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지지한다면 주택철거 함께 막아요"

[릴레이기고 ⑫] 강제철거 현장 기록할 독립다큐 작가의 호소

등록 2006.09.11 11:34수정 2006.09.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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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대추리, 도두리 주민분들을 알게 된 것도 2년이 다 되어갑니다. 마을에 자주 왔다 갔다 하면서 저를 알아보는 분들도 계시고 이른 아침이 되면 밥 먹었느냐는 인사말을 건네주시곤 합니다. 해 뜰 때와 해 질 때가 가장 아름다운 마을 대추리에서 저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한다고 하지만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가슴 한 켠에 작은 돌멩이를 안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정말 이분들의 이야기를 내가 어디까지 공감하고 전달할 수 있을까란 고민에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5월 4일 대추 초등학교가 무너지고 황새울 들녘에 철조망이 쳐진 날 전경들이 마을 안으로 들어와 논과 밭을 짓밟을 때 힘없이 밀려 그저 눈물만 흘리는 주민들을 보았습니다. 뭔지 모른 억울함과 어떻게 할 수없는 무력감에 저 또한 눈물이 흘렀습니다.

5월 4일 오전 대추 초등학교 파괴를 보며 절규하는 할머니(왼쪽)와 같은 날 저녁 촛불행사에서 우는 주민대책위 송태경 기획부장(오른쪽)
5월 4일 오전 대추 초등학교 파괴를 보며 절규하는 할머니(왼쪽)와 같은 날 저녁 촛불행사에서 우는 주민대책위 송태경 기획부장(오른쪽)이수정
학생들과 전경들이 죽봉과 곤봉을 들고 서로 마주서있는 광경은 지금까지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대추 초등학교 안에서 마을을 함께 지켜내기 위해서 한목소리로 "대추리를 지켜내자"던 학생들의 외침이 아직도 머릿속에 그리고 가슴속에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날의 끔찍하고 두려웠던 기억을 아직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외지인이고 그곳에 생활공간을 두고 있지 않아 다른 공간으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그 끔찍한 광경을 끝까지 지켜봐야 했고 그곳을 떠나지도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루 동안 그분들이 느껴야 했던 충격과 공포는 그곳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릅니다. 아마도 모르실 겁니다.

그날 저녁도 어제(8월31일)와 같이 촛불 집회를 진행하였고 촛불 집회를 진행하던 송태경 기획부장님은 "오늘의 설움과 분노가 단순히 분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 새롭게 싸워야 합니다. 오늘만 우리 울고 다시는 울지 맙시다"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설움에 복받쳐 울음이 터져 나오자 촛불행사장에 함께 하시던 어르신들이 서러운 눈물을 쏟아내셨습니다. 나약한 자가 얼마나 강해지고 강한 자가 얼마나 비겁해질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저는 독립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모든 과정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고 본능적으로 눈물을 흘리시는 어르신들을 담았습니다. 이분들의 분노와 억울함을 저는 기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힘겹게 싸우고 있는 분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몫은 기록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조선> 오보 사건

철조망이 쳐진 논(왼쪽)과 다음주 강제철거가 될 가능성이 높은 주택들 중 일부(오른쪽)
철조망이 쳐진 논(왼쪽)과 다음주 강제철거가 될 가능성이 높은 주택들 중 일부(오른쪽)이수정
한동안 충격에 휩싸여 쉽게 힘을 내지 못하시던 어르신들은 멍하니 황새울 들녘을 바라만 보시며 한나절을 보내시기도 하셨습니다. 5월4일의 아픔은 시간 속에 지나가고 있고, 이제 푸른 벼 잎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다시금 어르신들은 논일을 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찍 움직이기 시작하셨고 마을분위기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렇게 시간이 흘러 촛불 집회 2주년을 맞는 아침, 조선일보의 오보로 또 한 번 주민들의 가슴에 못이 박혔습니다. <조선일보> 9월 1일자에 '미군, 평택 시설계획 전면보류'라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가 보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에 방송을 듣고 마을회관으로 나오는 어르신들은 어제 저녁 잠들었던 모습 그대로 정신없이 나오시며 손은 하늘위로 뻗고 만세를 외쳤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했던 주민들은 "수고했다. 고생했다"고 서로 위로하면서 "우리의 싸움은 반절 끝난 것 같다"고 울며 기뻐하셨습니다. 눈은 울고 있는데 입은 크게 웃고 계셨던 주민 분들 얼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동안 내색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얼마나 큰 불안 속에 보내셨을지 조금씩 저에게도 작은 떨림으로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최근 들어 빈집을 철거한다는 소문에 간 졸이며 보냈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여기저기서 안도의 기쁨과 벅찬 숨소리가 되어 터져 나왔습니다.

그곳에 함께 있던 평택 지킴이들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평택 지킴이로 있는 조약골씨는 "우리가 이런 기쁨을 느껴본 지 너무 오래돼서 다들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있는 거예요. 앞으로 더 좋은 소식들이 마을에 전달됐으면 좋겠어요"라면서 기뻐했습니다.

주민들과 평택 지킴이들은 그렇게 흥분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한쪽에선 어르신들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느라고 정신없어 보였습니다. 나 또한 이런 모든 모습들을 벅찬 마음으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서 조선일보의 기사는 오보로 드러났고 주민들은 그저 또 한 번 쓴 웃음을 지으며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계셨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촛불 2주년 행사를 진행했고 유난히 대추리 하늘에 떠있던 달은 커다랗게 보였습니다.

지난 8일 오후 어청수 경기지방경찰청장 일행이 미군기지 철조망 안에서 대추리를 살피고 있다. 다음주 주택 강제철거가 확실시되는 여러 징후들 가운데 하나다.
지난 8일 오후 어청수 경기지방경찰청장 일행이 미군기지 철조망 안에서 대추리를 살피고 있다. 다음주 주택 강제철거가 확실시되는 여러 징후들 가운데 하나다.문만식
대추리 도두리 마을엔 또다시 긴장감이 돌고 있습니다. 다음주(9월11~13일)에 국방부는 또 한 번 용역과 전경들을 대리고 빈집철거를 하겠다고 합니다. 대추리 도두리에는 주민들이 200여명 정도 살고 계십니다. 그리고 평택 지킴이들도 함께 살고 있습니다.

대추리 도두리 마을 입구에는 전경들이 매일같이 검문을 하고 있어 쉽게 들어가지 못합니다. 마을이 고립된 상황에서 빈집을 철거하겠다고 하니 이를 막을 수 있는 분들은 대추리 도두리 어르신들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함께 살고 있는 20여명의 평택 지킴이들 밖에 없습니다.

대추 초등학교를 무너뜨렸을 때처럼 수만 명의 곤봉 든 전경들과 용역들이 마을에 들어올까 겁이 납니다. 하지만 항상 그곳에 계시는 분들을 만나 뵈러 그리고 기록하기 위해 저도 그 현장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기록의 힘을 믿습니다.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지지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함께 주택철거를 막아냈으면 합니다. 또 다른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고 행동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년으로써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고민하며 살아가야하는지 깨닫게 해준 대추리 도두리 주민 어르신들, 그리고 대책위 분들께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수정은 대추리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품으로 <트렉터가 부르는 평화의노래 -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트렉터 순례 12일간의 기록>(제10회 서울인권영화제 출품)이 있습니다.

아직 '양심의 명령'을 지킬 시간은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오는 9월 24일에는 '사람을 먹여 살려온 들녘을, 사람 죽이는 전쟁기지로 만들지 않기 위한' 4차 평화대행진이 서울에서 열립니다. 황새울의 평화를 위해 힘과 뜻을 모아주십시오.

여러분을 9.24 평화대행진 ‘10만 준비위원’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클릭)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이수정은 대추리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품으로 <트렉터가 부르는 평화의노래 -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트렉터 순례 12일간의 기록>(제10회 서울인권영화제 출품)이 있습니다.

아직 '양심의 명령'을 지킬 시간은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오는 9월 24일에는 '사람을 먹여 살려온 들녘을, 사람 죽이는 전쟁기지로 만들지 않기 위한' 4차 평화대행진이 서울에서 열립니다. 황새울의 평화를 위해 힘과 뜻을 모아주십시오.

여러분을 9.24 평화대행진 ‘10만 준비위원’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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