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번호는 제게 빨간 딱지입니다"

노회찬 의원, 성 전환자 성별변경 공동연대와 '성전환자가 대법원장에게' 토론회 열어

등록 2006.11.01 16:18수정 2006.11.0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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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는 1일 성전환자에 대한 대법원의 지침의 문제점을 짚는 토론회를 열었다.(성전환자 공동연대 제공)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는 1일 성전환자에 대한 대법원의 지침의 문제점을 짚는 토론회를 열었다.(성전환자 공동연대 제공)오마이뉴스

"세금을 내는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신분증을 감추기 위해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처럼 범법자가 되기도 합니다. 신분증을 보여주면 배척당하기 시작합니다. 평범한 일상은 사라집니다." - 김영태(가명)·36·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자

"내년에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합니다. 매년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해야 하고, 아이의 진학이나 학업 때문에 면담요청을 받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와 제가 큰 시련을 겪고 극복하기 위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 김은주(가명)·45·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자


지난 6월 대법원 최초로 성전환자에 대한 성별 정정이 가능해졌지만, 성전환자가 주민등록번호 개정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 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는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과 공동으로 1일 오후 국회도서관 회의실에서 '성전환자가 대법원장에게'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었다.

전문가들은 대법원이 발표한 '성전환자 성별정정 허가 신청 사건 등 사무처리 지침'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고 강제적인 것이라며, 현실성 부족을 지적했다. 이 자리에는 성전환자들이 직접 참석해 주민등록번호 변환이 어려워 실생활에서 겪었던 차별 등을 공개했다.

지난 9월 대법원은 ▲만 20세 이상으로, 혼인 사실이 없으며 자녀가 없을 경우 ▲생물학적 성과 자기 의식의 불일치로 고통을 받았을 경우 ▲성전환 수술을 받아 신체 외관이 바꿨을 경우 ▲병역 의무 이행여부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경우) 등을 발표했다.

대법원을 향한 성전환자들의 호소


김영태(가명)씨의 경우 "사람들이 외모를 보고 남자로 받아들이지만, 주민등록번호를 알면 일단 거부한다"며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갔지만 낭패를 보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회사 쪽에서 '잘 해보자'는 긍정적인 답변을 듣더라도, 신분증을 보여주면 그의 합격을 취소했다는 것.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주민등록번호는 빨간 딱지"라며 "몇 년 동안 살았던 동네에서 배척당하지 않으려면 신분증을 내놓고 집을 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성별 정정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지만, 그 길은 멀고도 길다"며 금전적인 어려움 등을 토로했다.


김씨는 대법원을 향해 "저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고, 성별정정을 제 존재에 맞게 해주신다면 제 일상은 평범한 남자들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면서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 성전환자에게 성별 정정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참석자인 김은주(가명)씨는 "저와 제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별 변경"이라며 "저를 아빠가 아닌 엄마로 받아들이고 있는 아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씨의 경우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상태로, 지난 94년 결혼생활에서 아이를 얻었지만 이혼한 상태다.

김씨는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은 불가능하다는 대법원 지침은 자녀의 인권과 사회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닌, 대법원의 탁상공론일 뿐"이라며 "인권과 생활권 보장은 구체적인 생활 현장에서 확인되고 법 조항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대법원, 성전환자 배려 위한 고민 했나"

한상희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성전환의 문제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기본권 관점에서 재구성하면서 국가 혹은 사회가 어떻게 그들을 배려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미혼의 무자녀 성전환자에게만 주민등록번호 변환을 가능케한 규정에 대해 "자녀의 복지를 위한 것일 수 있지만 동시에 자녀의 복지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침해할 수 있다"며 "자녀에게 의사를 묻는 등 별도의 절차를 통해 사례별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병역 의무 규정에 대해 "성전환이라는 개인적 문제를 국가자원동원의 측면에서 처리하고자 하는 부당결부이자 과잉침해"라며 "병역 회피를 위해 성별을 변경하고자 하는 경우는 '불법목적의 성별변경사유'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따로 지침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정정훈 '공감'(아름다운 재단 공익변호사그룹) 소속 변호사는 "대법원 지침은 성전환자들의 고통을 '지침'이라는 틀에 넣어 동일한 형태로 벽돌 찍어내듯 찍어내겠다는 권력의 의지일 뿐"이라며 "개개인의 근원을 결정하는 판단이나 고민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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