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헌교육 반대? 니 당장 보따리 싸!"

[내 젊음을 바친 군대 20] 1986~87 '호헌 교육' 논란

등록 2006.10.28 14:51수정 2006.10.2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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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억누르고 잡아 가두고 죽이고 거짓 세뇌교육을 시켜도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잠재울 수 없었다. 1986년, 민주화 요구가 방방곡곡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가고 있었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을 수 있도록 직선제로 헌법을 바꾸라는 주장이 거세게 일고 있었다. 그러나 독재자 일당은 영속 집권이 가능한 체육관 선거의 달콤한 유혹을 버리지 못해 '개헌 불가'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작전참모부장이 주관하는 작전그룹회의에서 작전참모부장이 내게 이야기했다. "정훈감! 항간에 개헌 이야기들이 자꾸 나오고 있는데, 지금쯤은 호헌(護憲)의 당위성에 대해서 장병들에게 정훈교육을 철저히 시키는 것이 어떻겠소?" 사실상 지시나 다름없는 의견 개진이었다.

그러나 나는 주저 없이, 그리고 단호하게 반대했다. "부장님! 지금 어떤 당에서는 개헌을 해야 한다고 열렬히 주장하고 다른 당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호헌을 한다 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의견도 갈려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군이 왜 이런 정치적 사안에 끼어들어 특정 당이 주장하는 내용을 편들어 교육해야 합니까?

부장님! 지금 대통령께서 육사 출신이요 국방부 장관, 참모총장, 작전참모부장, 여기 정훈감도 모두 육사 출신 아닙니까. 저는 오래 전 초급장교 시절부터 우리 육사 출신들이 군의 주요 위치에 올라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면 이것만은 꼭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헌법에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 위반하는 정훈교육은 시키지 않으리라 꿈꾸어왔습니다. 과거에 잘못한 일은 덮어두더라도 앞으로는 이런 식의 교육은 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작전참모부장은 매우 난처한 표정이었다. "표 장군 당신은 어째서 꼭 운동권 학생들의 대변인 같은 소리만 늘 하느냐." 작전참모부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가시 돋친 반농담조의 말로 얼버무림으로써 내 '천진난만한' 일장 연설 때문에 무거워진 회의 분위기를 재치 있게 바꾸려 했다. 그러나 어색한 공기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가시지 않았다.


언제나 충성스럽게 '명령만 내리소서!'식의 애국심(?)에 불타는 다른 장군들은 '지금이 어느 때인데… 정훈감은 번지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몹시 답답한 친구'라는 눈치였다. 어떤 처장은 회의를 마친 뒤, 나와 함께 걸어 나오는 것조차 꺼려하는 것 같았다.

"헌법 위반 교육, 해야 하나" vs. "호헌 교육 하라면 할 것이지..."


정훈감실로 돌아와 과장 회의를 하고 있는데 책상에 놓인 '참모총장 전용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예! 정훈감입니다." 또 무슨 트집인가 싶어 긴장된 마음으로 응답했다. 총장은 다짜고짜로 이야기했다. "너, 지금 당장 총장실로 올라와!"

회의를 중단하고 헐레벌떡 총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니 당장 보따리 싸!" 총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형편없는 놈, 원래 문제가 많은 놈은 별 수 없어! 호헌 교육을 하라고 하면 할 것이지, 무슨 놈의 이유가 그렇게도 많아!" 총장은 내게 마구 퍼부어댔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총장의 두 눈을 똑똑히 쏘아보며 분명히 말했다. "호헌 특별정신교육 실시여부에 관한 참모부장의 문의에 대해 제 의견을 피력했을 뿐입니다. 총장님이 결심하기 전의 일입니다. 총장님께서 지시한 사항이라면 저는 두말없이 그대로 따릅니다."

총장도 가만히 듣고 보니 그렇게 불호령을 내릴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목소리를 낮췄다. "잔소리 말고 내일 아침까지 내 책상 위에 교재 초안 갖다 놔!"

기가 막혔다. 작전참모부장 방에서 열린 회의에서 내가 한 말을 누가 그렇게 빨리 총장에게 고자질한 걸까?

난 당시 정훈감실에서 나와 함께 근무한 분들에게 지금도 빚진 마음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재수 없이 괴짜 정훈감 만나 죽도록 고생만한 분들이다. 그날도 나와 교재 담당관, 타자수, 전속부관, 정훈과장 등은 모두 꼬박 밤을 지새웠다. 그런 '하찮은' 일 때문에.

사실 그들이 요구하는 교재를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듯 쉬운 일이었다.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병사들에게 역효과가 생기거나 말거나, 우국충정에 불타는 강력한 문장으로 '영명하신 대통령 각하에게 충성하자'는 내용을 수식어를 많이 붙여 표현하면 그만이었다.

각 부대 지휘관들은 참모총장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우리가 만든 그 '강력한' 교재 내용을 충성 경쟁하며 교육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6·10항쟁으로 노도와 같이 압박해오는 국민들의 거센 민주화 요구에 그들은 굴복했다. 노태우씨가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한다는 이른바 6·29선언을 발표했다.

호헌 교육은 즉각 철회됐다. 나는 다시 개헌의 당위성에 대해 철저히 교육하라고 강력히 지시했고, 참고 자료와 교재를 만드느라 부산법석을 떨었다. 속으로 "잘들 논다!"하고 쾌재를 불렀다.

상부에서 이랬다저랬다 방침을 바꾸니, 일선 지휘관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도 감히 어느 누구도 소리 내어 항의하거나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지 못하고 꼬리 내린 짐승처럼 그저 슬슬 따르기만 했다. '보안대에 찍히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위에서 시키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따라 하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 많았다.

그 후 총장은 '정훈 병과'에서 발간하는 모든 정신교육 교재를 직접 확인하겠다고 했다. 정훈감인 나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육군 규정에는 정훈교육 교재 작성의 책임과 권한은 정훈감에게 있다고 돼 있었다. 그런데 정상적인 규정 개정 절차도 없이 참모총장이 말 한 마디 하면 끝이었다. 그것이 곧 법이었다. 총장의 지시 후, '정훈'에서 만드는 모든 교재는 참모차장이 중심이 되어 참모부장들의 검토를 거친 다음에 내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내겐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정훈감실의 능력을 육군 최고 수뇌부에 알리고 보여주며 간접 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악조건도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음을 난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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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을 부하인권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 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할 것을 평생 주장하며 그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왔음. 만84세에 귀촌하여 자연인으로 살면서 인생을 마무리 해 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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