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만 걸려있던 하회탈, 말하고 춤추다

안동 하회마을의 하회 별신굿 여섯마당 무료공연 (下)

등록 2006.11.05 08:32수정 2006.11.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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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탈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죠. 앞에서 "아홉 가지가 남아있다"고 했는데 이는 고려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진품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탈 중 가장 오래된 것들입니다. 보존이 가능했던 이유는 우선 다른 지방과 달리 바가지나 종이가 아닌 나무로 만들어 정성스레 옻칠까지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불어 다른 탈놀이와 달리 놀이가 끝난 후 탈을 태워없애는 뒤풀이 순서가 없습니다. 오히려 대단한 보물처럼 세대를 두고 애지중지 간직해왔으며, 특히 각시탈은 성황신을 상징한다 해서 별신굿 때가 아니면 꺼내볼 수도 없었다는군요.


물론 주말공연에 동원되는 것은 새로 만들어진 모조품이며, 과거에 사용되어온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탈취된 것으로 추정된 세가지까지 세트가 제대로 갖추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국보로 지정된 하회탈이란 것도 물론 박물관의 이 진품들을 뜻합니다.

a 5번째 순서인 파계승 마당. 파계승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부네 또한 우리에게 친숙한 탈이다.

5번째 순서인 파계승 마당. 파계승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부네 또한 우리에게 친숙한 탈이다. ⓒ 박정민

파계승 마당입니다. 양반, 선비와 더불어 조롱을 당하려고 등장하는 파계승인 만큼 짐짓 신랄합니다. 숭유억불의 조선 시대였다고는 하나, 일반 백성들에게 승려는 역시 특별한 위치에 있는 존재였겠지요.

그런 위치에 있으면 요구받는 덕목도 덩달아 특별해지고, 꼬투리 잡힐 일도 많아지는 것은 순리입니다. 정치인들 욕먹는다고 푸념할 일 아니고 연예인들 스캔들에 시달린다고 하소연할 일 아닙니다. 내가 조용하게 살면 남들도 조용해집니다.

a 특별순서에 등장한 이매와 초랭이의 만담 장면. 이매탈은 유일하게 입 아랫부분이 없다.

특별순서에 등장한 이매와 초랭이의 만담 장면. 이매탈은 유일하게 입 아랫부분이 없다. ⓒ 박정민

a 이매가 외국인 관람객들을 불러내 탈춤을 추게 한다. 중국인과 서양인 관객이 오늘의 당첨자가 되었다.

이매가 외국인 관람객들을 불러내 탈춤을 추게 한다. 중국인과 서양인 관객이 오늘의 당첨자가 되었다. ⓒ 박정민

원래는 없던 순서가 하나 등장합니다. 이매라는 이름의 광대가 등장하여 초랭이와 함께 만담을 주고받습니다. 여기까지는 바람잡이이고, 실은 관객들을 불러내서 뭘 좀 시켜보는 순서입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표적이 됩니다. 상당히 많은 서양인들이 공연을 유심히 지켜봅니다. 외모가 비슷한 중국인이나 일본인까지 합하면 비율이 꽤 될 듯합니다. 창피함은 잠깐, 대신 선물 받는 기념품은 두고두고 남겠지요.


a 공연의 마지막 순서인 양반과 선비 마당. 부리부리한 눈의 선비는 예의 부네를, 양반은 초랭이를 대동하고 나온다.

공연의 마지막 순서인 양반과 선비 마당. 부리부리한 눈의 선비는 예의 부네를, 양반은 초랭이를 대동하고 나온다. ⓒ 박정민

a 양반과 선비 마당은 물론 그들을 조롱하기 위한 자리이다. 백정이 등장해 양반에게 소 고환을 사라며 흥정을 건다. 펄쩍 뛰던 양반은 정력에 좋다는 말 한 마디에 선비와 더불어 사자고 야단이 된다.

양반과 선비 마당은 물론 그들을 조롱하기 위한 자리이다. 백정이 등장해 양반에게 소 고환을 사라며 흥정을 건다. 펄쩍 뛰던 양반은 정력에 좋다는 말 한 마디에 선비와 더불어 사자고 야단이 된다. ⓒ 박정민

마지막 순서인 양반과 선비 마당에 들어 한층 신랄해진 풍자는 의아함을 줄 정도입니다. 아무리 탈놀이가 언로의 해방구 역할을 했다고는 하지만, 하회마을은 엄연히 엄격한 양반마을로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더구나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30분도 안 걸릴 작은 시골마을인데, 과연 이렇게 신랄한 풍자가 500년을 이어져왔다니 그러고도 무사했을까요? 아마도 탈놀이가 열리는 날 양반님네들은 저만치 따로 상을 차려놓고 짐짓 외면하려 애를 썼을 듯합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서야 공연은 끝을 맺습니다. 그저 잘 보존된 전통마을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곳인데, 이렇게 귀한 공연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편리함 뒤에는 20세기 초에 거의 사라질 뻔한 것을 억척스레 보존하고 알려온 몇몇 선각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a 단풍 빛이 그윽한 만추의 하회마을

단풍 빛이 그윽한 만추의 하회마을 ⓒ 박정민

기왕 하회마을까지 닿은 발걸음, 동네 구경과 공연에만 멈추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강가의 만송정과 부용대 절벽의 자연경관도 한번 감상하시고, 부용대 위로 올라가 마을 전경도 일견하실 것을 권합니다.

마을에서 약간 떨어져있는 병산서원 또한 아는 사람들은 모두 추천하는 방문지입니다. 서애 류성룡이 직접 건립한 서원으로, 멀지 않은 도산서원과 더불어 영남 유림의 근거지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건물이며 주변경관이 예쁘다고 이름이 높습니다.

하회마을 가는 길

꽤 멀고 가기 불편할 것만 같은 하회마을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울의 경우 동서울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안동행 버스가 출발합니다. 막히지 않을 경우 3시간가량이 걸립니다.

안동터미널에서 내려 길 건너편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하회마을 바로 앞에 내려줍니다. 시내버스는 약 2시간 간격으로 있으며, 안동시내에서 하회마을까지는 40분가량이 소요됩니다.

마을 입장료는 성인 2000원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회마을 공식홈페이지 http://www.hahoe.or.kr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송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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