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예, 그 때 돈 마이 벌었심니꺼?"

노름에 빠진 아버지는 제 기억 속에 카스텔라로 남아 있습니다

등록 2006.08.29 09:28수정 2006.08.3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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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어느 날, 서울에 갔다가 자정이 넘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속도를 높이며 달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앞에 가는 차들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었습니다.


똑같이 생긴 트럭 3대가 비슷한 모양의 짐을 차에 싣고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1대라면 어떻게 추월해 보려고 했지만 3대나 됐던지라, 꼼짝없이 그 차들의 꽁무니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은근히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저 차에 실은 짐들이 뭘까? 이 늦은 시간에 움직이는 저 차들은 뭘까?'

그 차들은 김포시 대곶면을 지나 강화로 들어가는 초지대교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초지대교를 지나자마자 길옆으로 멈춰 서더군요. 알고 보니 그 곳은 '바다 이야기'라는 게임장 앞이었습니다. 그 3대의 트럭엔 게임기가 실려 있었던 것이지요.

창호지 문 너머로 백열등의 불빛이 따뜻하게 전해져 옵니다.
창호지 문 너머로 백열등의 불빛이 따뜻하게 전해져 옵니다.이승숙
내가 어릴 적, 그 때 시골에서는 농한기만 되면 동네 남정네들이 노름에 빠져서 여인네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한때 화투에 빠져서 밤을 지새우고 집에 들어오시기가 일쑤였습니다. 아버지는 밤새 화투 치시다가 새벽녘에 집에 돌아오시며 빵이랑 과자들을 사가지고 오셨지요. 우리 형제들은 잠결에 일어나서 카스텔라랑 과자들을 먹었습니다.

그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툼을 벌이셨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그때 먹었던 카스텔라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 형제들에겐 그 시절이 카스텔라로 기억되지만 어머니에겐 참고 또 참는 인내의 세월이었겠지요. 기억 속에 묻혀버린 그때, 호롱불이 일렁이던 그때를 떠올려 봅니다.


"승숙아, 가서 아부지 좀 모시고 온너라."

나는 이 말이 참 듣기 싫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뭔가 안 좋은 일을 한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가기가 싫었던 거지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어머니는 할아버지 심기를 살피면서 동생과 나를 보내셨을 겁니다.


1970년대, 지금 생각해 보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만큼이나 까마득하고 멀어 보이는 그 시절에 동네 아버지들은 다 노름에 빠져 있었어요. 큰 노름은 아니었겠죠. 하지만 밤이면 밤마다 노름에 미쳐 있었으니 집안 식구들은 아마도 애가 많이 탔을 거예요.

몇 해 전에 아버지한테 물어봤습니다.

"아부지예, 그 때 돈 마이 벌었심니꺼?"

아버지는 웃으시며 그러셨어요.

"나는 화투를 어느 날 딱 끊었는데 몬 끊고 친 사람들 많다. 화투 끊어도 돈 모인 거 없고 노름해도 돈 딴 거 없다."

화투치는 아버지를 찾아서 장터에 있는 식당 집에 가면, 창호지 문틈으로 노란 호롱불빛이 흔들리는데 어떤 때는 정적이 흐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왁자하니 소리가 나기도 했어요.

동생이랑 나는 서로 아버지를 부르라고 미루다가 결국 누가 부릅니다.

"아부지예, 아부지예."

처음 소리는 조심스럽게 목구멍 속에서 억지로 나옵니다. 방에서는 대꾸가 없습니다. 그러면 또 부릅니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힘을 좀 넣어서 부릅니다.

"아부지예∼, 아부지예∼."

그러면 누가 그럽니다.

"누고?"
"아부지예, 승숙입니더."

방문이 열리고 문 사이로 불빛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 불빛은 뿌옇습니다. 담배연기와 훈김이 불빛과 함께 밀려나옵니다.

"아부지예, 할부지가 아부지 오라 캅니더."
"오∼이야, 내 가꾸마. 쪼매마 있거라."

한참을 기다려도 아버지는 안 나오십니다. 그러면 또 부릅니다. 아버지는 마지못해 나오기도 하고 우리를 먼저 집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호기롭던 젊은 날들은 다 지나가고 지금은 백발만 남았습니다.
호기롭던 젊은 날들은 다 지나가고 지금은 백발만 남았습니다.이승숙
아버지를 모시러 가는 밤길은 참 무서웠습니다. 보리밭에 보리가 익어갈 때면 괜히 늑대가 나올까봐 겁을 집어먹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 늑대는 보리밭 속으로 다닌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한 번도 늑대를 본 적이 없으면서도 보리밭만 지나가면 그 생각이 나서 오금이 저리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고 길 옆 도랑에선 물이 콸콸 흘렀는데, 그 물까지도 무서웠습니다.

내 기억 속에는 그 때의 아버지 얼굴도 엄마 얼굴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랑에서 흐르던 물소리와 바람에 일렁이던 보리밭, 노랗게 밀려나오던 호롱불빛은 지금도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자다가 일어나서 먹던 돌돌 말린 카스텔라도 자꾸 생각납니다. 밤새도록 화투를 치다가 새벽녘에 집에 들어오려니 미안했던 아버지는 빵이랑 과자를 사오셨겠지요. 당시 어머니는 안 좋은 소리를 했겠지만 자다 일어난 우리들은 기차게 맛있는 그 빵을 다 먹고 다시 꿈나라로 향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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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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