 서점 베스트셀러 칸에 진열된 앨 고어의 책. 평자들 중에는 이 책이 영화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서점 베스트셀러 칸에 진열된 앨 고어의 책. 평자들 중에는 이 책이 영화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 윤새라

정치인으로서의 앨 고어는 미국에서 정말 인기가 없었다. 경직되어 있고, 과장이 심하고, 일반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하고 등등. 그래서 2000년 대선에서 똑같이 부잣집에 명문가 출신이어도 편안하고 맘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부시에게 부동층 표를 많이 뺏겼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통해 앨 고어의 이미지가 변하고 있다. 21세기 초엽의 환경 전문가에 '할리우드 스타'로서 그야말로 '쿨'한 인기인이 된 것이다.

영화 자체도 정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대학교 때부터 환경 문제에 천착한 앨 고어의 모습은 정치인으로서의 일관성이란 미덕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킨다. 또한 현 부시 행정부가 계속 딴지를 걸고 있는 쿄토 의정서에 대해 직접적인 공세를 퍼붓는 등, 환경 문제에 연결된 정치적 담론이 깔려있다.

사정이 이러니 당연히 앨 고어가 정계로 복귀할 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앨 고어 자신은 "현재로서는 다음 대선에 출마할 계획이 없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출마하지 않겠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여지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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