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한다"는 말, 꼭 한번 듣고 싶었습니다

[取중眞담] 법정에 선 최연희 의원에게 바랐던 건...

등록 2006.11.10 17:20수정 2006.11.1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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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최연희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재판정을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최연희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재판정을 나오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할 말 없습니다."

최연희(61·무소속) 의원에게 듣고 싶은 말이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최 의원은 10일 오전 10시부터 열릴 예정인 1심 선고공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6부)에 참석하고자 30분 이른 시각인 9시 30분께 법정에 도착했다. 심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짤막하게 답했다.

최 의원 옆을 지키던 변호인은 "선고 공판 받으러 온 사람의 심정이 어떻겠느냐", "법정에서 예의를 지켜달라"면서 기자를 막아섰다. 방청석에 자리를 잡은 그는 계속되는 질문에도 입을 다문 채 정면을 응시했다.

간간이 손목시계를 보며 시각을 확인하고, 동행한 지인들에게 "판사가 선고할 때 서서 듣는 것이냐"는 질문 등을 속삭였다. 그렇게 최 의원과 침묵의 30분이 흘렀다. 최 의원에게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는 동안에도 판사 이외에는 모두가 침묵했다.

서울지법이 시끄러워진 것은 최 의원이 법정을 나가고부터다. 의원직 상실 위기에 처한 최 의원의 한 마디를 듣기 위해 그가 탄 엘리베이터 안으로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2층에서 내리려다 기자들을 피해 1층으로 나가는 바람에 촬영기자 20여명이 100m달리기를 해야했다.

기자들의 소란에도 정작 최 의원은 "할 말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기자들이 '국민들 앞에 더 할 이야기는 없느냐',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며 계속 쫓아오자 역정이 난 그가 내뱉은 한 마디. "할 말 없다…니깐!"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 그건...

화가 날 것이다. 3선 의원에게 의원직 상실이라면 얼마나 큰 충격일지 당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몰려드는 기자들 앞에서 표정관리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최 의원은 항소 기간 내에 항소하지 않으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최 의원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할 말 없다"는 '내용 없는' 말이 아니었다.

지난 2월 강제추행 사건 이후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해 반복했던 말, 국회 복귀를 앞두고 동료 의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되풀이했던 말, 결심공판에서 재판부 앞에서 했던 말, 바로 "사죄한다"는 말을 의원직 상실의 위기에서 듣고 싶었다.

만약 항소를 위해 사죄의 변을 아낀 것은 아닐까. '물의를 일으켜 사죄하지만, 징역 6개월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돼버릴까봐 말을 아낀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의원직 상실 가능성에 항소 이후의 상황까지는 생각지 못했더라도, 자신의 혐의에 비해 징역 6개월이 무거워 항의의 뜻으로 입을 다물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최연희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재판정을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최연희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재판정을 나오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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