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66회

등록 2006.11.07 08:07수정 2006.11.07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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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신태감이 이번에 운중보에 들어온 이유가…."

"명목은 회갑연이었지만 아마 추교학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한 행보라 보아야지. 신태감이 운중보에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한 육파일방이든 타 문파든 다른 제자들을 노골적으로 밀 수 없었을 테니까."


풍철한은 고개를 끄떡였다. 역시 함곡은 너무 많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 조그만 머릿속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지식과 정보가 쌓여 있을 수 있을까? 풍철한으로서는 죽었다 깨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헌데 굳이 과거에 사라진 구룡의 무공을 사용해 죽이는 이유가 무얼까? 서당두도 그랬고, 신태감 역시 구룡의 무공에 희생되지 않았나? 마치 이십육 년 전 사라진 구룡이 저주를 퍼붓는 것 같지 않은가?"

함곡은 풍철한을 바라보며 뜻밖에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구룡의 저주라…, 아주 적절한 말이군. 아주 그럴 듯해. 철담어른은 보란 듯이 보주의 독문비기인 심인검에 당한데다가 나머지 인물들은 구룡의 무공이라…."

함곡은 그 세 가지 사건과 무공에 대해 연관을 찾으려 하는 것 같았다. 그가 잠시 중얼거리며 고개를 젓자 그것이 함곡이 불쑥 무언가 생각날 때 하는 버릇임을 아는 터라 더는 말을 시키지 않았다. 저럴 때에는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이었다.


"아… 흉수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가 있소. 너무 경황이 없어…."

갑자기 경후가 무언가 생각난 듯 불쑥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이시오?"

은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를 받았지만 신태감이 죽은 이상에는 흉수를 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신태감을 기습했던 옥음지를 쓰는 흉수는 등짝에 태감의 첩인장을 맞았다 하오."

풍철한의 눈이 반짝 빛났다. 첩인장에 맞으면 장인이 서너 개 겹쳐지는 특이한 흔적이 남게 마련이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흉수가 뛰어난 자라 하더라도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그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을 터였다.

"분명하오?"

"태감어른이 들어와 설명하는 와중에 하신 말씀이니 정확할 것이오."

"조속히 조사를 해봐야겠군."

그들의 대화를 듣기만 할 뿐 전혀 끼어들지 않았던 좌등이 중얼거렸다. 그 일이 함곡이나 풍철한이 부탁을 하든, 하지 말든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허나 함곡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손을 가볍게 저었다.

"좌선배.... 어떻게 조사하시려고 그러시오? 운중보 내부인들이야 좌선배께서 직접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조차 수백 명이나 되는 인원을 일일이 조사하려면 족히 이틀은 걸릴 것이오. 더구나 이곳에 온 손님들까지 조사하려면 지체되는 시간은 물론이고 손님들을 조사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 아니오? 그렇다 해서 흉수가 '나 여기 있소'하고 나타날 리는 만무하고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소."

지금은 확실히 복잡한 형국이었다. 함곡의 지적은 예리했다.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愚)를 범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구려…."

좌등 역시 그리 아둔한 인물은 아니었다. 함곡이 말하는 의미를 즉각 알아들었다.

"그러면 어찌했으면 좋겠소? 방도가 있소?"

"타초경사…, 바로 그것이오. 우리는 지금 풀숲에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태요. 뱀이 있는지 알아보려면 풀을 헤쳐 봐야 하오. 어차피 건드려서 뱀이 놀라 달아나든지 아니면 물려고 하는지는 나중 문제요. 다행스럽게 이 운중보는 도망갈 곳이 없소."

"……!"

도대체 알 듯 모를 듯한 말이었다. 직접 조사하는 것이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흉수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는 말이다. 함곡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만 어떻게 조사할 것인가 하는 방식의 문제요. 아무리 은밀하게 조사한다 할지라도 하루도 못 가 누구를 무엇 때문에 찾는지 이 안의 사람들은 모두 알게 될 것이오. 그렇다면 차라리 먼저 공표를 하는 것이 나을 것이오. 어젯밤 해시(亥時)부터 자시(子時)까지 첩인장에 의해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있으면 스스로 고하거나, 그런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은 조속히 알려달라고 방을 붙이고 운중보 수뇌들과 이곳에 들어온 모든 손님들에게 직접 말을 전하도록 하는 것이오. 물론 덧붙여 첩인장이 아니더라도 현재 부상을 당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고하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오."

"그건 더 흉수에게 경각심을 주어 숨어들게 만드는 일 아닌가?"

풍철한까지도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다른 이들의 얼굴에도 풍철한과 다를 바 없는 의혹스런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렇지 않네. 내가 추측하는 것이 옳다면 첩인장에 맞은 인물은 반드시 자진하여 나타나게 될 것이네. 그가 진정한 흉수인지를 떠나서 말이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말이군."

아직 함곡이 생각하는 바를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함곡은 뭔가 확신이 있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함곡의 뜻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다. 고개를 가로 젓던 풍철한은 불쑥 주위를 둘러보며 퉁명스럽게 말을 뱉었다.

"헌데 능효봉인가 하는 놈을 부르러 간 두 자식은 왜 오지 않는 거야?"

그 말에 어느 틈엔가 바깥방에서 서성거리던 반효가 대답했다.

"잠시 얘기할 시간을 달라 해서 내버려 두고 먼저 와서 기다리는 중이오."

뜻밖에 반효의 대답이 들리자 풍철한은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저 자식이 정말 정신이 있는 겐가?

"어디 있는데…?"

"죽은 서당두 방이오."

"빌어먹을…, 두 자식을 붙여놓으면 어떡해? 아주 멍석을 깔아놓았군."

"뭔 말이오?"

반효가 오히려 어처구니없다는 듯 반문을 하자 풍철한이 눈을 부릅떴다.

"그 자식들이 그렇게 내버려 둘 놈들이 아니야. 분명 사고를 친 놈들 같은데…. 말 맞출 시간을 아주 훌륭하게 주었군."

"어쩌면 흉수는 그들일 수 있소."

경후가 불쑥 말을 던졌다. 그가 말한 의미를 안다. 풍철한이 힐끗 경후를 바라보면서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대신 함곡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더 조사할 일이 남았나?"

함곡은 고개를 저었다.

"없네."

"그럼 또 한군데 가봐야 하지 않겠나?"

죽었다는 쇄금도 윤석진의 사건현장을 가리킨 말이었다.

"조반은 드셔야 하지 않겠소?"

풍철한의 재촉에 좌등이 끼어들었다. 사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새벽같이 깨워 식전에 시신이나 보게 하는 짓은 사실 보통 때에는 할 짓이 아니었다.

"지금 음식이 입에 넘어가겠소? 일단 쇄금도가 있다는 곳부터 조사한 후에 식사하는 게 낫겠소."

말과 함께 풍철한은 먼저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우선 설중행과 능효봉을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이미 방에 들어서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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