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 없듯이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70] 회리바람

등록 2006.11.03 15:08수정 2006.11.03 15:1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 김민수

바람 없이 피는 꽃 없고, 바람 없는 삶도 없다.


가는바람, 꽃바람, 명지바람, 산들바람도 있고, 거친바람, 매운바람, 싹쓸바람, 채찍바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내가 원하는 바람만 바라고 살 일은 아니다.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그 바람을 맞이하며 살아가는 것이 자연이듯,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갈 일이다.

때론 바람에 눕기도 하고 찢기기도 하고 뽑히기도 하지만, 바람이 지난 후 다시 일어서는 것이 풀이듯, 사람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것만 같은 미친바람이 불어올 때에 그들도 쉬는 날이 있음을 믿고 살아가는 것, 그래서 삶은 만만치 않은 여정임에도 여전히 감동의 여정인 것이다.

a

ⓒ 김민수

올봄에는 꽃샘바람에도 봄꽃들이 제법 화사하게 피어났다. 지난 2월, 지천에 들꽃이 만발하던 제주들을 떠나던 날, 복수초가 환하게 꽃을 열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전날에는 변산바람꽃도 수줍은 듯 꽃몽우리를 열었다.

그들과 작별을 하고 서울로 둥지를 틀기 위해 제주항에서 인천 연안부두로 오는 배를 타던 그날 저녁 어둠 속에 숨어버리는 바다의 에메랄드빛을 보았다. 그리고 그 이후 제주의 바다를 이토록 오랫동안 그리워하면서 보지 못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서울, 이곳은 아직도 겨울이 완연했고 푸른 것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에서도 꽃소식들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어느덧 촌놈이 된 나는 산 이름만 듣고 그곳을 찾았지만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아마, 푸른 싹들이라도 풍성했으면, 산행 뒤에 봄소식이라도 알릴 수 있었을 터인데 산자락마다 각기 다른 생태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그 산에 있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천마산 백설에 앉은부채와 노랑앉은부채가 눈을 녹이고 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무작정 천마산으로 향했다. 삼고초려 끝에 앉은부채를 만났는데, 내가 걸었던 산기슭의 반대편이었다. 서울에 살 때에 낚시며 농사를 짓는다고 자주 가던 그 근처였으니 꽃을 보는 눈이 뜨이긴 뜨인 것인가 보다.


a

ⓒ 김민수

바람도 많고, 바람꽃도 많고,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바람도 많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바람꽃은 없는 법이니 우리의 삶에 불어오는 바람도 그렇게 맞이할 일이다. 그동안 만났던 바람꽃들을 하나 둘 떠올려 본다.

만주벌판 말 달리던 선조들 생각나게 하는 만주바람꽃,
깊은 숲에 피어나는 숲바람꽃,
한라산 높은 곳에서만 피어나는 세바람꽃,
너만 바람꽃이 아니라고 나도바람꽃,
그래, 나만 바람꽃이 아니지 너도바람꽃,
꿩이 짝짓기 할 무렵 피어나는 꿩의바람꽃,
홀로 외로워도 말쑥하게 피어나는 홀아비바람꽃,
회오리바람 몰아치듯 둥글둥글 못 생긴 회리바람꽃,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바람꽃 없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없다.

(자작시- '바람꽃')


a

ⓒ 김민수

회리바람꽃은 지난 5월에 만났다. 그런데 이제야 그를 꺼낸 이유는 올여름 폭우와 가을의 가뭄으로 인해 여름과 가을꽃들이 흉년이 들어 꽃을 만나는 일이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강원도 북부지방은 서리가 내린 이후 내년을 기약하고 있으니 이제 소개하지 못했던 꽃들을 하나 둘 꺼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한겨울에도 꽃이 만발한 제주에 간다고 해도, 소개하지 않았던 꽃들을 꼽아보면 몇 가지 안 되니 창고에 넣어두었던 꽃을 꺼내는 것이다. 그런데 미안하고 참 미안하다. 마치 못 생기고, 낮고, 느린 것의 전도사 마냥 노래를 부르면서도 실상 나는 못 생기고, 낮고, 작은 것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새삼 부끄러워진다.

만일 회리바람꽃이 내 맘에 쏙 들고, 정말 예뻤어도 이렇게 계절이 바뀐 후에 소개했을까 생각해 보면, 봄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어나기에 소개하느라 바빠서 이제야 소개한다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못 생겨서 뒷전에 미뤄놓았다가 필요에 의해서 꺼내놓은 것이다. 그래서 미안하고, 아직도 이론과 실천이 합일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a

ⓒ 김민수

창 밖에 산수유가 붉게 익어간다. 이른 봄에서부터 지금까지 사무실 곁에서 나의 사진모델이 되어준 것이 고맙고, 붉게 익은 열매를 맛보게 함이 또 고맙고, 친구들에게 산수유로 담근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하리라는 욕심을 가지고 열매들을 딸 때에 그냥 자신을 내어주는 산수유가 고맙다.

이제 가을이 더 깊어지면 자기 안에 감춰두었던 물감들을 풀어놓으며 나를 유혹할 것이며, 한겨울에는 눈꽃을 피워서라도 나의 눈길을 끌 것이다. 그리고 다시 봄이 되면 노란 꽃을 피울 것이고, 그맘때면 바람꽃들의 행렬의 끝자락을 잡고 회리바람꽃도 피어날 것이다. 다시 그들을 만날 때에는 좀 더 오랜 시간 그들을 바라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미안한 마음을 전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분문에 나오는 바람에 대한 해설]

가는바람 : 약하게 솔솔 부는 바람.
거친바람 : 방향이 일정하지 않게 거세고 마구 세차게 부는 바람.
꽃바람 : 꽃이 필 무렵에 부는 봄바람.
꽃샘바람 : 꽃이 피기 전에 부는 찬바람.
매운바람 : 살을 엘 듯한 몹시 찬 바람.
명지바람 :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
미친바람 : 비오기 바로 앞서 일정한 방향도 없이 마구 불어대는 바람을 이르는 말.
산들바람 : 산들산들 부는 바람.
소슬바람 : 소슬한 가을바람.
솔바람 : 솔밭을 설레이게 하면서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
싹쓸바람 : 육지의 모든 것을 싹쓸어 갈 만큼 세차고 배가 뒤집힐 정도로 세게 부는 바람   
채찍바람 : 채찍질을 하듯 간간이 세차게 후려치며 부는 바람.

덧붙이는 글 [분문에 나오는 바람에 대한 해설]

가는바람 : 약하게 솔솔 부는 바람.
거친바람 : 방향이 일정하지 않게 거세고 마구 세차게 부는 바람.
꽃바람 : 꽃이 필 무렵에 부는 봄바람.
꽃샘바람 : 꽃이 피기 전에 부는 찬바람.
매운바람 : 살을 엘 듯한 몹시 찬 바람.
명지바람 :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
미친바람 : 비오기 바로 앞서 일정한 방향도 없이 마구 불어대는 바람을 이르는 말.
산들바람 : 산들산들 부는 바람.
소슬바람 : 소슬한 가을바람.
솔바람 : 솔밭을 설레이게 하면서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
싹쓸바람 : 육지의 모든 것을 싹쓸어 갈 만큼 세차고 배가 뒤집힐 정도로 세게 부는 바람   
채찍바람 : 채찍질을 하듯 간간이 세차게 후려치며 부는 바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