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중의 코스모스는 아픈 추억을 불러내고노태영
가을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꽃은 아마도 코스모스일 것입니다. 코스모스만큼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도 드뭅니다. 그래서 친숙하고 그래서 아무렇게나 대하는 꽃입니다. 코스모스 꽃 그 자체는 이름만큼이나 잘 다듬어진 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신화에 언급된 것을 보면 코스모스는 신이 연습 삼아 만들어본 꽃이랍니다. 그래서 그런지 꽃으로서 꽃대와 잎사귀, 꽃 봉우리(두상화·頭狀花)가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는 꽃입니다.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코스모스를 보면 바람에 쉽게 부러질 것처럼 애처롭게 보입니다. 그래서 '소녀의 순정'이라는 꽃말을 가졌나 봅니다. 코스모스는 멕시코가 원산지입니다.
그렇지만 길가나 강둑에 줄지어 피어 있는 코스모스 꽃을 보면 화려하고 멀리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 바람에 몸을 부린 코스모스 꽃들은 교향곡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음악적 리듬을 선천적으로 간직한 것처럼 몸을 흔들어대는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석양녘에는 더욱 환상적입니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거나 걸어 보면 코끝에 묻어오는 향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가을에 제격입니다. 파란하늘이 깨어질 정도로 맑을 때에는 오색의 코스모스가 더욱 돋보입니다. 코스모스길은 많이 있지만 코스모스가 제대로 피어 있는 도로는 김제에서 벽골제를 지나 신태인 정읍으로 빠지는 29번 국도입니다.
아내의 출퇴근을 핑계 삼아 정읍을 가다 보면 코스모스가 참 걸판지게 피어 있습니다. 특히, 김제 지평선축제가 열리는 때를 맞춰 가면 기쁨은 두 배가 됩니다.
코스모스는 어렸을 때 길가에 많이 심었습니다. 그래서 꽃잎을 따서 손가락 사이에 끼워 친구의 등짝을 세차게 때리면 하얀 옷에 선명하게 무늬가 찍히곤 했습니다. 아니면 친구들과 꽃을 손가락으로 튕겨 꽃을 떨어뜨리는 게임을 해서 지면 가방을 들어주기도 했습니다. 그 때가 그립습니다.
코스모스 길을 '세월아 네월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해가 서산마루에 걸릴 때까지 거닐며 놀았던 때가 정말 그립습니다. 아니 그리운 옛사랑이 살랑거리는 코스모스 꽃에 지금도 걸려 있습니다. 코스모스는 추억을 불러내는 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적 뜸한 노을 진 길가
외로운 코스모스 꽃 한 송이
이름만이 홀로 남은 삶이
가던 길 멈추게 하고
마음은 인연 찾아 길 떠나고
내가 걸어온 그 자리에서
나 혼자만 남아 먼 산 보며
가슴 속 추억만 그리워하고
한가한 길가 혼자서 걸을 때면
그림자 하나 내 발걸음 붙잡아 놓고
코스모스의 고고한 여운
질펀하게 가을 하늘 수놓는다
- 한가한 길가에 서서, 자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