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향의 애절한 사랑 묻힌 단양

관광버스 타고 단양팔경 한나절에 돌아보기

등록 2006.10.12 14:59수정 2006.10.13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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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단양팔경 중 하나인 도담 삼봉. 퇴계 이황 뿐 아니라 젊은 시절을 단양에서 보냈던 정도전은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지었을 정도로 단양을 아낀 인물 중 하나다.

단양팔경 중 하나인 도담 삼봉. 퇴계 이황 뿐 아니라 젊은 시절을 단양에서 보냈던 정도전은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지었을 정도로 단양을 아낀 인물 중 하나다. ⓒ 조경국

"두향아, 왜 그리 얼굴이 어두운 게냐."
"아닙니다."
"내가 갈 날이 얼마 아니 남아서 그런 것이냐."
"……."


두향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후 그의 곁에서 말없이 뒷바라지를 해온 두향은 퇴계가 풍기 군수로 임지를 옮겨야 한다는 소식에 눈물이 솟았다. 참아야했지만 솟구치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가슴 속으로 울음을 삭이기엔 너무나 큰 슬픔이었다.


두향은 비록 관기의 몸이었으나 거문고와 시서화에 이르기까지 재능이 넘쳤다. 퇴계는 그런 그녀를 딸처럼 아꼈다. "참으로 아까운 일이로고. 이렇게 문장이 좋은 것을. 네가 양반가 아이로만 태어났어도…" 혀를 끌끌 차는 퇴계의 곁에서 두향은 조용히 먹을 갈았다.

눈가에 고였던 눈물이 벼루에 떨어졌다. 눈물을 먹은 먹이 잠시 투명해졌다 이내 윤기나는 검은 빛으로 돌아왔다. 두향은 붓을 들어 먹을 묻혔다. "준비가 되었사옵니다" 왼손으로 오른쪽 소매 끝을 살짝 끌어올렸다. 어떻게든 울음을 보여선 아니된다 머릿속으로는 되뇌었지만 가슴은 머리를 따라가지 않았다. 다시 떨어진 눈물이 흰 화선지에 번졌다.

퇴계는 두향의 울음을 애써 외면했다. 부임지로 관기를 데려갈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다독거린다 한들 두향의 마음을 풀어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관기 신분을 벗어나게 해주는 것밖엔 두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퇴계는 나지막이 시를 읊었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死別己呑聲)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네.(生別常惻測)"


눈물이 떨어져 번졌던 화선지에 까맣게 타들어가는 두향의 마음처럼 먹이 스며들었다. 슬픔에 북받친 붓은 두 번째 '별'자에서 더 이상 나아가질 못했다.


a 충주호를 가로질러 가는 관광선. 충주호에선 다양한 뱃길 여행이 가능하다. 특히 단풍이 지는 가을이 뱃길 여행을 하기엔 가장 좋은 시기.

충주호를 가로질러 가는 관광선. 충주호에선 다양한 뱃길 여행이 가능하다. 특히 단풍이 지는 가을이 뱃길 여행을 하기엔 가장 좋은 시기. ⓒ 조경국

퇴계와 두향의 사랑...전설이 되어 말목산 끝자락에 남다

버스가 단양땅에 들어서니 퇴계와 두향의 이별이 생각난다. 항간에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사실이다 아니다 진위 논란이 있지만 그게 대순가. 이미 전설이 된 이야기를 시시비비 가릴 필요가 있을까. 사실이 아닐지라도 아름다운 이야기지 않은가.


하지만 퇴계가 단양에서 풍기로 부임지를 옮긴 후 관기의 신분을 벗은 두향이 평생 수절하고, 퇴계가 세상을 떠나자 남한강에 몸을 던졌다는 결말에선 괜히 심술이 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두향이 불쌍하다. 더 이상 임이 찾아오지 않았을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인생과 목숨을 버리다니. 혹시 그 사실만은 그 시대의 남정네들이 만들어낸 '픽션'이 아닐까.

a 단양팔경 중 최고의 절경은 사인암이다. 사인암 아래 쪽엔 바위에 새긴 바둑판이 있고, 절경을 찬탄하는 시구들이 곳곳에 있다.

단양팔경 중 최고의 절경은 사인암이다. 사인암 아래 쪽엔 바위에 새긴 바둑판이 있고, 절경을 찬탄하는 시구들이 곳곳에 있다. ⓒ 조경국

엉뚱한 곳으로 생각을 뻗치니 빨리 관광선에 오르라고 재촉이다. 괜한 의심 말고 청풍명월 충주호나 제대로 구경하라는 뜻인가. 애초에 1박2일 동안(그중 하루는 한나절이다) 관광버스를 타고 단양팔경과 충주호를 모두 보겠다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퇴계와 두향이 함께 거문고 타며 시를 읊었을 절경들을 '주마간산'으로 훑고 가려니 아니 본 것보다 못하다. 감칠맛 나게 해놓고 다시 한번 오라는 셈인가. 하선암˙중선암˙상선암˙구담봉˙옥순봉˙도담삼봉˙석문˙사인봉까지 단양팔경을 모두 보고 즐기려면 적어도 2박3일은 잡아야겠다.

단양팔경은 원래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해서 정한 것이고 단양팔경 중 옥순봉은 원래 단양땅이 아니라 청풍땅이었다고 한다. 옥순봉을 단양팔경으로 정하고 싶었던 퇴계는 청풍부사를 찾아가 옥순봉을 단양땅으로 넘겨 달라 부탁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아쉬운 마음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는 글귀를 새기게 된다.

'단구'은 단양의 옛 이름이니 어떻게든 단양팔경을 정하고 싶었던 마음을 그렇게라도 표현했던 것이다. 이후 청풍부사가 '단구동문'이라는 글귀를 보고 옥순봉을 단양에 양보했다고 전해진다.

이 일화만 보더라도 임지를 돌아보며 퇴계가 얼마나 단양땅에 매혹되었는지 느낄 수 있다. 퇴계는 <단양산수기>를 지어 단양의 빼어난 산수를 찬탄했다. 아마 두향과 더불어 평생 단양에서 살고 싶었을 것이다.

퇴계, 단양에서 학문과 정치를 접목시키다

퇴계는 9개월 남짓 짧은 기간동안 단양군수로 재직하며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퇴계는 사십대 초반 암행어사로 충청도를 돌며 탐관오리의 학정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고초를 눈으로 직접 보았다.

남한강이 흐르고 소백산 끝자락에 묻힌 단양은 풍부한 물산이 나는 곳이었지만 백성들의 생활은 항상 궁핍했다. 마흔여덟 중년의 나이에 자신이 '암행'했던 충청도 단양의 지방관으로 내려와 원숙기에 이른 자신의 학문을 현실 정치에 접목시켜 보려 했을 것이다.

a 차창 너머로 본 성신양회 시멘트 공장. 단양은 한 때 시멘트 산업이 번창했으나 지금은 예전의 활기를 찾아 볼 수 없다. 석회암 지대가 많은 단양에는 고수동굴, 천동동굴 등 단양팔경 외에도 많은 볼거리가 있다.

차창 너머로 본 성신양회 시멘트 공장. 단양은 한 때 시멘트 산업이 번창했으나 지금은 예전의 활기를 찾아 볼 수 없다. 석회암 지대가 많은 단양에는 고수동굴, 천동동굴 등 단양팔경 외에도 많은 볼거리가 있다. ⓒ 조경국

두 번째 부인 권씨를 여읜 46세 되던 해에 호를 '퇴계'라 짓고 대사성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조정의 부름은 끝이 없었고, 결국 48세에 외직 단양군수를 청하여 나아간 것은 그동안 중앙에서 쌓았던 정치적 학문적 소양을 모두 실험해 보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뱃전 물보라에 붉은 노을이 부서진다. 다른 이들은 모두 바깥 갑판에서 노을지는 충주호의 아름다움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창문을 여니 텅빈 객실로 시원한 바람 불어들어 온다. 장회나루를 떠난 관광선이 길게 뱃고동을 울리며 단양땅을 벗어나 제천 청풍나루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한나절 단양 구경을 마치고 아쉬움만 안은 채 다시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나의 속 좁은 아쉬움이 좀 더 자신의 이상향을 실현해보고자 했으나 너무나도 짧았던 부임 기간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랑했던 두향이 마저 남겨놓고 가야했던 퇴계의 마음과 어찌 견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21~22일 충북 청풍명월 팸투어를 다녀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9월 21~22일 충북 청풍명월 팸투어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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