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심은 벼 우리가 거두어요

대안학교 '원경고' 학생들의 벼 베기

등록 2006.10.11 16:27수정 2006.10.1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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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선생님부터 시범을

선생님부터 시범을 ⓒ 정일관


경남 합천 적중면에서 대안교육을 일구어 가는 원경고등학교에서 10월 10일 자연 친화교육의 하나인 벼 베기 체험을 하였습니다.

지난 6월 13일 땡볕을 받으며 아이들이 한 손 한 손 정성껏 심은 모들이 여름을 지나는 동안 나락으로 여물어진 벼로 성장하여 어서 베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넉 달 정도의 기다림과 정성이 맺은 결과입니다.

콤바인만 부르면 벼 베기에 탈곡까지 끝내주지만 모로부터 벼로, 나락으로, 쌀로, 밥으로 이어지는 순환을 통해 우리가 살아있을 수 있음을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원경고등학교는 아이들에게 낫으로 벼를 베는 체험을 하게 하였습니다.

벼 베기는 특히 학교 주변에 너른 논이 많고 쌀 농사를 주로 하는 곳이기 때문에, 지역의 특성에 맞추어 지역과 함께 하는 체험학습이기에 더욱 그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오전 1교시에 아이들을 모두 모아 벼 베기 요령을 가르치고, 낫으로 인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유의사항을 재차 삼차 교육하고 나서 2교시부터 아이들을 학교 뒤에 있는 학교 체험 논으로 넣었습니다.

머뭇거리는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이기 위해 선생님 한 분이 먼저 들어가서 벼를 베었습니다. 아이들도 하나 둘 들어와서 벼를 베기 시작하였는데, 한 아이가 베면 뒤에서 다른 아이가 벤 벼를 받아 그 자리에 가지런히 눕혔습니다. 잘 말려서 탈곡해야 하니까요.

아이들이 들어가자 논에 있던 개구리들이 놀라서 이리저리 튀는 바람에 선생님이나 아이들도 덩달아 놀라 소리를 질러대었습니다.


a 베는 속도가 차이 나서 불규칙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베는 속도가 차이 나서 불규칙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 정일관


a 벼를 베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

벼를 베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 ⓒ 정일관

조금씩 벼가 누운 자리는 넓어지면서 힘이 들어 쉬엄쉬엄 쉬기도 하였지만 먼저 논에 들어간 2학년 아이들은 벼 베기가 정말 재미있다며 다음 시간에 1학년 아이들이 베어야 할 분량까지 베기도 하여 벼 베기 체험이 학교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교육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2학년 아이들에 이어 다음 시간에는 1학년 아이들이 낫을 받아 벼 베기 작업을 하였습니다. 1학년 아이들 역시 2학년 아이들 못지 않게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작업하였는데요, 2학년 아이들이 많이 베는 바람에 벨 것이 줄어들었다며 아쉬워하였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벼 베기를 매우 즐거워하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낫을 잡고 벼를 베어 보았다는 한 여학생은 처음에 낫을 잡았을 땐 무서웠지만 갈수록 재미가 있었다며, 쌀을 생산하는 한 과정에 자신이 참여하게 되어 기뻤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벤 벼는 이제 누운 채로 따가운 가을 햇살에 말라가고 있습니다. 하루를 겨우 지났는데도 벌써 눅눅한 벼가 까슬까슬하게 말라가고 있습니다. 한두 번 더 벼를 뒤집어 말린 후에 탈곡기 속으로 넣어야 하겠지요.

대안학교 아이들의 자연 친화교육인 벼 베기 체험으로 통해 우리 아이들이 또 한 걸음 자연과 가까이 하고, 농사일이 남의 일이 아님을, 우리 생명과 관계 있는 일임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a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벤 벼들이 가지런히 논 위에 누워 가을 햇살에 말라가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벤 벼들이 가지런히 논 위에 누워 가을 햇살에 말라가고 있습니다. ⓒ 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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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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