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적인 불심검문으로 주민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가 없다.평택범대위
그동안 나는 수도 없이 신분증을 제시해야 했고, 불법 검문을 따져야 했고, 별의별 각본을 짜서 마을에 있는 지킴이나 주민들과 입을 맞춰야 했다.
그들에게 법은 어기라고 있는 것이고, 법을 잘 지키려는 우리에게는 그 따위가 왜 있는지 한탄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황새울 들녘을 뒤덮으며 승냥이떼같이 몰려오던 5월 4일, 그날의 충격이 여전히 선연한 탓도 있지만, 개개인에게 공권력이란 불편하고 두려운 것이게 마련이다.
내 각본이 들통날까 봐 죄도 없이 마음졸여야 했고, 마을 주민과 직접 통화해야 내 말을 믿겠다는 그들의 눈 앞에서 핸드폰 버튼을 누르는 내 손가락은 나도 모르게 떨리기까지 했다.
각본이라고 해봐야 '옆 마을에 사는데 대추리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 곳에 법적으로 적(籍)을 두지 않는 사람은 죄다 '외부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그들의 행태는 비상식적이고, 반(反)인권적이고, 더할 수 없이 무식하다.
주민들 명부를 코팅까지 해서 들고있는 그들때문에 나처럼 대추리 향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지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차량을 되돌려야 하고, 시민 버스를 타고 들어가려는 사람들도 중도하차해야 하며, 심지어 일가 친척도 며느리도 들어가지 못한다.
운이 좋거나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사람은 잠시나마 영웅이 되어 무용담을 풀어놓아야 할 만큼 대추리·도두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러니 불법 검문이 아무리 이해할 수 없고 분노스러워도, 한두번 강제적으로 발길을 돌리다 보면 그 심적인 부담감 때문에 평택행 자체를 미루고 기피하게 되게 마련이다.
그 곳에 갈 때 마다 나도 모르게 떨린다
한 번은 아시아 각국에서 온 연극인들 20여 명을 대추리로 안내하려던 적이 있다. 그 무렵에는 별다른 행사도, 행정 집행도 예정되어 있지 않던 때라 전세버스도 별 무리없이 통과한다는 것을 주민대책위 사무국장을 통해 확인까지 하고 난 뒤였다.
그러나 원정리 삼거리에서 차량을 막아선 경찰은 버스에 탑승한 사람들 대부분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여러 차례의 상부 보고를 거친 뒤에 끝내 차량을 되돌리게 했다. 외국인들이 20여 명이 왔으니 그들에게는 비상사태쯤 되었나 보았다. 끝판에는 서울경찰청장에게까지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는 동안에 어디선가 전경차가 득달같이 달려오더니 전경들이 우르르 몰려와 앞을 가로막고서는 것이었다. 행여나 전세버스가 막무가내로 검문을 뚫고 갈지도 모른다고 터무니없는 우려를 했는지 어쨌는지….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라 노란 비옷을 갖춰 입은 전경들은 몇 겹으로 가로막고 섰다.
우리는 그들의 '오버'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고, 우리를 바라보는 전경들도 민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입은 옷이 노란 비옷이 아니라 시커먼 전투복이었다면, 좀 무시무시해 보였으려나. 게다가 그 우스꽝스런 '사태'에 놀란 외국인들이 하나 둘 버스에서 내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잠시 동안 비오는 원정리 삼거리에서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2시간여 동안 승강이를 벌이다 결국 대추리행을 포기해야 했고, 나는 외국인들에게 그간의 일들을 축약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임무를 마쳐야 했다. 외국들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째서 이토록 강경하게 막는 것인지 몹시 궁금해 했다.
나는 비록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그들에게는 썩 나쁜 경험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는 경찰들이 결코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비밀들이 가득하고, 특히 아시아의 노동자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천박하고 야만적인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리라는 짐작쯤은 하게 될 터이니 말이다. 어쨌든 정부 자신도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인정한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