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15년을 사셨다는 할머니, 수박과 커피를 주셨다.조태용
마을에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니 개울가에 할머니 한 분이 보인다. "할머니"하고 소리쳐서 불렀더니 계곡물 소리가 요란해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계곡으로 내려가 "이 마을에 사시냐"고 물었더니 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장마철이라 비가 많으니 계곡물도 많아져서 콸콸 거리는 물소리 때문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손짓을 하면서 따라오라고 한다. 할머니를 따라 가보니 방 한 칸과 부엌이 있는 조그만 한 임시가옥이 나온다.
"할머니. 여기 사세요?"
"응, 여기서 15년이나 살았어."
"산에 살면 안 무서우세요?"
"무서우면 어찌 살아. 여기가 마음 편하고 좋아서 사는 건데."
할머니는 어제 누군가 제사를 지내고 준 수박이라면서 수박을 건넨다. 그러면서 "커피 한 잔 할 거야"라고 물으셨다. 그러면서 "블랙 잡숴, 그냥 먹어?" 이렇게 덧붙이셨다. 커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왕 먹을 것이면 취향에 맞게 먹는 게 좋다면서 선택하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애써 취향까지 생각해 준다고 하는데 보통을 달라 할 수 없어 블랙을 달라 했다.
할머니는 병이 나서 여기 저리를 떠돌다가 이곳에 정착해서 사신 지 15년이 되었다. 연세는 60이고 45살에 이곳에 들어왔다. 할머니의 고향은 신안군 섬 마을이고 22살에 28살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과 결혼해 아이 넷을 낳았다.
그러나 아이들을 직접 키우지는 못하고 본인은 여기 저기 떠돌아 살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몸이 아파 병원에 가도 고치질 못해서 알아보니 신병이 걸렸다는 소리를 들었다. 속세에 살지 못하고 승려가 되어야 하는데 여자고 자신이 미련해서 그것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작정을 하고 산에 들어가 100일 기도를 드렸는데 기도를 하는 도중에 "몸의 때는 손으로 벗기면 되는데 마음의 때는 무엇을 벗겨야 하는가?"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 뒤로 지리산에 들어와 마음의 때를 벗기기 위해 기도를 하면서 살고 있다. 자식들이 한 달에 조금씩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가끔 기도하러 오는 무속인들의 밥을 해주거나 해서 먹고 산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사람이 1목숨이고 돈은 2목숨이었는데 요즘은 돈이 1목숨이고 사람 목숨이 2목숨이라면서 돈 돈 하는 세상도 싫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