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운하'에 서린 남녘 가을빛

[최성민의 자연주의 여행] 해남-영암 잇는 '대진운하'

등록 2006.09.14 17:05수정 2006.09.1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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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진교 위에서 바라본 영암호(영암)쪽 대진운하.

대진교 위에서 바라본 영암호(영암)쪽 대진운하. ⓒ 최성민

우리나라에도 운하다운 운하가 있다. 이미 경인운하를 판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아직 실행되지 못했고, 어떤 정치인은 '낙동강 운하'론을 들고 나와 벌써부터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려 하고 있지만, 지금부터 말하는 운하는 그런 정치성 선전물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한국의 운하이다.

a 대진교 위에서 바라본 금호호(해남)쪽 대진운하.

대진교 위에서 바라본 금호호(해남)쪽 대진운하. ⓒ 최성민

남녘 땅 끄트머리 쪽에 있고 사람들이 의미 부여에 소홀해서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전남 해남군 산이면 대진리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긴, 규모나 맵시에 있어서 정말 '운하'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운하가 있다.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기에 이름은 내가 붙여서 '대진운하'이다. 대진리라는 마을에 있기 때문이다.


a 대진운하 중간 지점에 있는 대진리.

대진운하 중간 지점에 있는 대진리. ⓒ 최성민

대진운하는 십수 년 전 농업기반공사가 영암만과 해남만 일대 매립공사를 하여 간척지를 만들면서 생겨난 것이다. 이 공사로 원래 널따란 바다와 갯벌이었던 자리에 영암호와 금호호라는 커다란 담수호가 생겼다.

두 개의 군을 잇는 갯벌을 막는 공사였으니 만큼 그 규모는 대단한 것이었고(공사 기간만 10년이 더 걸렸다), 훼손된 갯벌과 그에 따라 우리의 고유한 해산물 영양 섭취원을 잃어버리게 된 일 또한 가슴을 칠 일이다.

a 대진운하에서 가물치 낚시를 하고 있다.

대진운하에서 가물치 낚시를 하고 있다. ⓒ 최성민

하여튼 지금 그런 생각을 해봤자 버스 지나간 일이고…, 대진운하는 영암군 쪽에 있는 이 영암호와 해남군에 속한 금호호를 잇는 물길이다. 영암호와 금호호 중간을 막으며 흘러내려간 땅꼬리에 해남 대진리 마을이 있는데, 두 호수의 물길을 잇기 위해 대진리 옆구리 땅을 뚫어서 운하를 만든 것이다.

a 운하 옆 간척지 논.

운하 옆 간척지 논. ⓒ 최성민

대진리 옆 운하가 지나가는 한가운데 자리 운하 위로 길이 50미터 가량의 다리(이름을 '대진교'라고 해 두자)가 있다. 이 대진교 위에서 영암호쪽과 금호호쪽 양쪽을 보면 운하가 끝 간 데 없이 일직선으로 죽 뻗어있다. 다리를 중심으로 좌우 양쪽으로 운하의 길이를 추정해 보면 대략 3km는 넘을 것 같다. 운하 양쪽은 넓은 간척지 논이어서 지금 한창 누렇게 벼가 고개를 숙이고 익어가고 있다.

a 예전 육지였던 자리에 운하가 패이고 다리 위 아래로 자동차와 어선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예전 육지였던 자리에 운하가 패이고 다리 위 아래로 자동차와 어선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 최성민

길이 3킬로미터가 넘는 운하 옆길은 한쪽은 포장도로이고 한쪽은 황톳길이다. 간척지가 시작되기 전 운하 옆 벌판은 황토밭 배추로 유명한 해남군 산이면 황토벌이다.


거기서 배추는 사시사철 나고 가을엔 고구마가, 봄에는 보리밭 종달새 울음이 명물 구실을 한다. 철마다 참 운치있는 운하와 황톳벌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엔 또 추수를 마친 간척지 논과 운하에 가창오리 등 겨울철새가 새까맣게 날아와 하늘을 덮는다.

a 금호호.

금호호. ⓒ 최성민

운하를 북쪽으로 지나면 영암호 방조제와 금호호 방조제가 나타나면서 목포, 진도 쪽으로 나가는 길이 갈린다. 두 방조제 앞바다에는 간척사업에 따른 자연이변 현상의 하나로 가을만 되면 갈치떼가 나타나고 갈치떼보다 더 많은 갈치 낚시꾼들이 전국에서 모여든다. 그래서 목포 일대에선 요즘 '갈치축제'가 열리고 있다.

a 영암호.

영암호. ⓒ 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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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창간발의인, 문화부 기자,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역임.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서울대 교육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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