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의 강연을 듣기 위해 1000여 명의 학생이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정연경
'유엔 사무총장 진출과 한국의 세계화'의 주제로 열린 이번 강연회에서 반 장관은 "학문적 이야기는 빼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겠다"며 "유엔 사무총장 부임 이전에 한국의 국민과 젊은이에게 메시지를 줘야겠다고 생각해 모교인 서울대 총장님께 부탁을 했다"고 강연이 이루어진 배경을 설명했다.
오는 11월 15일 유엔 사무총장 취임을 앞둔 반 장관은 지난 외교관 생활을 돌아보며 사무총장에 당선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나라에 훌륭한 외교관이 많이 필요하다, 외교관의 말 한마디가 증시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운을 뗀 반 장관은 "참여정부 초기 대외 신용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용등급이 2~3단계 낮아질 수 있는 위기에서 청와대 외교자문으로써 세계의 주요한 신용등급 기관을 찾아다니면서 제2의 IMF를 막기 위해 노력했었던 것을 큰 업적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또한 "외교관 생활은 생각처럼 화려하지 않다. 특히 민주화가 탄압받던 시절 외국의 압박이 많아 어려웠다"며 "외교관은 정부 지시를 따라 그대로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소신에 맞지 않는 지시도 앵무새처럼 따라 해야할 때가 있다"고 외교관으로 겪었던 어려움을 전했다.
반 장관은 정부의 지시와 외교관 개인의 소신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외교적인 화법에 숨어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정부의 지시를 받아 이런 말을 전달한다'는 말은 정부의 지시가 내 소신과는 다르다는 말을 표현하는 말이다, 반대로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정부의 지시와 개인의 소신이 일치한다는 의미이다."
"'기름바른 장어' 대신 '유만'이라 불러달라"
반 장관은 이어 민감한 질문에 매끄럽게 잘 빠져나간다는 의미로 붙여진 기름 장어(slippery eel)란 별명에 대해 소견을 밝혔다.
"3공화국 시절부터 참여정부까지 오면서 '해바라기 외교관'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이랬다 저랬다 바뀌었다는 의미다. 요즘엔 '기름 바른 장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을 알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고 가진 30여회의 기자회견에서 외교적인 답변을 했더니 그런 것 같다."
"유엔 사무총장이 되면 192개 회원국 입장이 다 다르고, 우리나라 입장과 사무총장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말 한마디로 나라를 좌우할 수도 있어 외교적인 답변을 하다보니 그런 별명이 생긴 것 같다. 기름 장어라는 별명이 기분 나쁘지 않고 좋은 뜻이라고 생각한다"
"기름 장어라는 별명을 한자로 바꾸면 기름 유(油)에 뱀장어 만(鰻)을 쓰는데 이제 이 유만을 호로 만들어야겠다"고 말한 반 장관은 "'유만'이라는 말을 보다 좋은 뜻의 한자로 바꾸면 움직일 유(走변에 住)에 일만 만(萬)을 써서 '세상 사람을 움직인다'는 뜻이 된다. 앞으로 '유만'이라고 불러달라"고 말해 학생들의 박수와 호응을 얻었다.
이어 반 장관은 유엔 사무총장에 출마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처음에 (유엔) 사무총장 나간다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 표정이 다들 얼떨떨했다. 국회의원 선거도 안 될 것 같은 사람이 집팔고 땅팔고 해서 나가지 않느냐. 그런 꼴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청중에 자신이 사무총장이 될 수 있겠다고 확신한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요청했다.
손을 든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을 확인한 반 장관은 "내가 그런 상황에서 시작했다. 북한 핵 문제나 인권문제에 소신 있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 것은 한국이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단시간 내 이룬 성과"라고 말했다.
또한 "유엔 사무총장직의 지도력은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영국 토니 블레어 수상의 자리에 비교된다, 겨우 장관급이 어떻게 사무총장직에 맞는 지도력을 수행할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지금부터 보여주겠다"며 "당선되기까지 과정 어려웠지만 다 극복했다, 이 자리에 서게 되어 영광이고 감사하다"고 밝혔다.
"레바논 평화 유지군 문제 적극적으로 검토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