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30분의 기다림, 사마귀님의 오찬

[포토에세이] 생태공원에서 관찰한 사마귀의 나비 사냥

등록 2006.10.20 06:44수정 2006.10.2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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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만에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있는 길동자연생태공원에 가보았습니다. 나무들은 서서히 단풍옷을 해입고, 가을꽃들은 마지막 떨이에 분주하더군요.


꽃으로는 그만 공원 일대를 점령해버린 서양등골나물이 압도적입니다. 워낙 번식력이 강하고 다른 식물들을 밀어내는 통에 환경부가 생태계 교란 야생동식물로 지정해놓았을 정도지만, 곤충들이야 그런 것을 가릴 턱이 있나요.

a 네발나비

네발나비 ⓒ 박정민

수많은 나비들이 꿀을 찾아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네발나비가 가장 많이 보입니다. 서울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종이지요. 앞발 두 개가 퇴화되어 얼핏 봐서는 다리가 넷밖에 안돼 보입니다. 네발나비과의 나비들이 가진 공통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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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민

그러나 풀숲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나비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아까부터 이들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수풀 속의 무법자'로 불리는 사마귀입니다.

때는 10월, 바로 한 해 중 사마귀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입니다. 모든 한국의 사마귀 종류는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만 성충을 볼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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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민

나비가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조금씩 다가서는 모습은 흡사 <여고괴담>입니다. 뒤늦게 눈치를 챈 나비가 날갯짓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뿔싸…, 날개에 이미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지라 동작이 재빠르지 못합니다.

나비에게는 사마귀뿐 아니라 거미·잠자리·새 등 천적이 많습니다. 특히 가을이 되면 날개가 성치 않은 나비가 흔히 눈에 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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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민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번까지 운이 따라주지는 못했군요. 아마도 예전의 부상이 치명타가 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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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민

빽빽이 가시가 돋친 저 갈고리 손아귀에 걸려든 이상 빠져나갈 도리는 없습니다. 배부터 시작해서 그야말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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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민

날개는 먹지 않고 버립니다. 덩치 큰 구경꾼이 미심쩍은지 식사 도중에도 카메라를 계속 흘끗거립니다. 하지만 자리를 옮기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수레바퀴 앞에서도 당당하다는 성격이니 얌전한 사진사를 겁낼 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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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민

어느새 나비는 그만 더듬이만 남고 말았습니다. 식사에 걸린 시간은 채 5분이 되지 않습니다. 녀석으로서는 좀 허탈할지도 모르겠군요. 사실은 단번에 거둔 성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관찰한 것만도 세 번의 시도가 있었고, 그에 걸린 시간이 장장 2시간 반이었습니다. 당사자는 적어도 그보다는 더 기다렸다는 얘기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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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민

맨손으로 식사를 했으니 깨끗이 손을 씻어야겠습니다. 마치 포유류처럼 입으로 앞발을 씻고 가다듬는 모습은 천연덕스럽기까지 합니다.

나비의 팬이시라면 여기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보고, 안 그래도 비호감이던 사마귀를 더 미워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사마귀는 곤충 사회의 최상위자입니다. 벌이나 거미, 심지어는 동족상잔도 서슴지 않으며, 더러는 청개구리나 도마뱀 새끼까지 덮칠 정도라고 하니까요. 교미 후의 수컷 포식으로도 악명이 높지요. (어떤 수컷은 내빼는 데 성공하기도 합니다만.)

'맹수'답게 보유하고 있는 능력도 탁월합니다. 사냥에 최적화된 앞발, 밤이면 검은색으로 변하면서 시력이 급등하는 겹눈, 360도로 회전되는 목, 나뭇가지로 완벽하게 위장할 수 있는 몸통 모양과 보호색 등….

이러니 이름의 어원이 '死魔鬼(사마귀)'라는 설까지 있을 정도이고, 실제로 '버마재미'라는 별칭은 '범의 아재비(아저씨)'라는 뜻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사마귀를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네들이 있는 덕에 곤충계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포식자 없이 사람 눈에 예뻐 보이는 종만 남아서는 안 되는 것이 자연생태계라는 것은 누누이 확인되고 있는 진리이니까요. 심지어 사마귀끼리의 동족상잔마저도 균형 맞추기의 일환이 된다고 하는군요.

이처럼 무서운 포식자지만, 이 녀석 역시 겨울을 넘기지는 못합니다. 춥기도 하거니와 먹이로 삼을 다른 곤충들도 다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너무 추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배를 채우고 2세를 준비해야 합니다. 사마귀는 가을에 알집을 만들어 알을 낳은 후 죽음을 맞이합니다.

알집으로 겨울을 넘긴 2세들은 봄에 깨어나 성장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사마귀들은 약하기 때문에 그들 역시 다른 이들의 먹이 신세가 되는 일이 태반이라고 합니다. 딴은, 우리 중에 누가 먹지 않고 살겠습니까. 오묘하고 정교한 자연의 섭리 안에서, 사마귀도 우리도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한 생명체일 뿐입니다.

a "들었지? 그러니 나 너무 미워하지 말라구."

"들었지? 그러니 나 너무 미워하지 말라구." ⓒ 박정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송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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