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을 택한 풀과 콩의 결실 좀 보렴

땅은 풀과 콩을 차별하지 않는데... 평화는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등록 2006.10.12 10:51수정 2006.10.1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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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당 가득 쌓아 놓은 콩대, 좀더 바싹 말려 콩타작을 해야 한다.

마당 가득 쌓아 놓은 콩대, 좀더 바싹 말려 콩타작을 해야 한다. ⓒ 송성영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오던 날부터 사흘에 걸쳐 콩을 수확했습니다. 500평의 너른 콩밭에서 손바닥에 온통 물집이 잡히도록 콩을 뽑고 또 뽑았지만 기분은 참 좋았습니다. 콩밭 옆에서는 벼 수확이 한창이었습니다.


툭 하면 전쟁을 일으켜 지구촌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미국이 핵실험을 하거나 한반도에 핵무기 위협을 가할 때는 숨죽이고 있던 온갖 군상들, 그들이 북한의 핵실험에 난리법석을 떨고 있을 때 계룡산 연천봉 아래 논과 밭은 평화롭기만 했습니다.

사흘 내내 콩 수확을 했는데 콩밭은 한마디로 콩 반 풀 반이었습니다. 풀이 많이 솟은 곳은 콩밭인지 풀밭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콩밭을 뒤덮은 풀은 대부분 쑥이었습니다. 하지만 콩 농사는 애초에 망칠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썩 잘 됐습니다.

“콩 농사가 생각보담 잘 됐구먼”

a 콩과 풀이 공존하는 5백평의 콩밭

콩과 풀이 공존하는 5백평의 콩밭 ⓒ 송성영

콩밭 옆을 지나가던 후배의 아버지가 한마디 던집니다.

“콩 농사가 생각보담 잘 됐구먼.”
“다들 걱정 했는디 칠 할은 건질 거 같튜.”
“그러게 말여, 예전에는 끈도 달아 메고 이것저것 다 해 놓았는데도 다들 망쳤는디, 참 희안하네.”
“소가 뒷걸음질 하다가 쥐 잡은 격이쥬.”

애초에 콩을 심기도 전에 다들 걱정했습니다. 비둘기와 까치들 극성 때문에 콩 농사 지어봤자 말짱 도루묵이라고 했습니다. 날짐승들 눈에 용케 벗어난다 하여도 본래 논이었던 자리이기에 온통 물이 고여 콩 뿌리가 썩어 나자빠진다 했습니다. 죽어라 농사 지어봤자 3할이나 건질까 말까 한다는 그런 밭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고집스럽게 아무도 손대지 않는 땅에 콩 농사를 밀어붙였습니다. 소작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그 버림받은 땅에서 나름대로 잔머리를 굴렸습니다. 먼저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보통 고랑보다 넓게 하여 한 줄씩 콩을 심을 수 있도록 두둑을 만들어 물 빠짐이 좋게 했습니다.

또한 날짐승들의 예리한 눈을 피하기 위해 장마철에 맞춰 콩을 심었습니다. 날짐승들은 콩 대가리가 올라오면 그걸 싹뚝싹뚝 잘라먹는데 장마가 시작될 무렵 콩 싹이 올라오도록 했던 것입니다. 지 놈들이 아무리 두 날개 달린 짐승이라 할지라도 장맛비를 철철 맞아가며 콩 대가리를 잘라먹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는데 그게 적중했던 모양입니다.


거기다 500평을 일일이 모종을 내어 옮겨심기에는 일손이 딸려 콩을 직파 했습니다. 애초에 날짐승들의 먹을 것을 대비해 콩을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을 심어 놓았습니다. 촘촘하게 심었기 때문에 날짐승들이 알 콩을 파먹고 싹을 뜯어먹어도 옮겨 심을 콩 모종은 충분했습니다.

a 콩 반 풀 반이지만 그런대로 튼실한 콩이 맺혔다.

콩 반 풀 반이지만 그런대로 튼실한 콩이 맺혔다. ⓒ 송성영

주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콩은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삐죽삐죽 솟아오르는 풀을 제거하는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풀에게는 독약인 농약을 쳐야 한다고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지만 나는 농약 대신 거금을 들여 ‘풀밀어’ 라는 수동형 풀 깎는 기계를 사들였습니다.

그 풀밀어를 밭고랑 사이를 오가며 밀고 다니며 풀을 제거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500평이라는 너른 밭고랑 땅을 파헤치듯 밀고 다니는 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거기다 집에서 콩밭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다보니 어린 풀을 밀어낼 시기를 놓쳐버려 풀들이 너무 웃자라 있었습니다. ‘풀밀어’로 밭고랑 사이의 풀을 제거하는 데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었습니다.

결국 풀밀어를 집구석에 처박아 놓고 힘차게 자라 오르는 콩대를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콩들이 날짐승들의 눈초리를 용케 피했듯이 콩대가 무성하게 자라 그늘막을 치고 풀을 잡아 줄 것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풀들 역시 무성한 콩대와 시합을 벌이기라도 하듯 무성하게 올라왔습니다.

콩밭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습니다

a 콩 주변에 솟아 오른 쑥, 내년에는 이 쑥을 뜯어 쑥차를 만들 요량이다.

콩 주변에 솟아 오른 쑥, 내년에는 이 쑥을 뜯어 쑥차를 만들 요량이다. ⓒ 송성영

나는 여전히 격투기를 관전하는 구경꾼처럼 그냥 맥 손을 놓고 지켜보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콩과 풀들은 서로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콩밭은 둘 중 하나가 쓰러져야 승부가 가려지는 그런 피 터지는 격투기 현장이 아니었습니다. 콩을 수확할 무렵 콩과 풀들은 모두가 승자처럼 두 손을 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콩과 풀 모두가 승자였습니다. 아니 애초에 콩밭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습니다. 싸움도 없었습니다. 서로 공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땅의 품안에서 서로 조금씩 자리를 양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땅은 풀이니 콩이니 차별하지 않고 모두를 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풀과 공존하면 콩 수확은 어떻게 하냐고요?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면 콩보다 뒤늦게 자란 풀들은 콩 수확에 많은 이득을 주었다고 봅니다.

콩대가 너무 웃자라 열매를 부실하게 맺게 되는 것을 견제해 주었고, 물 빠짐이 좋지 않은 땅을 부드럽게 해주어 물이 잘 빠지게 했으며, 침수로 콩 뿌리가 썩어문드러지지 않도록 고인 물을 빨아 드린 것 또한 풀이었습니다. 병충해를 막아주었던 것 역시 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풀과 콩은 서로 살아남기 위해 건강한 힘을 키워 나갔던 것입니다. 그 힘의 균형을 이뤄가며 공존했던 것입니다. 풀이 너무 웃자라면 콩이 부실하게 될 것이고, 콩이 너무 웃자라도 풀이 부실하게 됩니다. 콩밭은 그렇게 내게 균형 잡힌 공존의 평화를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풀을 제거하면 좀 더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습니다. 굳이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손으로 직접 풀을 제거한다면 좀 더 많은 수확량을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일손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농사일이 힘들어집니다. 농사일이 힘에 부쳐 고통스럽다면 사는 게 여러모로 부대낍니다. 농사일이라는 게 궁극적으로 기분 좋게 먹고살고자 하는 일이 아닙니까?

풀과 콩의 평화공존 그리고 굴복을 강요하는 미국

a 이종사촌 동생이 트럭을 끌고와 콩대를 실어다 주었는데 인상이가 땀을 뻘뻘흘려가며 엄마와 함께 내리고 있다.

이종사촌 동생이 트럭을 끌고와 콩대를 실어다 주었는데 인상이가 땀을 뻘뻘흘려가며 엄마와 함께 내리고 있다. ⓒ 송성영

풀과 콩의 공존을 지켜보려면 그만큼 적게 먹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풀과 콩의 공존을 지켜보려면 농약이나 힘들게 손 제초를 하는 것만큼의 수확량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기분 좋은 콩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적게 벌어먹는 여유가 생기면 콩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콩은 적게 수확해서 먹는 내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줍니다. 콩 뿌리는 한동안 버림받았던 땅을 부드럽게 해주었고 무럭무럭 자라 실한 콩으로 메주에 구수한 된장을 내 줄 것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아낌없이 콩을 내준 콩대는 아궁이에서 활활 타올라 온기를 주고 또 재가 되어 천연염색을 하시는 분에게 매염제로 선물 할 수 있습니다.

콩밭 가장자리에 쑥쑥 솟아오르는 풀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쑥은 그냥 풀이 아닙니다. 내년에는 이 쑥을 뜯어 쑥차를 만들까 합니다. 쑥차를 만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웃자라지 못하도록 여린 쑥을 뜯게 되면 콩의 수확량 또한 늘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콩 수확을 다 마쳤는데도 여전히 미국의 하수인들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현실성 없는 헛소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미국의 핵무기 위협에 대응하여 자구책으로 핵실험을 했다는 북한을 어떻게 하지 못해 안달입니다. 어떤 하수인들은 국민들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조차 불만인가 봅니다.

북한에게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조건 힘있는 미국에게 두 손 들고 굴복하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미국의 군홧발 아래 납작 엎드려 미국의 하수인이 되어 평화 아닌 평화를 얻으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먹히고 먹는 힘의 논리에 지배되는 세상에서의 '진정한 평화'는 최소한의 힘의 균형이 이뤄졌을 때만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풀과 콩의 '평화로운 공존'이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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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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