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야스쿠니, 대통령부터 제대로 봐야한다

군국주의 일본 막지 못하면 아시아 평화는 풍전등화

등록 2006.08.18 11:47수정 2006.08.1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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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 입구를 오가며 일본군국주의의 부활을 염원한 극우파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 입구를 오가며 일본군국주의의 부활을 염원한 극우파 ⓒ 김기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3박4일의 일정 동안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을 밀착 취재했다. 도쿄에 도착해서는 여장을 풀 새도 없이 바로 행사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행사장 주변은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일본 극우단체들은 행사장 주변을 집요하게 찝쩍거렸다. 그리고 모두 저녁도 거른 채 바로 돌입한 촛불시위 때에도 간헐적으로 나타나 확성기 테러를 감행했고, 일본 경시청은 막는 척만 할 뿐 우익들이 하는 것을 오히려 보호하는 형국이었다.

3국의 공동시위에서 대만 원주민들의 행동은 발군이었다. 비록 숫자는 적지만 오랫동안 조직되고 훈련된 흔적이 역력히 보였다. 게다가 그들을 이끄는 미모의 리더 가오진 쑤메이는 대만의 잔 다르크라고 불러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열 사내가 덤벼들어도 손끝 하나 꺾지 못할 듯한 당찬 기세와 투지를 시종일관 유지하였다.

a 야스쿠니와 태평양전쟁 당시 복장으로 행진을 하는 일 극우파

야스쿠니와 태평양전쟁 당시 복장으로 행진을 하는 일 극우파 ⓒ 김기

3국의 대표들이 대부분 지식인층이라면 가오진 쑤메이의 경우 어린 나이에 가수로 시작해서 영화배우 그리고 입법의원까지 이어진 인생역정에서 얻어진 삶의 바탕에서 우러나오는 그야말로 실천적인 운동가였지만 누구보다 명석한 판단과 뚜렷한 상황 분석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녀는 한국, 일본의 집행부가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15일 새벽 고이즈미를 물리적 저지에 나섰다.

대부분 언론들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서 공동행동 내부는 복잡한 감정들이 뒤엉켰다. 그러나 70년대 전공투 이후 일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끈한 시위에 전 일본에 분산된 야스쿠니 및 일본군국주의 반대세력 등이 하나의 행동강령을 갖게 되는 중요한 계기를 맞고 있다.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느끼던 야스쿠니와 일본 극우세력들의 문제는 단지 도쿄에 온 것만으로도 실감의 차이가 대단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의 특성상 야스쿠니 내외부의 일본인들 표정은 어찌 보면 냉랭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차분해 보였다.

a 야스쿠니 입구에서 사미센을 연주하면서 태평양전쟁 때의 군가를 부르는 일본인

야스쿠니 입구에서 사미센을 연주하면서 태평양전쟁 때의 군가를 부르는 일본인 ⓒ 김기

일본 한 언론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찬성보다 반대가 월등히 많다. 그러나 그것이 시사하는 내용이 무엇이냐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를테면 일왕의 메모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일본인 및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동포들의 시각이 가장 설득력을 가져 보인다. 이미 일본 학자들에게 일왕의 메모는 다 알려진 비밀인데 그것의 공개로 인해 마치 일왕이 전쟁을 싫어하는 듯한 고도의 전략을 배후에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한중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사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일본은 1945년 패전선언을 종전선언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일왕에 의해 시작된 침략전쟁임에도 불구하고 그 선언으로 인해 일본을 전쟁의 고통에서 구해낸 것이 일왕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논리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얼마 전 공개된 메모 역시 일왕을 전쟁책임에서 배제시키려는 의도가 숨겨진 것이라는 점이다.

a 야스쿠니 내에 설치된 유수칸 초입에 전시된 태평양전쟁에 사용된 전투기. 마치 유리창을 뚫고 금세라도 하늘을 날아 이웃나라들을 향해 총알을 퍼부을 태세다

야스쿠니 내에 설치된 유수칸 초입에 전시된 태평양전쟁에 사용된 전투기. 마치 유리창을 뚫고 금세라도 하늘을 날아 이웃나라들을 향해 총알을 퍼부을 태세다 ⓒ 김기

이렇듯 일왕 감싸기는 정부와 보수언론들의 손발 잘 맞는 합작으로 지속되고 있다. 일본 언론은 이번 13일부터 시작된 한국 대만 일본 3국의 도쿄 연합시위에 대해 시종 열띤 취재를 벌였다.


그러나 한국언론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지만, 막상 보도된 것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일본 입장에서는 자신들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일본정부, 치밀한 역사왜곡으로 일왕 책임 회피

좀처럼 연대를 하지 못하는 일본 내 운동단체들이 이번 공동행동의 시위성과로 연대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현지 분석이다. 여기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일본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 언론들의 태도이다. 물론 이번 주말 KBS <일요스페셜>을 통해 공동행동의 일본 활동이 상세히 보도되기는 하겠으나 그 외 대부분의 언론들은 아예 관심조차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의문이다.

또한 한국정부의 반응도 대단히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도쿄에서는 강하게 일었다. 한 동포는 "언젠가 일본이 다시 한반도를 침공했을 때에도 유감스럽다는 말로 항의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8·15를 맞아 전국 각지에서 야스쿠니를 찾은 일본국민들과 야스쿠니의 유수칸을 살펴본다면 결코 유감스러운 것으로 끝날 수 없다는 것이다.

a 최근 야스쿠니를 대체할 국립추도시설로 떠오른 지도리 가후치 전몰자묘역

최근 야스쿠니를 대체할 국립추도시설로 떠오른 지도리 가후치 전몰자묘역 ⓒ 김기

야스쿠니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의 상징이며 그 핵심이다. 야스쿠니에 합사된 A급 전범만이 문제가 아니라 야스쿠니의 진정한 문제는 한국 2만1000명과 대만 2만8000명의 희생자가 강제로 합사된 사실이다. 특히 한국의 입장에서는 조선시대 일본이 일으킨 양란의 주범들이 모두 야스쿠니에 합사된 점이 중요하다.

또한 최근 야스쿠니 쟁점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로 제기되고 있는 지도리 가후치(전몰자묘역)의 국립추도시설화 제안도 결코 단순히 바라볼 사안은 아니다. 이곳은 그동안 야스쿠니와 달리 일왕과 고이즈미 등이 8월15일에 참배하고 있는 곳이다.

15일 지도리 가후치를 찾았을 때에도 일왕의 화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에 안치된 35만 명의 유골들 또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이라는 점과 이 곳이 바로 야스쿠니와 길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공동행동은 우선 일차적으로 야스쿠니에 합사된 한국, 대만 희생자들을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야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번 공동행동한국위원회가 만들어 간 단체 티셔츠 앞면에는 그런 의미로 귀혼(歸魂)이란 한자를 큼직하게 써넣기도 했다.

일본 국국주의 부활...시간문제

a 지도리 가후치 분향소. 뒷편으로 일왕이 보낸 조화가 참배객들의 절을 받고 있다

지도리 가후치 분향소. 뒷편으로 일왕이 보낸 조화가 참배객들의 절을 받고 있다 ⓒ 김기

그러나 야스쿠니 합사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그와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이 또 하나 있다. 도쿄 내에는 우천사라는 절이 있다. 이곳에는 태평양전쟁 과정에서 희생된 한국인 유골 1135구가 안치되어 있다. 원래는 1136구였으나 작년 1구가 한국으로 귀환되었다. 물론 우천사에 안치된 한국인 유골이 전부는 아니며 현재도 계속해서 유골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유족회를 통해서 해외의 일본인 유골을 발굴하고 송환시키는 데에 연간 10억 엔을 쓰고 있는 반면 한국인 유골의 본국송환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과거사 사죄와 보상 문제 때문이다. 우천사의 한국인 유골을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해서 재일동포 이일만씨가 오랫동안 싸우고 있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될 것이라면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현재까지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일본정부가 문제이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국정부도 비판을 면치 못할 형편이다. 야스쿠니 및 일본군 위안부, 우천사 한국인 유골 송환 등 산적한 대일문제에 대해서 너무도 미온적이라는 점이다. 이번 공동행동에 대해서도 한국정부는 무관심했다.

일본이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그런 상황 속에서 야스쿠니 강제합사, 일본군 위안부 배상거부 등 일련의 과거사 관련 사안에 대한 일관된 자세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군국주의로의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화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일본 양심세력들은 일본이 아시아의 이스라엘을 준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은밀한 계획은 제2의 가츠라 태프트 밀약의 시도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a 한국인 유골 1135구가 안치된 우천사 전경

한국인 유골 1135구가 안치된 우천사 전경 ⓒ 김기


a 우천사 내부 분향소.

우천사 내부 분향소. ⓒ 김기

이제 한국은 항의나 유감을 표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본은 전쟁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라는 것이 일본 내 양심세력들의 판단이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평화헌법의 개정도 어려울 것이 없다는 전망을 갖고 있다.

시위현장에서 만난 한 일본인은 "한국 대통령부터 야스쿠니를 제대로 알아야 하고, 야스쿠니에 숨겨진 군국주의 부활의도를 똑바로 읽어야 할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8월이 지나면 다시 야스쿠니 문제는 잊혀질 것이다. 아니 벌써 잊혀진 사건이 되고 있다. 야스쿠니에 대한 일본 극우파의 지속적인 도발로 인해 면역력을 증가시키고 있고, 한국 정부와 언론은 둔감해지고 있다. 마치 8월이면 치르는 일과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a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아시아국가들의 대비는 대단히 미약하다. 특히 야스쿠니라는 분명한 문제들에도 외교역량을 스스로 포기한 듯한 인상도 짙게 풍기는 가운데 올해 출범한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은 아시아 평화를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아시아국가들의 대비는 대단히 미약하다. 특히 야스쿠니라는 분명한 문제들에도 외교역량을 스스로 포기한 듯한 인상도 짙게 풍기는 가운데 올해 출범한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은 아시아 평화를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 김기

또 내년 4월쯤이면 독도 문제로 시끄러워지다가 다시 잠잠해질 것이고, 8월에 또 다시 야스쿠니. 그렇게 몇 년이 흐르다가 보면 언젠가는 다시 치욕적인 일본의 침략을 겪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일본 현지에서 느끼는 전쟁의 불안감은 단지 소시민의 소심함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때 가서 미국을 쳐다본들 과연 미국이 일본을 막기 위해서 오키나와 주둔군을 한국으로 파병하거나 일본 군대를 붙잡아 둘 지는 의문이다. 이스라엘의 명백한 침략행위에 대해서 두둔하는 미국이고 보면 그런 희망은 거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국제적으로는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이 국제적 이슈를 만들고 있고, 이것이 단지 일본 내정의 문제이거나 혹은 한일간의 해묵은 논쟁이 아닌 아시아 평화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 세계평화의 문제라는 제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국내적으로는 대 일본 이슈에 대해서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구심점을 확보하게 될 전망이다. 이를 통해 도덕성 회복과 운동 역량을 재결집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어 보인다.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정부가 얼마나 탄력적으로 호흡을 맞춰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아직 미결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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