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제 삶의 휴식처 '둠벙'

산과 마을과 시냇물을 하나로 이어주는 둠벙의 추억

등록 2006.11.09 16:55수정 2006.11.0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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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밭 일을 하면서 틈틈이 둠벙을 관찰해 왔습니다.

밭 일을 하면서 틈틈이 둠벙을 관찰해 왔습니다. ⓒ 송성영


내 직장은 산비탈 밭입니다. 매일 매일 산비탈 밭으로 출근합니다. 밭일을 하기 위해 발통이 한 개 달린 손수레를 끌고 나섭니다. 외발 손수레에는 농기구가 실려 있습니다. 어떤 날은 거름도 있습니다. 또 어떤 날은 디지털 카메라에 캠코더까지 실려 있습니다. 밭일을 하면서 쉬엄쉬엄 밭 가장자리 둠벙을 관찰하게 될 도구들입니다.


1년도 채 안 된 둠벙은 수생식물들의 꽃을 피워냈습니다. 그 무렵 또 다른 인연들이 버글거렸습니다. 개구리들입니다. 흑갈색에 흰 띠를 두른 다리통이 통통한 참개구리들과 푸른 띠를 두른 어린 개구리들입니다.

나는 놈들과 대화를 하곤 합니다. 내가 지껄여대면 녀석들은 처음 그 자세로 ‘얼음땡 놀이’라도 하듯 꼼짝없이 듣기만 합니다.

“요놈들, 잘 있었냐”
“풍 덩”

“내빼기는 짜식들, 내가 베얌새끼라두 되냐?”
“…….”

“넌 뭐하는 겨, 거기 말여, 잎새기 옆댕이에 대가리만 빼꼼 내민 니놈 말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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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오늘 점심은 뭘 먹은 겨, 깨굴이 반찬은 아닐테구.”
“…….”
“그렇게 할 일 없으면 우리 배추 갉아먹는 벌레들이나 어떻게 좀 해 줘라.”

개구리들과 수다를 떨다가 사진을 찍습니다.


“거기 너 임마, 대가리 내밀구 꼼짝 말고 있어라, 잉!”

사진을 찍다 말고 개구리를 봅니다. 개구리를 한참 보고 있노라면 둠벙 속에는 개구리 대신 내가 있습니다. 나는 나를 봅니다. 물빛에 비친 내 그림자는 유년의 시간 속으로 나를 잡아끕니다.

화전을 일구던 아버지의 산비탈 밭과 '둠벙'

a 둠벙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어린시절 '아버지의 둠벙'이 떠오르곤 합니다.

둠벙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어린시절 '아버지의 둠벙'이 떠오르곤 합니다. ⓒ 송성영

유년의 기억 속에도 둠벙이 하나 있었습니다.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 40년 전쯤 일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지금의 나처럼 산비탈에 밭을 일궜습니다. 그 밭 옆댕이에 둠벙이 있었습니다.

주변에 농사짓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온전히 ‘아버지의 둠벙’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둠벙은 우리 아버지가 화전을 일구기 이전부터 있어 왔는지 모릅니다. 언제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기에 당신 스스로 파 놓았는지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 아버지뿐만 아니라 온갖 생명들의 보금자리가 바로 둠벙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둠벙’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어린 내 머리끝까지 폭 싸일 만큼 아주 깊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큼직한 돌멩이를 던지면 ‘풍덩’ 소리가 났고 둠벙 가장자리에서 놀던 개구리들이 사방으로 달아났습니다.

잔잔한 수면 위에 물뱀이 곡선을 그려 놓곤 했던 그 둠벙은 산비탈을 꼬불꼬불 타고 내려가 마을 앞 너른 시냇물과 이어져 있었습니다. 둠벙에는 온갖 물고기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송사리도 있었고 미꾸라지에 실뱀장어도 있었습니다. 정확히 기억할 수 없으나 그냥 뱀장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둠벙 속 고기들의 본래 고향은 마을 앞 너른 시냇물이었는지 모릅니다. 장마철에 물길을 타고 산아래 둠벙까지 거슬러 올라왔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들의 진짜 고향은 둠벙인지도 모릅니다. 둠벙에서 태어나 시냇가로 나갔다가 알을 낳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내 어린 시절 둠벙은 산과 마을과 시냇물을 하나로 이어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에게 둠벙은 메마른 황무지를 젖혀주는 생명수나 다름없습니다. 아버지는 땀을 뻘뻘 흘리며 미군 철모로 만든 똥바가지로 둠벙에서 물을 퍼올려 밭작물을 키웠습니다.

나는 형과 함께 아버지의 산비탈 밭으로 막걸리 배달을 가곤 했습니다. 우리는 집에서부터 1㎞쯤 되는 산길을 걸어가며 힘에 부치는 막걸리 주전자를 번갈아 들곤 했습니다. 물론 호기심에 가다가 쉬다가 막걸리 한 모금씩을 홀짝거리기도 했지요.

한시라도 일손을 놓을 수 없었던 7남매의 우리 아버지, 아버지는 우리가 찾아가면 그때서야 일손을 놓았습니다. 둠벙 가에 보기 좋게 늘어져 있는 버드나무 그늘 아래에서 막걸리 몇 잔으로 달콤한 휴식을 취하곤 했습니다.

한 여름의 둠벙은 어린 자식들을 위한 아버지의 냉장고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밭에 도착해 소리 높여 아버지를 부르면 둠벙에 둥둥 떠 있는 참외며 수박이 먼저 반겼습니다.

아버지처럼 언젠가 내 놓아야 할 땅을 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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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하지만 둠벙의 운명은 안타깝게도 우리 아버지나 거기에 기대 사는 온갖 생명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황무지 산비탈’이 밭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느닷없이 산 임자가 나타났습니다. 산 임자는 아버지가 애써 개간한 밭에다가 농원을 꾸민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보상 한 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땅을 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산비탈 밭에는 농원이 들어섰고 그 입구에는 사나운 개 한 마리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참외며 수박이 둥둥 떠 있고, 온갖 물고기들이 노닐던 둠벙 근처에는 얼씬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과나무와 배나무를 심어 놓고 닭을 길러가며 도시사람들을 상대로 술과 백숙을 파는 농원이 들어선 지 몇 년 후, 남포 터지는 소리가 온 동네를 뒤흔들었습니다. 산아래 슬레이트 지붕이 구멍 나고 뒷산이 까뭉개졌습니다. 그 자리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민둥산처럼 머리를 빡빡 밀고 중학교에 다녔고 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나는 학교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머릿속에 우겨 넣어가며 ‘아버지의 둠벙’을 지워나갔습니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다가 군에 입대하기 전, 아버지의 땀이 스며있는 산비탈 밭, 농원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농원 구석구석을 찾아 봤지만 고구마며 채소는 물론이고 자식들 주전버리를 위해 몇 포기의 참외와 수박을 심었던 ‘아버지의 밭’은 물론이고 푸른 기운을 띠었던 ‘둠벙’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둠벙에서부터 시냇물로 이어지는 물길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습니다. 둠벙에서 흘러든 물길로 목마름을 해결했던 논과 밭은 이미 주택단지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구불구불한 계곡물 대신 생활하수구가 시냇물을 향해 일사천리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당시 아버지처럼 산 임자가 따로 있는 산비탈 밭을 갈고 있습니다. 밭 가장자리에 아버지처럼 작은 둠벙을 파 놓고 언젠가 산 임자에게 내 놓아야 할 땅을 갈아먹고 있습니다.

언제 어느 때 내놓아야 할 땅을 갈아먹고 있지만 나는 즐겁습니다. 당장 내 자식에게 먹일 싱싱한 채소며 과일들을 재배할 수 있는 밭을 갈아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일손을 놓고 온갖 생명들이 숨쉬고 있는 둠벙 앞에 앉아 있으면 즐겁습니다. 낭창낭창 한 버드나무 대신 산 벚나무가 늘어져 있는 둠벙을 보기만 해도 마냥 즐겁습니다. 아마 우리 아버지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산과 마을과 시냇물을 하나로 연결해 주었던 둠벙, 산물이 구불구불 계곡을 타고 내려오다가 잠시 쉼표를 찍는 곳, 인간을 비롯해 거기에 기대 사는 모든 생명들의 휴식처가 바로 둠벙인 것입니다.

밭일에 지쳐 있을 때 둠벙은 내게 말합니다. 흙이 되고 바람이 되었을 우리 아버지가 내게 말합니다.

“잠깐 쉬었다 혀!”

a 둠벙은 거기에 기대사는 뭇생명들 뿐만아니라 나의 쉼터이기도 합니다.

둠벙은 거기에 기대사는 뭇생명들 뿐만아니라 나의 쉼터이기도 합니다. ⓒ 송성영

덧붙이는 글 | 지난 1년 반 동안 둠벙을 관찰해 왔습니다. 앞으로 둠벙에 얽힌 얘기들을 계절별로 올릴 계획입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1년 반 동안 둠벙을 관찰해 왔습니다. 앞으로 둠벙에 얽힌 얘기들을 계절별로 올릴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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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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