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뭉치'가 아니라 '사고뭉치'

개를 키우면서 사람의 도리를 배워갑니다

등록 2006.10.30 16:31수정 2006.10.3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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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 집 개 뭉치.

우리 집 개 뭉치. ⓒ 박명순

우리 집엔 애물단지가 하나 있다. 바로 이놈.


이놈의 이름은 뭉치다. 우리 집 성씨가 김가니, 그놈도 우리 집 성씨를 달면 '돈[金]뭉치' 가 되는 셈이다. 한낱 개 이름에조차 복을 불러들이는 간절한 소망을 묻는 남편의 저의로, 뭉치란 이름을 얻은 그놈은 사실 돈뭉치는커녕 사고뭉치에 가까웠다.

TV에서 애견 코너를 방영해 한창 '너도 나도 애견' 붐을 일으켰던 4년 전,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아메리카 코카스파니엘 잡종견 한 마리를 들이게 되었다. 마당 너른 주택이 아닌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려면 이웃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수해야 함은 물론 집안 청결에 이만저만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그러나 너른 마당이 있는 집은 내 생애 요원해 보이고, 아이들 이상으로 개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 가족회의를 거쳐 과감히 개를 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속마음은 달갑지 않으면서도 크게 반대하지 않은 어머니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견원지간이라고 했던가. 예상대로 원숭이띠이신 시어머니와 뭉치는 그야말로 상극이었다. 적잖은 연세에도 무척 깔끔하신 어머니에게 개털은 노이로제의 원인이었다. 대소변 가리는 6개월 동안은 칼끝에 선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사후처리(?)라는 역할분담은 잘 지켜지지 않았고 하루가 멀다고 이불을 빨아야만 하는 어머니로서는 무척이나 힘에 부치는 일이었던 것이다. 급기야 우리 부부에게 개를 버리던지, 부모를 버리던지 택일하라며 으름장을 놓기에 이르렀다.

예상보다 훨씬 불편한 애견 키우기. 워낙 튼튼해서 동물병원 출입이 거의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산책을 데리고 나갔다가 개가 다가가면 무슨 세균덩어리 취급하는 이웃의 불편한 시선들은 참 견디기 힘든 것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가족 어느 누구도 선뜻 개와 함께 산책 나서질 않게 되었다. 이쯤 되면 하루종일 집안에 박혀 있어야 하는 개한테도 못할 짓이다.

하루는 아이들을 앉혀놓고, 먼 친척이 사는 시골에 개를 보내자고 슬쩍 떠보았다. 그러자 말을 꺼내기도 무섭게, "그럼 엄마는 우리가 속 썩이고 못되게 굴면 갖다 버릴 거야?"라며, 바로 되받아친다.(사실, 받아줄 만한 친척도 없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고도, 뭉치는 아직도 우리와 함께 산다. 다신 안 볼 것처럼 하던 어머니도 미운 정이 들었는지 우리가 잊은 끼니까지 챙겨주곤 한다. 한 대 맞아도 꼬리치며 기어오르는 착한 뭉치의 눈망울에 비친 나는,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간사한 인간이다. 개가 좋아서 들일 땐 언제고, 불편해서 내다 버리려 하다니. 하물며 사람이야 더 소중하지 않겠는가. 뭉치로 인해 어머니에게 좀 더 신경 쓰고 배려하는 마음이 되었다.


목숨 있는 것은 함부로 들여선 안 된다. 오히려 깊은 상처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꺼이 보듬을 수 있는지 자신의 됨됨이를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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