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 상오창학
뜰 한가운데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육감적인 자태의 양귀비가 서 있다. 광동의 조각가 반학(潘鶴)이 91년도에 세운 작품인데, 이제 이곳 화청지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조각으로 접근하는 양귀비의 모습만으론 당시의 정황이 명확히 그려지진 않는다. 북적거리는 관광객의 소음을 잠시 잊고 살포시 연못에 눈을 내리고 나서야 약간의 상이 맺힌다.
740년 가을. 겨울을 나기 위한 현종의 긴 행렬이 이곳 화청지로 오고 있다. 행렬엔 부왕들과 친왕의 무리도 보이고 현종의 18번째 아들 수왕과 수왕비 양옥환(楊玉環)의 모습도 보인다. 당도하여 연회를 베풀던 중 현종의 눈에 구룡전(九龍殿) 연못에 비친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이 들어온다.
유부녀가 된 지 5년이고, 이미 스물둘의 나이이니 풋풋한 아름다움이야 찾을 길 없건만, 이미 지천명을 넘긴 지 오래인 현종의 눈엔 그 농익은 자태가 황홀하다. 3년 전 아내(무혜비)를 잃은 현종의 가슴에 금세 새로운 사랑이 둥지를 튼다. 겪어본 자들은 그러더군. 사랑의 아픔을 잊기엔 세월보다 좋은 것이 또 다른 사랑이라고.
그런데…, 며느리라는 사실이 현종의 맘에 걸린다. 그 할아비 고종이 부왕의 후궁인 측천무후를 취했던 바를 떠올리며 용기도 내어보지만, 이러다 '베지밀 가족'이 되지나 않을지 자못 염려스럽다. 이때 우리의 환관 고력사가 '제왕은 무치'라며 똥구멍을 살살 긁는다. 어느 영화에서 대통령으로 분한 송재호가 뱉은 대사 '남자 배꼽 아래의 일은 따지는 게 아니야'도 나레이션으로 등장한다.
드디어 현종은 아들 수왕을 왕복 2년의 광동지역에 어사로 출장 보내고, 양옥환은 '태진'이란 도사로 임명하여 가까이에 둔다. 우리의 불쌍한 수왕. 태자 쟁탈전에서 참으로 아까운 고배를 마신 수왕은 이때까지도 이 긴 출장을 자신에 대한 신임으로 받아들이며 단꿈을 꾼다. 순박한, 아니 영악한 양옥환도 이참에 현종 옆에서 확실한 점수를 따 남편을 태자 자리에 앉히겠다는, 그리하여 종내는 자신이 태자비가 되고 황후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꾼다.
그러나 어디 세상일이 사람 맘처럼만 되겠는가. 양옥환이 들어앉은 태진궁은 곧장 신방으로 변하고 끝내 수왕을 새장가 들인 현종이 양옥환을 귀비로 책봉했다. 이곳 화청지의 온천궁에서 그녀를 만난 지 5년 뒤의 일이다.
"나 사진 찍어 줘요." 아내의 말에 서서히 환각에서 깨어난다. 하얀 양귀비상 앞에 아내가 선다. 렌즈의 초점을 맞추니 파인더에 가득한 아내의 얼굴 뒤로 양귀비상이 급하게 흐려진다.
"해어화(解語花)." 나도 모르게 읊조린다.
"뭐요?" 자세를 잡던 아내가 물었다.
"말을 알아듣는 꽃. 내게는 당신이 해어화야." 아내가 히∼웃는다.
양귀비가 함수화를 건드렸더니 꽃이 부끄러워 잎을 말아올리며 시들었다는 데서 '꽃을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움'이란 별칭이 붙었다지. 이 때문에 현종이 양귀비를,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 일렀다는데, 오늘은 아내 앞에서 양귀비상이 시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