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41회

등록 2006.09.26 08:24수정 2006.09.26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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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서교민을 대신할 수 있는 자는 서교민의 직속수하라 할 수 있는 번역(番役) 직책을 가진 동창 소속의 하종오(河宗悟)였다. 경후는 단 일각 만에 살해된 서교민이 살해당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저녁식사 시간에 청룡각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저녁식사 시각에 자리를 비운 사람은 오직 둘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저녁식사를 같이 하였고, 일행들과 같이 있었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한 명은 경후가 가장 의심을 하고 있었던 자였다. 바로 신태감 일행을 부교 위에서 기다렸다가 동행했던 그 인물이었다. 또 한 명은 경후가 모아 달라고 했던 시비 중 하나. 홍교(虹橋)라 불리는 시비였는데, 뛰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이목구비가 동글동글하면서도 독특한 귀여움이 있는 여자였다. 그녀를 보는 순간 무슨 의미인지 경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좌대협께서는 잠시 함곡선생이 있는 곳에 가 기다리시겠소? 곧 연락드리리다."

홍교를 불러놓고 경후는 무언가 짐작을 하고 있는 듯했다. 좌등은 이상한 낌새를 채긴 했어도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어차피 혼자서 이 사건을 해결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시비가 흉수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알겠소."


좌등이 가볍게 포권을 취한 후 나가자, 옆에 서 있던 하종오에게도 말했다.

"자네는 능효봉을 찾아 옆방에 가 대기하게. 본관이 곧 부를 것이네."


번역 하종오는 단단하게 보이는 사십대 전후의 인물이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떡 벌어진 어깨가 누구에게도 쉽사리 밀리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알겠습니다."

방안에 둘 만 남게 되자 홍교라는 동그란 두 눈에 두려움을 가득 담고서 시비는 가늘게 몸을 떨고 있었다. 경후란 인물을 알지는 못하였지만 동창 소속의 인물이라는 정도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동창의 악명이야 이미 치를 떨 정도. 의자에 앉은 경후가 불쑥 물었다.

"서당두에게 봉변을 당했느냐?"

경후는 겉모습과는 달리 부드러운 태도를 유지하며 물었다. 하지만 홍교는 저런 부드러움이 더욱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파르르 떨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겁먹은 두 눈엔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네가 흉수로 몰릴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한단 말이냐?"

경후의 말꼬리가 올라가자 그녀는 더욱 두려움에 사로잡혀 떠듬거렸다.

"천...천비가 어찌...?"

경후가 손에 쥔 천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것은 네 고의(袴衣)가 찢겨나간 조각이 아니더냐?"

바로 죽은 서교민의 목에서 나온 천이었다. 홍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바닥에 떨어졌다. 이미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신문자(訊問者)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 뒤에 떨어진 경후의 말은 그녀로서는 제발 다시 듣기 싫은 말이었다.

"치마를 걷어 올려라."

아무리 개, 돼지와 같이 취급되는 시비라 할지라도 여자인 것은 분명하였다. 주인의 노리개가 된다 해도, 아무 소리 못하는 천비의 신분이라 해도 그것은 그래도 아무에게나 은밀한 곳을 내보이지 짓이라 할 수 없어 이런 수치심과는 달랐다.

그녀가 치마를 올릴 생각을 하지 않고 몸을 떨며 흐느끼자 경후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재촉했다.

"어서 치마를 걷어 올리라니까...!"

"대인.... 그것은 천비의 고의가 맞사옵니다. 그러니...제발..."

"어허...! 고얀 것! 주리를 틀어야 말을 듣겠다는 것이냐!"

그 말에 홍교는 천천히 치마를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릎까지 걷어 올린 그녀의 손길이 자꾸 멈추어서고 있었다. 오늘 두 번째였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아랫도리를 보겠다는 흉악한 자들은 모두 천벌을 받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것이 효험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첫 번째 자신의 아랫도리를 본 놈은 죽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은 다시 치마를 올려 아무 것도 걸치지 못한 아랫도리를 생전 처음 보는 중늙은이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이를 앙다물고 치마를 허리까지 걷어 올렸다. 그녀의 하체에는 예상했던 대로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가 합쳐지는 곳에는 여인의 은밀한 부위가 체모(體毛)와 함께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시비로 썩기엔 아까운 몸매였다. 경후는 그녀가 고의를 입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내리거라."

경후의 말에 그녀는 치마를 내림과 동시에 다리 힘이 풀리면서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리 천한 신분이라 해도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임에는 분명했다.

"눈물을 그치고 네가 그 방에 들어가서부터 나올 때까지의 일을 상세하게 고하거라. 만약 네 말에 한 치의 어긋남이라도 있다면 네가 흉수와 짜고 서당두를 죽인 것이라 생각할 것이야. 알겠느냐?"

그녀는 눈물을 멈췄다. 수치심에 못 이겨 목숨을 끊는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자신과 같은 시비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의 손에 납치되어 능욕을 당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는 존재가 그들인 바에야 그런 정절이니 하는 것은 그녀들의 몫이 아니었다.

"왜 대답이 없는 게냐?"

"아니옵니다. 모두 말씀드리겠사옵니다."

그녀는 울음을 억누른 채 떠듬거리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서교민이란 놈은 잡놈이었다. 권력과 위세라는 것을 맛 본 자라서 그런지 일찌감치 청룡각에 들어오자마자 찍어 놓은 시비로 인해 저녁까지 거른 놈이었다. 저녁 식사 때문에 서당두의 방에 들어선 홍교는 서당두가 느닷없이 저녁을 먹지 않겠다며 차를 내오라 시키는 통에 다시 찻물을 끓여야 했다.

차를 방으로 가져가자 침상 쪽에 있던 그 놈은 어느새 가져다 놓았는지 침상 곁 의자에 앉으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대뜸 치마를 걷어 올리라는 것이다. 침상이 바로 곁이니 꼼짝없이 능욕을 당한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소리칠 수가 없었다.

이미 동창에 몸담고 있는 놈이니 자신이 소리쳐 누군가 온다 해도 무사하지 못할 사람은 자신이었다. 자신 같은 존재는 어떠한 억지로 옭아맬지도 모르고 이 자리에서 죽인다 해도 뭐라 할 사람도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목숨이나마 건지는 일이었다.

눈깔을 휘 번뜩이며 욕정에 찬 기색이 역력한 사내놈들이 하는 수작은 언제나 똑같았다. 울면서 사정을 했지만 통할 리 없었고, 그녀는 뺨을 두 대나 맞은 끝에 고의 까지 벗어 그 놈에게 건네주고 두 발까지 자신이 앉은 의자 끝에 올린 채 자신의 은밀한 속살 모두를 보여주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이 잡놈은 지독한 변태였던 모양이었다. 자신의 몸을 겁탈할 생각은 아예 없고 벗어 준 고의를 자신의 얼굴에 가져가 냄새를 맡으며 음흉한 눈길로 자신의 부끄러운 곳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더니 문득 자신의 아랫도리를 까더니 흉측한 물건을 잡고서 흔들어 대길 얼마, 그녀는 아예 눈을 감고 씩씩거리는 그 잡놈의 숨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고의에 욕지거리 나는 정액을 쏟아 놓고는 돌려주지 않은 채 나가라고 했던 것이다.

그녀는 저녁은커녕 뱃속부터 올라오는 구토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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