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노 요코를 제대로 알고 있나

예술가 요코의 삶을 조명한 <오노 요코 - 마녀에서 예술가로>

등록 2006.10.15 17:53수정 2006.10.17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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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요코를 거론할 때면 꼭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바로 비틀스 멤버 중의 한 사람이자 그녀의 남편이었던 존 레넌이다. 오노 요코와 존 레넌은 샴쌍둥이처럼 항상 붙어다니며 사람들에게 회자되곤 했다. 그러나 존 레넌의 유명세 때문인지 요코는 늘 존 레넌의 아내로서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 그녀가 시대를 앞서간 행위예술가이자 뮤지션이자 영화감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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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

<오노 요코-마녀에서 예술가로>는 요코의 생애와 그녀의 예술세계를 집중 조명한 책이다. 요코는 전통적 형식을 과감히 버렸던 예술가였다. 동시에 그녀는 비틀스를 해체 시킨 주범으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어느 쪽이 요코의 진정한 모습인가.


오노 요코는 1933년 겨울, 도쿄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상류층의 수준 높은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란 요코는 사춘기 시절, 아버지의 직장문제로 처음 미국땅을 밟으면서 히피 문화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맛보게 된다. 그 후 그녀는 '플럭시스'(1960년대 해프닝을 표현 양식으로 삼아 활동한 국제적 예술가그룹) 운동에 적극 가담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행위예술가로서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그녀가 주로 펼쳤던 행위예술이란 훔쳐보기, 부수기, 자르기, 외치기, 깨뜨리기, 파괴하기 등 당시로서는 낯설고 생소하기만 한 퍼포먼스의 종합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통해 이국땅에서 동양인 여성으로서 겪어야 하는 온갖 억압과 차별, 폭력에 맞서고자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녀는 행위예술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문란하고 어지러운 생활, 친정으로부터 차가운 외면, 건강 악화 등으로 인해 요코는 이 당시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감까지 맛보아야 했다.

요코가 행위예술로가로서 이름을 얻게 된 계기는 우연히 영국 런던에 있는 행위예술 축제에 참여하면서부터이다. 당시 런던은 전통문화를 거부하는 청년 문화의 중심지였다. 새로움과 창조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이 도시는 전통을 거부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요코의 예술 이념과 잘 맞아떨어졌다. 행위예술가로 이름을 얻게 되자 요코는 영화를 찍거나 음반을 내는 등 여타 예술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곤 했다.

특히 80분간, 365명의 벌거벗은 엉덩이를 촬영한 '제4번 궁둥이'라는 영화는 당시 상영 자체가 금지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전통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런던에서조차 요코의 급진적인 예술을 받아들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영화가 공개 상연되자 의견이 분분했다. 영국에서는 영화 상영 자체가 금지되었다. 오노 요코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전혀 문제가 없는 영화다. 살인을 보여준 것도 폭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왜 이 영화가 허용되지 못한단 말인가?" 이 말로 그녀는 옷을 걸치지 않은 엉덩이를 보고 흥분하면서도 베트남 전쟁처럼 인간을 학살하는 전쟁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는 시대의 이중적인 도덕성을 폭로하였다' (128쪽)


오노 요코와 존 레넌의 첫 만남에 대한 기록은 아직도 분분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 의하면 존 레넌이 요코에게 먼저 접근하기 위해 그녀의 전시회를 찾은 것으로 나와있다. 당시 존 레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룹이었던 비틀스의 활동에 대해 일종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에게는 뭔가 다른 색다른 예술적 영감이 필요했다. 존 레넌은 오노 요코를 보는 순간, 그녀가 자신의 예술활동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계기가 될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존에게 끊임없는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요코


오노 요코 역시 존 레넌을 통해 자신에게 생소했던 대중음악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처럼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연인이자, 창조적 영감을 나누는 예술적 동지였다. 요코는 존 레넌을 통해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며 존 레넌은 요코로부터 색다른 예술적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둘은 평화와 자유, 반전운동을 외치며 이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예술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존 레넌이 설치미술을 하는가 하면 요코가 음반을 내기도 했다. 두 사람의 예술 영역과 소재, 방법은 무한했으며 자유로웠다.

비틀스 그룹에서 이탈하려 하는 존 레넌을 두고 대중들은 요코가 충동질해서 그런 것이라며 그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비틀스 멤버들까지 오노 요코를 못마땅해했다. 오노 요코의 전시회를 존 레넌에게 소개해줌으로써 둘 사이의 교량역할을 했던 폴 매카트니가 비틀스 멤버 중 요코를 가장 비난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한때 별거에 들어갔던 두 사람은 존 레넌의 끈질긴 구애로 재결합하게 되고 두 사람은 또다시 예술혼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980년 12월 8일 존 레넌이 암살당함으로써 두 사람의 깊은 인연도 끝을 맺게 된다. 오노 요코는 그 후로도 평화와 반전 메시지를 담은 앨범과 예술작품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노 요코는 자기 자리와 자신에 이르는 길을 찾았다. 그녀의 예술은 호평받았다. 일생 동안 보여주었던 굽히지 않는 자세는 평화를 아끼고 정의를 추구하는 인간의 양심을 굳건히 믿어온 결과였다' (353쪽)

이 책은 오노 요코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행위예술이나 퍼포먼스 등에 관심이 많은 미술학도에게 꽤 유익한 책이다. 왜냐하면 요코 자신이 플럭서스 운동을 비롯해 현대 행위예술계의 산 증인으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각종 현대 예술사조와 예술가들이 많이 인용되고 있어 이 방면에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좀 당혹스럽고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주석이 상세하게 붙여있어 글을 읽는데 큰 지장은 없다.

이 책을 지은 클라우스 휘브너는 시인이자 소설가로 유명 잡지에 혁신적인 작가 및 음악가들에 관한 평론 및 전기를 기고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마녀에서 예술가로 오노 요코/ 클라우스 휘브너 지음, 장혜경 옮김/ 도서출판 솔/ 18,000원

덧붙이는 글 마녀에서 예술가로 오노 요코/ 클라우스 휘브너 지음, 장혜경 옮김/ 도서출판 솔/ 18,000원

오노 요코 - 마녀에서 예술가로

클라우스 휘브너 지음, 장혜경 옮김,
솔출판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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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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