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노모의 '자식사랑표' 고무신

매년 추석이면 흰고무신을 사놓고 기다리시는 어머니

등록 2006.10.12 17:51수정 2006.10.1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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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타는 차량 운전석에는 언젠가부터 항시 흰고무신 한 켤레가 실려 있다. 10여 년 전 설날에 세배 다니면서 아버님의 흰고무신을 신고 다녀보니 의외로 편리하고 기분이 괜찮아서 예비용으로 사놓으신 아버님 고무신을 한 켤레 차에 싣고 서울로 오게되었다.


a 장거리 운전할 때나 산보를 할 때 유용하게 신는 팔순 노모가 사주신 흰고무신

장거리 운전할 때나 산보를 할 때 유용하게 신는 팔순 노모가 사주신 흰고무신 ⓒ 양동정

그런데 이 흰고무신을 장시간 운전할 때나 짧은 거리 산보를 할 때 신어보니 신발 바닥이 얇아 발바닥이 땅에 닿는 촉감이 신선하다. 예를 들면 아스팔트를 걸을때 바닥 포장재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지압을 해주는 듯하다.

그 외에도 신고 벗을 때 슬리퍼처럼 편리하고, 가볍고, 운전할 때도 신발을 벗고 운전하는 것 같아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발바닥 촉감이 신선하다. 이런 저런 사유로 항시 흰고무신을 애용하는 저를 보신 80세 어머님께서 매년 추석때가 되면 차례음식 장을 보시러 가서 흰고무신을 한 켤레씩 사놓으신다.

아마도 신발을 살 때면 "둘째아들 줄 것"이라며 사실 것이다.

흰고무신은 서울같은 대도시에서 신는 사람이 귀하여 신발가게에서 구하기가 힘드나 고향 순천시내의 5일장인 아랫장에 가면 아직도 흰고무신이나 검정고무신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하며 이번에도 어김없이 흰고무신 한 켤레를 내놓으셨다.

a 어머님이 사다놓으신 자식사랑표 백구두

어머님이 사다놓으신 자식사랑표 백구두 ⓒ 양동정

"또 고무신 사놓으셨네요. 아직 멀쩡한데" 하고 말씀 드렸더니 "그러냐. 2000원 밖에 안가니 넣어두었다 신어라"하신다. 어릴 적에는 설날에나 새 고무신을 신을 수 있었던 기억을 하며 한번 신어보니 발에 너무 꼭 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270mm를 사야 하는데 265mm를 사오셨던 것이다. 신발이 작은데요? 했더니 "이제 늙어서 아들 신발 치수도 잊어먹는구나" 하며 "놔두고 올라가라. 바꿔다 놓을테니 설에 와서 가져가라" 하신다.

아마도 우리 어머니 다음달 고조부 제사에 쓰실 제수품 장보러 가실 때 흰고무신을 들고 아랫장의 신발가게를 찾으실 것이다. 부모님의 자식사랑이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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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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