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의 생존전략은 무엇일까?

[서평]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여행기>

등록 2006.10.20 14:11수정 2006.10.2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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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시는가? 바다로 여행하기를 바라는가? 약간의 도전의욕도 발휘하고 싶은가? 육지나 바다나 섬이나 산이나 어디든지 가리지 아니하는 모험심도 펼쳐보기를 원하는가? 원한다면 여러분을 그곳으로 안내하는 책이 있다. <걸리버여행기>이다.

1990년 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걸리버여행기>를 손바닥만한 영어 원문으로 처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 조카애 두 명 모아 놓고 영어를 가르치느라 교재로 삼았던 책이다. 쉬운 영어로 씌어 있어서 별 어려움 없이 읽었고 가르치기에도 좋았다. 문장이 아주 짧았기 때문이다. 붉은 색 문고판 표지로 소인국 이야기만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한편 세월이 흘러 얼마 전 독서평가 모임에 관련한 일로 완역서를 다시 읽게 되었다. 감회가 퍽 새로웠다. 다섯 번쯤 읽었다. 읽은 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했다. 동화로 알려져 있는 책인데 어린이가 읽어서 이해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많을 것 같았다. 나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깊은 의미는 어린이가 깨닫기엔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다.

물론 어렸을 때는 어린만큼만 받아들이고 성인이 된 뒤에는 성인에 해당하는 만큼만 받아들이고 공감하면 그뿐이기도 하다. 왠지 생각을 거듭해도 여전히 마음속에는 무엇인가가 계속 남아있다. 동화라고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결국 어린이도 읽어낼 수 있는 읽기방법을 찾기로 했다.

여러 가지 읽는 방법이 있겠지만 읽기의 범위를 한정하기로 했다. 주인공 걸리버의 생존전략과 생존요소는 과연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보았다. 우선 제목의 뜻을 찾아본다. 걸리버의 모험기이다. 소인국여행, 거인국여행, 떠다니는 섬나라인 라푸타 여행, 말(馬)의 나라인 후이늠 나라 여행 등 4번의 여행을 통한 걸리버의 도전기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싶었을까? 이상세계에 관한 동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인간의 이중성을 풍자하면서, 이상적인 세계를 동경하는 모습을 주인공 걸리버를 내세워 보여주고 싶어 했을 것이다.

소인국에서는 인간의 권력욕을, 거인국에서는 인간의 이기심을, 떠다니는 섬에서는 인간의 허황된 마음 등을 각각 보여준다. 걸리버에게는 모두 부정적인 공간이다. 사람이 사는 곳인데도 말이다. 마지막 말(馬)의 나라인 후이늠 나라는 다르다. 걸리버에게는 긍적적인 공간이다. 걸리버는 떠나지 않으려고 한다. 걸리버가 영원히 정착하고 싶어한 곳이다. 사람 아닌 동물이 지배하는 세상인데도 말이다. 말의 나라는 우정과 선량한 마음 이외는 없는 곳이다. 탐욕으로 뒤덮인 인간세계와는 엄청 달랐기 때문이다.


걸리버는 낯선 세계에서 과연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을까? 걸리버는 수학지식과 의학지식 등을 세계여행을 대비해 미리 준비해 놓는다.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걸리버의 언어습득능력임을 독자인 우리는 인지할 수 있다. 걸리버가 따로 언어공부를 했다는 근거는 없다. 단지 수학과 의학에 관련한 공부는 꾸준히 해두었지만 말이다.

미루어 짐작해보면 걸리버가 어학에는 이미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 언어가 다른 소인국과 거인국에서도 걸리버는 거의 5~6개월 만에 해당나라의 언어를 익혀 자기표현을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빼어난 언어능력발휘로 그때마다 걸리버는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걸리버에게는 언어습득능력이 생존요소의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장인 말(馬)의 나라에서 있었던 일은 압권이다. 주제가 가장 짙게 깔려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말(馬)이 야후(인간의 얼굴을 한 짐승: 유인원)를 지배하는 나라다. 야후는 황금을 보면 목숨을 걸고 싸운다. 먹는 것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기에 식욕이 엄청 강하다. 남의 것을 빼앗기를 좋아한다. 이와는 반대로 후이늠은 말(馬)인데, 이들은 우정과 선량한 마음의 소유자로 특징 지워지고 있다. 이것은 누구든지 말의 나라에 와본 존재라면 느낄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따라서 걸리버가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아니함은 당연한 이치로 볼 수 있다.

반면 후이늠은 인간을 야후와 동격으로 보고 있다. 후이늠의 회의결과 걸리버를 추방하기로 했다. 걸리버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후이늠 나라는 한번 결정한 사안은 수정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 말(馬)이 걸리버에게 하는 말(言)을 듣고 걸리버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결과 한 달 반 만에 다른 말(馬)의 도움을 받아 배를 만들어 항해에 나서게 된 것이리라.

머리에 박하사탕을 넣은 듯이 뇌가 싸한 느낌이다. 머리는 묵직한데 띵하게 아프지가 않다. 동화치고는 분량도 제법 넉넉한데도 말이다. 삽화를 비롯한 여러 가지 내용이 함께 떠올라 뇌에서 축제라도 벌어진 것 같다. 다 읽고 마지막 두꺼운 표지를 덮는 순간 뇌가 흥분됨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 읽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수준 높은 동화에 접근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세계명작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연령·계층·시대를 불문하고 모두가 언제나 읽을 수 있는 책이란 걸 알게 될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여행기>(장지연 옮김, 대교출판, 2002)
리더스가이드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여행기>(장지연 옮김, 대교출판, 2002)
리더스가이드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걸리버 여행기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신현철 옮김,
문학수첩,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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