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셔티브' 새 비전..."글로벌 인재 키울 것"

[인터뷰] 이배용 이화여대 13대 총장

등록 2006.09.13 11:19수정 2006.09.1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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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취임 후 두 달 여, 120년 역사를 기점으로 새 판 짜기에 여념이 없는 이배용 이화여대 13대 총장. 대표적인 한국사학자, 특히 여성사학을 새롭게 일궈낸 이 총장과의 인터뷰는 역사적 맥락에서 이화여대를 비롯한 한국 여성교육의 비전을 공유한 시간이었다.

'여성의 인간화' '섬김과 나눔' '세계화' '글로벌 인재' '리더십' 등 인터뷰 마디마디 배어나오는 화두를 통해 이 총장의 여성 인재 교육에 대한 신념을 느낄 수 있다. 취임 포부로 이화의 새 비전을 '이니셔티브(Initiative) 이화'로 설정하고, 4년 임기 중 대학발전기금 1000억 원 모금과 세계 100대 명문대 진입을 선언한 이 총장에게 쏠린 기대가 만만치 않다.

- 취임 후 두 달이 가까워 온다. 소회가 어떠신지.
"이화여대의 총장이 된다는 것은 인간이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화가 120년 전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의해 세워졌듯이 여성 교육의 메카로서 성장하게끔 도와주시는구나, 이런 감회를 느끼며 하나님의 소명으로 겸허히 받아들였다."

-'이니셔티브(Initiative) 이화' 비전 선언의 배경을 알고 싶다.
"미 북감리교 선교사 스크랜튼 부인이 이화를 창립했을 땐 '여성의 인간화'와 한국 여성으로서의 긍지를 심어주는 것이 교육 목표였다. 초기 이화의 지도자들이 북돋워준 것은 황무지와 같은 시절에 프런티어 정신으로 여성 교육의 불모지에 새싹을 돋게 해 인간의 숲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다. 최초의 여성 총장, 최초의 여의사, 최초의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여러 가지의 '최초' 역사를 기록한 것은 한 개인의 일이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더불어 함께 개척해 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젠 여성들이 힘을 결집해 역사의 주류로서 당당하게 주도적인 역할을 할 때가 됐다고 보기에 '이니셔티브 이화' 비전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니셔티브 이화' 교육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바로 글로벌 교육 인프라다. 전인적인 심성을 갖춘 유능한 인재를 키우기 위한 새로운 교육 인프라 구축이다. 교육적 내용도 중요하지만, 건물이 빽빽한 도심을 벗어나 자연의 섭리와 함께 하는 친환경적인 분위기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므로 현재의 신촌 캠퍼스가 아닌 별도의 지역에 교육 단지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집중적인 교육의 필요성이다. 대학 시절, 자아를 성찰해 어떤 면을 성장시킬지, 어떻게 인생의 목표를 설정할지 알 수 있어야 사회에 나가서도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뤄갈 수 있다. 이 같은 인성교육에 외국어 교육 등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을 때 훨씬 효율적인 인재 육성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 글로벌 교육 인프라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예산 확보일 것 같은데.
"모금 방향도 구체적으로 세워나가고 있는데, 그게 나만의 의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 그것은 이루어질 수 있다. 올바른 뜻을 세워 최선의 성실성으로 임하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역사에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입장이다. 이화의 역사를 보며 역대 어느 총장님이 말씀하시기를 '항상 마지막엔 하나님이 도와주시더라' 하시더라(웃음)."

- 여대로서의 정체성 고수에 대해 이화는 흔들림이 없는 것으로 안다.
"양성평등 사회, 남녀가 더불어 행복한 시대를 맞아가는 데 여대로서의 이화의 교육은 오히려 더욱 중요해진다고 본다. 여성이 양성평등 시대를 어떻게 바람직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지, 전문적인 자신의 영역에서 어떠한 시대적인 사명을 할지에 대해 훈련을 통해 여성의 잠재력을 드러나게 하는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21세기 여성의 감성과 지성이 더 필요한 시대가 열리고 있는 때일수록 여성을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기능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전 김활란 총장께서 말씀하셨듯이 '국회의원의 절반이 여성이 되기까지' 이화는 여대로서 존속되어야 한다."

-'기혼' 총장, 그것도 행사 때마다 수십 명을 대접해야 하는 종갓집 맏며느리라는 데 관심이 많이 쏠렸었다.
"기혼이라는 틀이 내 사회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보다는 삶의 지혜를 넓혀 주었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두 아들이 있는데, 가족 구성원들이 얼마만큼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고 협력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힘들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 휴머니즘 아니겠는가. 시집은 큰 가문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시어머니 생신 때는 그야말로 수십 명 손님이 오셔서 극진히 대접해야 했는데, 이를 통해 섬김의 정신을 체득했다. 맏며느리로서의 역할은 책임과 사명감, 일의 폭을 겁내지 않고 피하지 않으며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능력을 길러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큰살림을 이끌어가는 맏며느리야말로 가정 경영인으로 진정한 CEO라고 생각한다."

개화기 여성언론에 대한 연구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배용 총장은 곧 창간 18주년을 맞이하는 여성신문에 대해 "1920년대 출간 봇물을 이룬 여성잡지들이 '역사기록'으로 가치가 있듯이, 역사적 맥락에서 정말 잘 돼야 하는 신문"이라며 "여성의 생각이 많이 드러나는 자료가 드물기에 현상적인 것만 아니라 시대의 정신과 가치를 담아내는 한편, 양성평등 담론의 새 비전을 제시할 것"을 주문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배용 총장은

이배용 이화여대 13대 총장은 이화여중·고를 거쳐 이화여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사학을 전공한 대표적인 이화인이다. 서강대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85년부터 모교에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여성연구원 원장, 이화사학연구소 소장, 평생교육원 원장, 이화역사관 관장, 인문과학대학 학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2003년 여성 최초로 한국사상사학회 회장이 돼 관심을 모았고, 현재는 조선시대사학회 회장이다.

‘한국 역사 속의 여성들’ ‘개화기 명성황후 민비의 정치적 역할’ ‘여성사 서술에 대한 남북한 비교연구’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등의 저서를 비롯해 여성신문에 게재한 칼럼 ‘조선시대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통해 여성역사 재해석을 시도하는 등 한국의 여성사를 학문 분야로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4년 한국여성사학회를 발족시켜 여성사 연구의 체계적인 공동 작업을 가능케 했다.

‘세개’ 전략으로 ‘세계’ 우뚝설것
‘이니셔티브 이화’ 비전은

이배용 13대 총장이 임기 내 구현할 ‘이니셔티브 이화’ 비전엔 앞으로 이화가 사회와 대학의 발전을 선도하는 글로벌 대학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다하겠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구체적인 주요 시행 전략은 크게 세 가지. 우선 전인교육과 어학교육, 리더십 교육 등을 집중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전인적 심성을 갖춘 전문 인재를 키워내기 위한 ‘교육단지 구축’과 ‘이화 글로벌 2010 프로젝트’가 있다. 2010프로젝트는 한마디로 이화여대 학생의 글로벌화를 위한 것으로, 재학생의 상당수를 외국 대학에서 1~2학기 수학하게 하는 것을 비롯해 미국 유럽 아·태 지역의 주요 거점 대학들과 공동수업, 공동학위 수여, 학생교류 등을 활성화하는 글로벌 교육네트워크 구축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다학문 간의 융합과 연계,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구심점으로 ‘이화학술원’을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연, 인문, 사회 등으로 분산되어 이루어지던 연구를 이화학술원이 중심이 되어 균형 있게 융합하고 연계함으로써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 성과를 도출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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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성신문은 1988년 국민주 모아 창간 한국 최초의 여성언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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