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콩밥 먹는 남편

텃밭의 풍족한 콩 때문에 생긴 즐거운 고민

등록 2006.10.17 14:15수정 2006.10.1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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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난 밤밥 말고, 그냥 밥 좀 줘."
"어머니, 전 콩 좀 빼 주세요."



아침밥을 푸는데 남편이랑 아들이 이구동성으로 내게 부탁을 한다. 자기들 밥에는 콩이랑 밤을 좀 빼 달란다.

"왜 영양 많고 좋은데 빼 달라 그래? 밥만 먹어도 영양분이 다 채워지겠다."
"요새는 영양이 모자라고 그러는 시대는 아니잖아. 영양분이 넘쳐서 탈인 시댄데 무슨 영양분 타령이야? 난 밥에 뭐 넣는 거 정말 싫은데…. 콩은 넣더라도 밤은 좀 빼 줘."


하얀 쌀밥이 제일 좋다는 우리 남편은 밥에 뭐 넣는 걸 싫어한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우리 아들 또한 맨밥을 좋아하지 밥에 콩이 들어가면 질색을 한다.

부자의 이구동성

아유, 요렇게 이쁘게 들어 있네요.
아유, 요렇게 이쁘게 들어 있네요.이승숙
요즘 우리 집은 온갖 것들을 다 넣어서 밥을 한다. 쌀 한 공기에 흑미 약간, 그리고 보리쌀 조금에 콩과 밤을 넣어서 밥을 짓는다. 오늘 아침에는 생땅콩이 보이기에 그것도 몇 개 넣었다. 그랬더니 밥맛이 없다며 투정 아닌 투정들을 부린다.


하얀 쌀로만 밥을 지으면 밥맛은 좋다. 밥을 풀려고 솥뚜껑을 열면 밥 냄새도 좋다. 물기 없이 자르르르 윤기가 나는 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면 씹는 맛도 또한 좋다. 그러나 밥에 온갖 잡곡들을 넣어서 밥을 하면 밥 짓기가 쉽지 않다. 물을 잘 잡아주지 않으면 밥에 물기가 많아진다. 그래서 주걱으로 밥을 뜰 때면 솥전에 물기가 비치는 게 벌써 밥이 맛이 없어 보인다.

하얀 쌀밥은 왠지 뭔가 부족해 보인다. 쌀눈에 영양가가 많다는데, 정미소에서 도정을 할 때 쌀눈이 다 떨어져 나가 버린다. 그러니 쌀로만 밥을 하면 괜히 뭔가 부족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늘 뭔가를 쌀과 함께 넣어서 밥을 하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집 남자들은 투정 아닌 투정을 하는 것이다.


우리 집 텃밭에는 일부러 씨를 뿌리지 않아도 해마다 저절로 나는 게 몇 가지가 있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심고 거둔 곡식들이 땅에 떨어져서 저절로 해마다 나는 거다. 그중에 콩도 끼어 있다. 그것도 몇 가지가 저절로 난다.

가을이 되니까 콩 꼬투리가 여물어간다. 어떤 것들은 벌써 갈라져서 콩알들이 땅에 떨어져 버렸다. 그렇게 떨어진 콩이 내년에 또 나는 거다.

콩잎 쪄서 밥 싸먹을 욕심으로 남편이 심은 동부콩. 콩 싫어하는 남편이 자충수를 두었네요.
콩잎 쪄서 밥 싸먹을 욕심으로 남편이 심은 동부콩. 콩 싫어하는 남편이 자충수를 두었네요.이승숙
남편이 낫을 들고 가더니 콩대를 베어왔다. 손보지 않은 콩대는 이리저리 엉켜서 제멋대로 자라 있었다. 안마당에 멍석을 깔고 콩대를 부려놓았다. 그리고 둘이 앉아서 콩 꼬투리를 따기 시작했다. 거두지 않았는데도 제법 많았다.

콩 꼬투리를 까서 콩을 모으기 시작했다. 동부콩은 기다란 꼬투리에 자잘한 콩알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두불콩이라 불렀던 콩도 있었다. 색깔도 참 희한했다. 모란꽃 색을 띤 콩은 정말 아름다웠다. 또 어떤 콩은 마치 얼룩말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여보 이거 한번 봐. 꼭 무슨 곤충 같지 않아?"

남편이 콩을 까면서 신기한 듯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얼룩말 무늬를 닮은 그 콩들은 어떻게 보면 묘한 곤충같이 보이기도 했다.

"이 콩을 우리 어릴 때는 두불콩이라 불렀는데, 당신 동네에서는 뭐라 불렀어?"
"글쎄 뭐라 불렀지?"
"난 두불콩이 참 좋더라. 밥 위에 얹어도 좋고 반찬으로 해도 좋고 그렇더라. 나 이 두불콩으로 맨날 밥에 얹어야겠다."


무늬가 이상한 콩을 요모조모 살펴보던 남편이 내 말을 듣더니 울상을 짓는다.

"아이쿠야, 내가 자충수를 둔 거 같네."

남편이 콩밥을 싫어하는 이유

콩 깍지를 까는 재미에 앉은 자리에서 이만큼 깠네요.
콩 깍지를 까는 재미에 앉은 자리에서 이만큼 깠네요.이승숙
밥에 들어있는 콩을 유달리 싫어하는 남편은 밥할 때마다 콩을 얹겠다는 내 말에 짐짓 울상을 짓는다.

"아유, 콩 싫다면서 왜 콩 심었어? 난 당신이 봄에 콩 심을 때 벌써 알아봤다."
"그러게 말야. 콩을 내가 왜 심었지? 저절로 나는 것만 해도 이렇게 지천인데 왜 일부러 콩을 더 심었지? 아이구 내가 자충수를 두었네."
"여보, 밥 위에 콩이 그렇게 싫어? 그러면 콩은 나 혼자 먹고 당신이랑 영준이는 맨밥 줄게."


남편이 맨밥만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남편이 어렸을 때, 그때 우리 시집은 가세가 넉넉지를 못해서 늘 뭔가를 섞은 밥을 먹었다고 한다. 무우밥도 많이 해먹었고, 보리밥은 양반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밥 위에 뭐 얹는 걸 유달리 싫어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들도 제 아버지 식성을 그대로 닮아서 밥 위에 뭐 얹는 걸 싫어한다. 아들도 역시 맨밥만을 좋아한다. 나는 일껏 몸을 생각해서 영양밥을 해주어도 두 부자는 그걸 마다한다.

아들이 슬며시 제 밥그릇의 콩을 내 밥그릇으로 옮겨 놓는다.

"아들아, 콩이 싫어? 그럼 엄마가 콩은 빼고 떠줄게. 그런데 콩이 몸에 좋다는데, 그럼 저 콩으로 콩비지 많이 해줄게. 됐지?"

남편이랑 나란히 앉아서 깐 콩이 제법 많았다. 밭에는 아직 덜 여문 서리태도 있는데, 이 콩들을 다 어찌 소비할까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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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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