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헌법수호 투쟁, 눈물겹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전효숙 임명안 처리 무산의 속내

등록 2006.09.20 11:00수정 2006.09.2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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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나라당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상정을 막기위해 19일 오후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했다.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중인 의원들이 '헌법파괴 원천무효' 글씨 피켓을 들고 있다.

한나라당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상정을 막기위해 19일 오후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했다.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중인 의원들이 '헌법파괴 원천무효' 글씨 피켓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복기부터 하자. 한나라당의 대여 투쟁사다.

대통령 탄핵-행정수도·행정도시-사학법-전시 작전통제권-헌법재판소장. 2004년 이후 한국 정치를 요동치게 만든 굵직한 투쟁 사례들이다.

공통점이 있다. 모두 헌법과 연결돼 있다. 이른바 헌법수호 투쟁사다. 일반인이 길거리서 멱살잡이 하다가 법원으로 달려가듯, 한나라당은 국회의사당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헌법재판소를 찾아간다.

한나라당이 헌법수호 투쟁에 목을 메는 이유

그럴 이유가 있다.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한나라당은 원내 과반정당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여당과 대치는 할 수 있되 돌파는 할 수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헌법수호 투쟁은 그 뒤에 본격화됐다. 원내 돌파를 위해 헌법재판소를 거쳐가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야당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과거 야당이 대여 투쟁 방법으로 장외투쟁을 선호한 반면 한나라당은 헌법수호 투쟁을 중시한다. 과거 야당이 국민 동의를 구하는데 주력했다면 한나라당은 기관 해석을 끌어내는데 힘을 쏟는다.

물론 섣부르게 일반화할 일은 아니다. 사학법 투쟁 때는 엄동설한에 거리로 뛰쳐나간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인 흐름은 역시 기관 해석에 의존하는 것이다.


해석이 구구하다. 어깨띠와 구호 제창에 익숙하지 않은 웰빙 의원들 때문에 장외 투쟁보다 위헌 소송을 선호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정쟁을 증폭시켜 반사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위헌소송을 남발하는 것이란 지적도 있다.

마냥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다. 자신들도 참여해 합의 처리한 법률(행정수도특별법)마저 위헌 심판대에 올린 처사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정책 사안이다. 의도가 어떻든 국가 안위와 국익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정책 사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받아보겠다는 데에야 달리 할 말이 없다.


한나라당이 지금 전개하는 헌법재판소장 지명철회투쟁은 그래서 전략적이고, 비타협적이다.

한나라당이 지금까지 내세운 명분은 임명동의 절차상의 하자였다. 하지만 어제(19일), 김형오 원내대표 입에서 "전효숙 후보자는 곤란하다"는 말이 나왔다. 임명동의 절차 보정작업이 아니라 특정인 비토 싸움을 벌여왔음을 솔직히 밝힌 것이다.

한나라당의 속내가 이런 거라면 여느 헌법수호 투쟁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다른 헌법수호 투쟁이 심판을 구하는 투쟁이라면, 이번 싸움은 심판을 갈아보자는 투쟁이다. 그래서 중대하다.

한나라당은 지금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대여 투쟁의 주요 전장이었던 헌법재판소의 문을 스스로 닫으려 한다. 이렇게 하면 한나라당이 나아갈 곳은 장외 밖에 없다.

웰빙 의원들을 데리고 성공할 수 있을까? 북한산 회군과 같은 행보를 다시 놓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대선을 앞두고 있다. 대선후보 경선부터 대선에 이르기까지, 앞으로는 주로 장외에서 발품을 팔아야 한다. 지원세력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들이 장외에서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용케 지명철회나 자진사퇴를 관철시키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나쁠 건 없다.

꼬리 내리는 열린우리당, 뻗대는 한나라당

a 한나라당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상정을 막기위해 19일 오후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했다.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본회의장에서 의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상정을 막기위해 19일 오후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했다.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본회의장에서 의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여권의 부담이 적잖게 됐다. 돌파를 하려고 해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야3당은 어제부로 사실상 발을 뺐다. 이런 상황에서는 열린우리당 단독으로 본회의 의결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지명 철회도 어렵다. 정치적 굴복을 뜻할 뿐 아니라 도리도 아니다. 멀쩡히 재판관으로 일하는 사람을 사퇴시켜 소장으로 앉히려다가 사단이 났다. 경위야 어떻든 그런 사람을 상대로 안면을 몰수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그래서일까? 여권 일각에서 고개를 빼고 전효숙 후보자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고 한다. 알아서 그만 둬 주는 게 가장 무난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아직 일각의 바람일 뿐이다.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그 어느 곳도 공을 넘겨받지 않았다. 문제를 풀려면 누군가에게 공을 돌려야 한다.

여권 일각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고 한다. 허심탄회하게 사과를 함으로써 국민 여론을 움직여야 한다고 한다. 청와대가 일단 공을 받은 다음에 다시 한나라당으로 넘기라는 얘기다.

하지만 한나라당에겐 갈 곳이 있다. 한나라당의 비토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해지지 않는 한 안 받아도 된다.

그래서 위험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를 했는데도 국민 여론이 확연히 돌아서지 않으면 한나라당을 옥죄는 게 아니라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을 옥죄게 된다. 사과까지 한 마당에 전효숙 카드를 계속 고집해야 하느냐는 지적에 몰릴 수도 있다.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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