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담, 글씨, 일지암...대둔사 삼색여행

[남도 절집여행③] 해남 두륜산 대둔사

등록 2006.09.03 16:38수정 2006.09.0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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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의 가운데에 우뚝 솟아 남동으로는 완도가, 북서로는 진도, 북으로 해남읍이 훤히 보이는 두륜산. 그 두륜산 골짜기에 대둔사가 자리하고 있다.

두륜산에 오르면 멀리 진도와 완도 앞바다, 가까이 해남읍의 정경이 그림처럼 보인다
두륜산에 오르면 멀리 진도와 완도 앞바다, 가까이 해남읍의 정경이 그림처럼 보인다김정봉
대둔사는 가람배치가 교묘하며 원교와 추사 등 조선의 명필과 개혁군주 정조의 편액 글씨가 걸려 있고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의 훈김이 서려 있는 곳이어서 볼 것 많은 절이다. 여기에다 누구의 솜씨인지 구역을 나누는 아주 아리따운 꽃담은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대둔사는 두륜산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금당천을 경계로 대웅보전이 있는 북원과 천불전이 있는 남원 그리고 무염지를 옆으로 지나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표충사 영역으로 구분된다.


금당천을 가로지르는 삼진교, 대둔사는 두륜산 골짜기를 타고 내리는 금당천으로 가람배치가 교묘하다
금당천을 가로지르는 삼진교, 대둔사는 두륜산 골짜기를 타고 내리는 금당천으로 가람배치가 교묘하다김정봉
보통 절은 대웅전을 향하여 들어가는데 대둔사는 서쪽 방향에서 들어가게 되어있어 대웅전은 왼쪽, 북원에 자리하고 대웅전은 북원에서 남향을 하고 있다.

금당천을 가로지르는 삼진교에 잇대어 있는 것이 침계루이고 침계루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대웅보전, 그 오른쪽에 응진전, 왼쪽에 명부전이 자리하고 있다.

뜻밖의 즐거움, 꽃담 여행

여행을 하다보면 뜻밖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 있다. 대둔사의 꽃담은 생각지도 않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예전엔 안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니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이다. 대둔사 첫 번째 여행은 꽃담여행이다.

대둔사 꽃담은 돌을 강조하여 쌓았다. 투박하고 단단한 돌을 세련되고 연한 꽃담으로 만들어 버렸다. 부도밭을 둘러싸고 있는 꽃담을 제일 먼저 보게 된다. 유선여관을 지나 피안교를 건너고 일주문에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부도밭이 있다. 회백색 혹은 검정색의 부도를 백색의 꽃담으로 쌓아 밝게 해준다.


표충사 꽃담
표충사 꽃담김정봉
암키와와 수키와를 이용해 사람이 웃는 모양, 나비모양, 주름살 모양, 새모양 등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이는 여러 가지 모양을 자유자재로 수놓았다. 이와 비슷한 꽃담이 표충사에도 있는데 부도밭 꽃담보다 더 예쁘다.

두 번째 꽃담은 침계루와 응진전의 벽체 꽃담이다. 홍예 모양의 삼진교와 침계루의 꽃담, 계곡 주변의 돌담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과연 이 곳이 대둔사의 제일경이라 할만하다.


침계루 벽체 꽃담은 4등분하였을 때 맨 위의 부분은 돌을 뉘어 점선무늬를 놓았고 나머지는 모양에 상관없이 세워 쌓았다. 백토로 돌을 두른 사벽질을 고의로 돌 위에까지 덧칠을 하여 투박하게 보이는데, 오히려 그게 더 멋있다.

침계루 벽체 꽃담
침계루 벽체 꽃담김정봉
응진전 벽체 꽃담은 침계루 꽃담과 달리 크기가 비슷한 돌만으로 쌓아 정갈하다. 정갈한 응진전 벽체 꽃담과 그 앞에 있는 뽀얗게 씻긴 삼층석탑은 썩 잘 어울린다. 가까이 벽만 보고 있으면 '몽글몽글', '몽실몽실', '둥실둥실'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꽃담의 하이라이트는 천불전 뒷담이다. 천불전 오른쪽 담은 토담으로 쌓았으면서 후미진 뒷담은 꽃담으로 쌓아 절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그 모서리에 끼어 있는 일각문과 일각문에 이르는 키 작은 돌계단을 보면 담과 문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라고 탄성을 지르게 된다.

천불전 꽃담
천불전 꽃담김정봉
뒷담은 대놓고 이 담은 꽃담이라 말하고 있다. 밑에는 큰 돌을 쌓고 위로 갈수록 작은 돌을 쌓아 비례감이 돋보인다. 이 비례감은 문제가 안 된다. 돌 사이에 수키와 7개만을 가지고 수놓은 꽃은 어디에서도 본적이 없는 천상의 꽃이다.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 글씨 여행

담이 생각지도 않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면 사전에 알고 그것을 확인하는 즐거움은 편액글씨에서 온다. 대둔사 두 번째 여행은 글씨여행이다.

대웅보전과 침계루, 천불전, 해탈문현판은 모두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남도의 절집이라면 하나씩은 다 달고 있는 원교의 글씨는 제주 유배를 떠나기 전까지는 추사의 눈에는 성에 차지 않았다.

대웅보전 현판은 추사와 원교의 악연으로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이를 보고 있으면 추사의 원교에 대한 기고만장한 태도보다는 해배(解配) 후의 완숙한 추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 번 떼어졌다 다시 달리는 곡절을 겪은 현판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웅보전 현판
대웅보전 현판김정봉
제주 유배로 생의 전환점을 맞이하여 기고만장한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숙일 줄 아는 달관한 태도, 얼굴에서나 글씨에서 '기름기가 빠진' 추사의 모습이다. 추사의 제주 유배로 추사는 역사적인 추사체를 얻게 되었으니 이제 원교는 속으로 경쟁자가 못 된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는 원교와 추사의 악연을 넘어 인연을, 1840년대의 추사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인상적인 볼거리다. 마음껏 상상해도 좋으리라.

침계루, 계곡을 베개 삼아 서있는 누각이라. 글씨만큼이나 그 이름도 멋있다. 천불전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인 건물이어서 안정감을 주고 이고 있는 지붕은 조금 큰 듯하여 경쾌하다. 천불전이 달고 있는 현판도 건물의 맵시에 걸맞게 단정해 보인다.

가허루, 둥글게 휘어진 문턱이 멋지다
가허루, 둥글게 휘어진 문턱이 멋지다김정봉
천불전 입구의 가허루는 큰 짐승뼈 마냥 둥글게 휘어진 문턱이 퍽이나 재미있다. 그 편액은 호남의 명필로 알려진 창암 이삼만의 글씨다. 대웅보전은 1899년에 불이 났고 천불전 또한 1811년에 불에 타 다시 지은 것인데 현판만은 온전히 남아있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

표충사, 유교형식의 사당으로 편액은 정조의 글씨다
표충사, 유교형식의 사당으로 편액은 정조의 글씨다김정봉
절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유교 형식의 사당인 표충사는 서산대사와 사명당 유정, 뇌묵당 처영 스님의 화상을 봉안하고 있다. 표충사 편액은 정조가 대둔사에 들러 쓴 것은 아니고 직접 써서 내려 준 것이다. 글씨를 어떻게 썼는가 보다 누가 썼는가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는데 정조의 글씨이기에 더욱 기분을 좋게 한다.

서운함 달래주는 일지암 여행

여행을 갈무리할 즈음이면 서운한 감정이 앞서게 되어 걸었던 길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대둔사에는 서운한 마음을 달래 주는 일지암이 있다. 대둔사의 세 번째 여행은 일지암으로 초의선사를 만나러 가는 여행이다.

일지암은 표충사에서 빠져 나와 두륜봉을 향한 오솔길로 오르면 된다. 시멘트 포장도로여서 감흥이 떨어지고 경사가 급하여 생각보다는 힘이 들지만 초의선사와 더불어 추사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생각하면 한결 몸이 가벼워진다.

초의는 차와 선은 한가지라는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주창하며 다도를 중흥시켰다. 다산보다 24세 연하인 초의는 다산을 스승으로 모셨고 추사와는 동갑내기로 추사가 제주에 유배되었을 때도 제주를 찾을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

일지암, 초의선사가 말년에 기거하면서 추사와 회포를 풀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기도 한 곳이다
일지암, 초의선사가 말년에 기거하면서 추사와 회포를 풀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기도 한 곳이다김정봉
초의선사는 40여 년은 두륜산 중턱에 일지암을 짓고 거기서 기거하였다. 현재의 일지암은 옛 주춧돌 위에 세운 것이며 일지암 마루 뒤편 부엌에는 찻물을 끓이는 부뚜막이 있다. 대쪽으로 연결된 돌확을 거쳐 흐르는 샘물은 일지암을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대쪽을 연결해서 샘물을 끌어 오는 것은 대둔사를 드나들며 초의선사의 가르침을 받았던 허련(허유)이 일지암에 있을 때의 초의선사 모습을 묘사한 대목 그대로다.

"뜨락 가운데는 아래위로 못을 파고 처마아래에는 크고 작은 물통을 놓아두었는데 대쪽을 연결해서 멀리서 구름비친 샘물을 끌어 온다."

초당 옆에다 연못을 만들고 연못가에 영산홍과 버드나무 대신 배롱나무를 심어 놓아 예전의 초의의 모습을 되살리려 했다. 연못에 다리를 담그고 있는 누각은 근래에 지어진 초의다합이다. 누각을 지탱하는 기둥이 장주석 아닌 단주석 여러 개를 쌓아 만들어 멋지다.

일지암 샘물, 한 바가지 마시면 남도의 맛이 느껴진다
일지암 샘물, 한 바가지 마시면 남도의 맛이 느껴진다김정봉
누각은 어쩐지 객이라는 기분이 들어 올라가지 못하고 일지암에 앉아 땀을 괴고 '구름비친' 샘물을 떠다 시원하게 한 바가지 먹으면 말로 표현이 안 되는 남도의 맛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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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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