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 앞에서는 화무십일홍도 무색해

강화군의회 의정 활동을 참관할 백일홍 언니들이 첫 발걸음을 떼다

등록 2006.08.21 10:16수정 2006.08.2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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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한 대궁에 반듯한 얼굴로 곧곧하게 서있는 백일홍.
실한 대궁에 반듯한 얼굴로 곧곧하게 서있는 백일홍.이승숙
나리 엄마가 지나가며 툭 던지듯이 묻는다.


"요즘 뭐 해요? 안 바빠요?"

아침마다 같이 운동을 하는 나리 엄마는 재작년에 치른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했던 당찬 여인이다.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고 있던 나는 "뭐 별로 하는 일 없어요. 요즘은 한가해요. 뭐 좋은 일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나리 엄마가 "그러면 같이 일 좀 해봐요. 신나는 일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리 엄마는 사람을 포섭하고 있었던 거였다. 별로 대수롭잖게 툭 던지듯이 하는 말 그 밑에는 음모(?)가 숨어 있었다.

그로부터 보름이나 지난 뒤에 '모이자'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모임 장소로 나갔더니 40대 전후의 생기발랄한 여인들이 모여있었다. 강화는 좁은 지역 사회다 보니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성명을 하면서 자기소개를 하다 보니 다 알 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날 우리가 만난 것은 친목 차원의 만남이 아니라 뭔가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만남이었다.

짱짱하게 내리꽂히는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도 백일홍은 기가 죽지 않는다.
짱짱하게 내리꽂히는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도 백일홍은 기가 죽지 않는다.이승숙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서 정치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정치도 어찌 보면 큰 살림살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가 큰 살림살이라면 남자의 힘만 필요한 게 아니라 여성의 힘도 필요하리라 본다. 똑같은 돈으로 어떻게 살림을 사느냐에 따라 그 가정이 윤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쪼들릴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정치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시민들은 평안하게 살 수도 있고 아니면 혼란 속에 빠질 수도 있다.

그날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규모 있게 살림을 사는 것처럼 정치도 관심을 둬 보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가을부터 강화군 의회 의원들의 군정 활동을 살펴보기로 했다.

막상 말은 꺼냈지만 하려고 하니 뭐부터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일을 하는 단체나 조직이 있다면 그곳의 도움을 얻어 교육을 받으면서 올 한 해는 준비 과정으로 지내기로 했다.

그날 우리는 모임의 이름을 지었다. 여러 의견 속에서 '백일홍'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모진 환경에도 잘 버티며 자라나 질리도록 오래 피어있는 백일홍은 강화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튼실한 대와 굳건한 잎 그리고 일백일을 피는 백일홍의 그 질긴 생명력을 우리의 상징으로 삼았다.

꽃이라면 거역할 수 없는 운명 즉, '화무십일홍'을 백일홍은 거역한다. 일백일이 넘게 붉은 정열을 불태우는 백일홍 앞에서 무상함을 뜻하는 화무십일홍은 어쩐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내리꽂히듯이 햇살이 쏟아진다. 따갑고 짱짱한 햇살을 받으며 백일홍이 붉게 타오른다. 백일홍은 강화군을 상징하는 꽃이다. 그래서 강화군에서는 길가에 백일홍 화단을 만들어서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강화를 상징하는 생명력이 강한 백일홍. 마니산 근처의 화도 꽃동산에 피어있는 백일홍 무리입니다.
강화를 상징하는 생명력이 강한 백일홍. 마니산 근처의 화도 꽃동산에 피어있는 백일홍 무리입니다.이승숙
강화도는 수많은 시련을 맨몸으로 견디어냈다. 몽골 쪽의 침입을 39년 동안이나 버티어냈으며, 조선말에는 프랑스 함선과 미국 함선을 맞아 끝까지 싸운 역사의 땅이다.

강화는 저항력과 생명력으로 뭉쳐진 땅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백일홍도 역시 생명력이 강하다.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오래도록 끈질기게 피어나며 잡풀 더미 속에서도 싹을 밀어올리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꽃이다.

예전에 뭍의 사람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강화의 여인들을 일컬어서 '뻔뻔 강화년'이라 불렀다고 한다. 강화의 여인들은 자존심이 세고 자립심이 강하다. 어떻게 보면 타산적이고 영악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들이 그렇게 된 까닭은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많은 외침과 전란 속에서 여인들은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 가족과 내 땅을 지키기 위해서 여인들은 강해졌고 그래서 살아남았다.

백일홍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흔들린다. 무리를 지어서 피어있는 백일홍 화단은 마치 출렁이는 것처럼 보인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백일홍이 춤을 춘다.

가을이 깊어가도 백일홍은 여전히 화려한 색깔과 빛으로 가을 뜰을 수놓을 것이다. 이름 그대로 일백일을 피고 지는 백일홍은 질긴 생명력만큼이나 오래도록 빛을 발할 것이다. 찬바람이 불어올 10월까지도 그 기세를 이어서 꽃을 피울 것 같다. 그래서 까만 씨앗을 맺어서 내년에 다시 붉게 타오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백일홍 편지'

- 이해인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모든 만남은 생각보다 짧다 .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부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지금부터 백일만 산다고 생각하면
삶이 조금은 지혜로워지지 않을까?

처음 보아도
낯설지 않은 고향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오는 백일홍

날마다 무지갯빛 편지를 족두리에 얹어
나에게 배달하네.

살아 있는 동안은 많이 웃고
행복해지라는 말도
늘 잊지 않으면서....

덧붙이는 글 '백일홍 편지'

- 이해인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모든 만남은 생각보다 짧다 .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부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지금부터 백일만 산다고 생각하면
삶이 조금은 지혜로워지지 않을까?

처음 보아도
낯설지 않은 고향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오는 백일홍

날마다 무지갯빛 편지를 족두리에 얹어
나에게 배달하네.

살아 있는 동안은 많이 웃고
행복해지라는 말도
늘 잊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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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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