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지 문 너머로 백열등의 불빛이 따뜻하게 전해져 옵니다.이승숙
내가 어릴 적, 그 때 시골에서는 농한기만 되면 동네 남정네들이 노름에 빠져서 여인네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한때 화투에 빠져서 밤을 지새우고 집에 들어오시기가 일쑤였습니다. 아버지는 밤새 화투 치시다가 새벽녘에 집에 돌아오시며 빵이랑 과자들을 사가지고 오셨지요. 우리 형제들은 잠결에 일어나서 카스텔라랑 과자들을 먹었습니다.
그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툼을 벌이셨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그때 먹었던 카스텔라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 형제들에겐 그 시절이 카스텔라로 기억되지만 어머니에겐 참고 또 참는 인내의 세월이었겠지요. 기억 속에 묻혀버린 그때, 호롱불이 일렁이던 그때를 떠올려 봅니다.
"승숙아, 가서 아부지 좀 모시고 온너라."
나는 이 말이 참 듣기 싫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뭔가 안 좋은 일을 한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가기가 싫었던 거지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어머니는 할아버지 심기를 살피면서 동생과 나를 보내셨을 겁니다.
1970년대, 지금 생각해 보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만큼이나 까마득하고 멀어 보이는 그 시절에 동네 아버지들은 다 노름에 빠져 있었어요. 큰 노름은 아니었겠죠. 하지만 밤이면 밤마다 노름에 미쳐 있었으니 집안 식구들은 아마도 애가 많이 탔을 거예요.
몇 해 전에 아버지한테 물어봤습니다.
"아부지예, 그 때 돈 마이 벌었심니꺼?"
아버지는 웃으시며 그러셨어요.
"나는 화투를 어느 날 딱 끊었는데 몬 끊고 친 사람들 많다. 화투 끊어도 돈 모인 거 없고 노름해도 돈 딴 거 없다."
화투치는 아버지를 찾아서 장터에 있는 식당 집에 가면, 창호지 문틈으로 노란 호롱불빛이 흔들리는데 어떤 때는 정적이 흐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왁자하니 소리가 나기도 했어요.
동생이랑 나는 서로 아버지를 부르라고 미루다가 결국 누가 부릅니다.
"아부지예, 아부지예."
처음 소리는 조심스럽게 목구멍 속에서 억지로 나옵니다. 방에서는 대꾸가 없습니다. 그러면 또 부릅니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힘을 좀 넣어서 부릅니다.
"아부지예∼, 아부지예∼."
그러면 누가 그럽니다.
"누고?"
"아부지예, 승숙입니더."
방문이 열리고 문 사이로 불빛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 불빛은 뿌옇습니다. 담배연기와 훈김이 불빛과 함께 밀려나옵니다.
"아부지예, 할부지가 아부지 오라 캅니더."
"오∼이야, 내 가꾸마. 쪼매마 있거라."
한참을 기다려도 아버지는 안 나오십니다. 그러면 또 부릅니다. 아버지는 마지못해 나오기도 하고 우리를 먼저 집에 보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