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사람들, '친절한(?) 지방법원' 방문기

갑자기 날아온 '낼모레 재판' 소환장

등록 2006.09.05 19:17수정 2006.09.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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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옥천당' 관련 활동으로 기소된 관계자들이 영동지원을 방문해 행정절차상의 오류를 지적하고 항의하고 있다.
'풀뿌리 옥천당' 관련 활동으로 기소된 관계자들이 영동지원을 방문해 행정절차상의 오류를 지적하고 항의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심규상
5일 오전 9시 30분. 충북 옥천 읍내에 있는 '명륜당' 서점 앞에 세 사람이 모였다. 목적지는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

이에 앞서 하루 전인 지난 4일, 풀뿌리 '옥천당' 대표인 서형석(50)씨는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에서 보낸 한 통의 등기우편을 받았다. 이틀 뒤인 6일 오전에 공직선거법위반과 정당법 위반 혐의로 공판기일이 잡혔으니 법정에 출석해 달라는 '피고인 소환장'이었다.

하지만 서씨는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된 사실 외에 이때까지 기소된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물론 응당 앞서 도착했어야 할 공소장 또한 받아본 적 없었다. 형사소송법에는 공소장은 '공판기일 전 5일까지 송달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틀 뒤 재판이라니, 서씨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게다가 국선변호인 선정청구서와 함께 발송된 답변서 등에는 '공판기일 3일 전까지' 법원에 제출해달라고 적혀 있었다.

규정 어기고 '이틀 전'에 온 소환장

서씨는 얼른 함께 고발된 오한흥(48) 옥천당 수석대변인과 이상용(46) 사무국장에게 전화를 했다. 확인 결과, 오씨도 법정출석 소환장과 공소장을 이날 처음 받았고, 이씨는 지난 1일 노부모가 받은 관련 서류를 이때서야 확인했다. 게다가 오씨와 이씨에게 발송된 공소장은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들은 영동지원에 이같은 점을 문의했지만 "절차대로 송달했고 선거재판은 빨리 진행하라는 내부지침에 따른 것"이라는 답변을 듣는 데 그쳤다.


때문에 이들의 영동지원 방문은 서류송달이 늦어지고 누락된 까닭을 직접 확인해 보기로 한 것이다.

영동지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40분 경. 1층 민원봉사실을 찾은 이들은 이같은 점을 지적하고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왜 여기와서 그러느냐. 2층 서무과로 가라"는 것.


2층 서무과를 찾아 문제를 제기하자 담당 실무관으로부터 되레 "관련 서류를 늦게 받는다고 해서 받는 불이익이 뭐냐"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3명의 피고인과 법원 담당실무관이 나눈 대화를 옮겨보자.

오한흥 "내일 오전 잡힌 공판기일을 어제서야 통보받았다'"
서형석 "마찬가지다. 이틀 전에 공판기일을 알려주면 재판준비를 어떻게 하나'"
실무관 "서류를 늦게 받았다고 재판에서 불이익 받을 일은 전혀 없지 않나'"
오한흥 "왜 없나. 재판 이틀 전에 기일 통보를 하면 피고 입장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 변호인도 선임해야 하고…."
실무관 "이미 검찰 조사과정에서 공소내용을 들어 잘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오한흥 "검찰 조사과정에서 언급한 내용과 다른 내용이 들어 있어 하는 얘기다."
실무관 "검찰에서 지난달 29일, 관련서류가 넘어와 다음날 곧바로 공소장을 발송했다. 또 1일 재판 기일이 잡혀 곧바로 소환장을 발송한 거다. 행정절차상 하자가 전혀 없다."
이상용 "듣기로는 공소장은 '공판기일 전 5일까지 송달'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무관 "검찰에서 그렇게 보내왔다. 검찰에 가서 문의해 봐라."
서형석 "그렇다면 검찰에서 서류가 넘어온 일정을 확인한 후 재판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재판기일을 잡아야 할 것 아닌가."
실무관 "그건 재판부 일이다. 우리에게 따질 일이 아니다. 우린 넘어온 서류를 단순히 보낼 뿐이다."
서형석 "왜 내게는 아직까지 공소장도 보내지 않았나."
실무관 "행정처리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죄송하다. 어제 보냈으니 오늘 중 도착할 거다."
서형석 "재판기일을 연기하고 싶다."
실무관 "1층에 가서 연기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해 보라."

공판은 연기됐지만...

이들은 다시 1층 민원봉사실에서 재판 연기신청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연기신청서를 작성하기까지 또 다시 입씨름을 거쳐야 했다.

오한흥 "내일로 잡힌 공판기일을 연기신청하려고 한다."
실무관 "내일 재판정에 출석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공판기일을 연기해 달라고 하면 된다."
서형석 "옥천에서 내일 또 오란 말인가."
실무관 "재판정에서 이의제기 하면 되는데…."
오한흥 "2층에 가니 이 자리에서 서류로 신청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
실무관 "그러면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해라. 하지만 받아 들여질 지는 재판부 소관이라 알 수 없다."
이상용 "알고 있다."

결국 이들은 이날 늦게 영동지원으로부터 6일로 예정된 공판이 13일 오후로 연기됐다는 전화통지를 받았다.

서씨는 이날 영동지원을 나서며 "법원이 친절하게 민원인 입장에서 설명해주기보다 책임이 없다는 식이 발뺌과 적반하장으로 대하고 있다"며 "우리처럼 젊은 사람들이야 항의라도 해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조건 법원의 결정에 따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법부가 엄정하고 추상같은 일 처리로 권위를 인정받아야 함에도 여전히 권위주의를 내세워 유지하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동지원 현관과 계단 곳곳에는 '국민에 봉사하는 친절한 법원'이라는 글귀가 걸려 있었다.

'풀뿌리 옥천당' 왜 기소됐나?
"미등록 정당이 '당' 사용 안 돼"-"상징적인 이름"

▲ 지난 1월 '풀뿌리옥천당' 명의로 제작한 책자와 '정당이 아니다'는 책자내용.

검찰이 '풀뿌리옥천당' 대표 등 임원들을 정당법 위반 등으로 기소함에 따라 공판 과정에서의 양측의 공방이 주목된다.

검찰은 풀뿌리옥천당 서형석 대표 등 3명을 정당법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지난 달 29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공소이유를 통해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정당이 아니면 그 명칭에 정당임을 표시하는 문자를 사용할 수 없음에도 '옥천당'이라는 명의로 홍보책자를 제작, 배포하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특정후보의 기고문과 기사를 실은 책자를 배포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 대표는 "'풀뿌리옥천당'은 현 정당정치의 오류와 모순을 극복하고 지방자치의 본 뜻을 살려보자는 취지에서 상징적으로 붙인 이름"이라며 "'당'이라는 문자가 들어 있지만 정당이 아닌 자발적 정치개혁 운동체"라고 말했다.

즉, 굳이 조직의 성격을 가리자면 '지역 정치개혁 시민운동체'라는 주장이다.

정당? 정치개혁 시민운동체?

실제 검찰이 정당법 위반 혐의를 둔 풀뿌리옥천당 명의의 홍보책자에는 문답풀이를 통해 "풀뿌리 옥천당은 정당이 아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이라는 이름을 붙인데 대해서는 "기존정치권의 행태에 대한 반대 움직임을 보다 선명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오한흥씨도 "활동하는 당사자들이 정당이 아니라고 매번 강조 하는데도 '당'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선거법을 적용한 것은 코메디"라며 "그렇다면 옥천에 있는 '명륜당' 서점에서 특정정치인이 저술한 책을 팔면 이것도 선거법 위반이고 선관위에 정당으로 등록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처럼 양측이 사전 공방에 따라 오는 13일 열릴 첫 공판에 부터 '당'자가 들어간 명칭의 사용여부를 놓고 각각 '정당'과 '정치개혁 시민운동체'를 주장하는 검찰과 피고인간 격론이 예상된다.

한편 현 정당법에는 서울에 당 본부를 두고 5개 광역단위 이상에서 5000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해 중앙선관위에 등록한 경우에만 정당의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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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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