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노래를 그래 부르마 우야노?"

엄마가 그리워서 불러보는 노래

등록 2006.08.25 20:19수정 2006.08.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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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노래방이다 뭐다 해서 노래 부를 곳도 많고 들을 일도 많지만 옛날에야 어디 그랬나요? 엄마들 노래 부를 일이라곤 일 년에 한 두 번이나 있었을까요? 마을에서 봄, 가을로 가는 나들이 때나 노래 한 곡조 뽑지 당최 노래 부를 일이 없었을 거예요.


저는 우리 엄마가 유행가 노래 부르는 걸 딱 한 번 들어 봤어요. 그것도 앞부분 밖에 못 들었어요. 높낮이도 무시하고 박자도 무시한 채 느릿느릿하게 노래를 불러서 듣는 내가 다 김이 빠질 정도로 엄마는 노래를 못 불렀어요.

“엄마, 그 노래를 그래 부르마 우야노?”
“그라마 우에 부르는 기고? 니가 가르치 주봐라.”
“엄마, 그거는 이래 불러야 돼. 한 번 들어봐라.”

‘낙도오옹강 강바라아아암에 치마폭을 적시이이며~~~~
군인 간 오라버어어니이이이 소식이이 어어엄네.‘

“엄마, 함 불러 봐라.”
“낙도옹강 강바아라아아암에…”
“엄마, 그래 부르지 마라 카이. 노래를 그래 천천히 부르마 우야노?”
“그라마 우에 부르는 기고? 니가 노래 좀 적어도고. 내 그거 보민서 부를란다.”

그래서 종이쪽지에다 노래 가사를 적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엄마가 까막눈이란 것이었습니다. ‘가갸거겨'나 겨우 뗐을까 어려운 글자는 읽을 줄을 모르는 우리 엄마였습니다.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떠듬떠듬 읽어나가는 우리 엄마를 보자니 답답하고 짜증이 났습니다.

“이리 내봐라. 이거도 몬 읽나?”


참 그때는 철이 없었어요. 고등학생씩이나 된 내가 엄마를 면박이나 주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지금 같았으면야 노래만 가르쳐 드렸겠어요? 손뼉을 치며 흥겹게 노래 부르는 것도 가르쳐 드리고 엉덩이 살랑살랑 흔들면서 춤추는 것도 가르쳐 드렸겠지요. 그런데 그 때는 철이 없어서 엄마한테 면박만 주었어요.

‘낙동강 강바람이’로 시작하는 ‘처녀 뱃사공’은 그래서 저한테는 못 잊을 노래가 되고 말았어요. 그때 그 노래 따라 부르던 우리 엄마가 지금은 안 계시기 때문이지요.

대구 달성공원으로 봄나들이 가신 우리 엄마 아부지.
대구 달성공원으로 봄나들이 가신 우리 엄마 아부지.이승숙

아버지, 엄마들이 신명나게 놀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네요. 지금은 다 상노인(上老人)이시지만 그 때는 팔뚝에 힘이 넘치던 장골(將骨)들이었지요.

가을걷이가 끝나면 곱게 한복을 차려 입으시고 동네 아지매들이랑 부산 태종대로 대구 달성공원으로 나들이 다니셨던 우리 엄마는 그러나 지금은 우리 곁에 안 계시네요.

어른 모시고 사는 맏며느리다보니 노래 한 곡 제대로 불러보지 못하셨던 우리 엄마. 살아 계신다면 엄마 모시고 노래방도 가고 찜질방도 가고 온천물도 맞아 볼 텐데.

다 큰 딸이 있는 제가 오늘은 엄마가 다 그립네요. ‘낙동강 강바람에’로 시작되는 ‘처녀 뱃사공’을 한 번 불러봐야겠어요. 입 속으로 가만 가만 불러봐야겠어요. 그러면 우리 엄마가 나를 찾아오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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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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