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들고 돌아온 스티븐 킹

스티븐 킹의 작품세계와 그의 신작 <셀>

등록 2006.11.23 11:57수정 2006.11.23 11:57
0
원고료로 응원
1. 스티븐 킹

스티븐 킹 <셀>
스티븐 킹 <셀>황금가지
대중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발표한 소설은 대부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고, 영화화된 작품들도 많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직접 읽지 못한 사람이더라도, 스티븐 킹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미저리> <돌로레스 클레이본> 등의 작품은 한번쯤 접해보았을 것이다.


스티븐 킹은 세계적인 작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만큼의 인기를 얻고 있지 못하다. 스티븐 킹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 국내에 번역 소개되었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는 헌책방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스티븐 킹 마니아 계층이 존재하지만 그 이상의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는 못하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스티븐 킹은 공포소설 작가'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2. 일상 속의 공포

스티븐 킹의 작품을 흔히 공포 소설로 분류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는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그런 공포가 아니다. '일상 속의 공포'라는 표현이 진부하기는 하지만,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다보면 이 표현이야말로 스티븐 킹의 소설에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스티븐 킹이 만들어내는 공포는 초자연적인 존재나 유령, 좀비가 제공하는 공포가 아니다. 견고하고 단단하다고 느껴졌던 사실들이 하나씩 하나씩 무너져 나갈 때의 공포, 결국 우리가 딛고 있는 이 현실이 언제든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 공포다.


이런 공포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왔던 주변의 존재를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 친절해야할 구원자가 히스테릭하게 변해가고(미저리),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선량한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데스퍼레이션), 근처에서 자주 만났던 개가 갑자기 미쳐서 달려들고(쿠조), 남편이 아내를 침대에 묶고 폭력을 행사하는(제럴드의 게임) 등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은 언제든지 그리고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개연성은 없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런 상황이 자신에게 닥친다면 그때부터 현실은 공포가 된다. 그리고 이런 일을 겪고 난 다음에도 그 끔찍했던 기억은 머리 속에 붙은 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단조롭지만 평온하던 일상이 어느 날 갑자기 서서히 무너져 가는 것. 현대인의 일상에서 이것만큼 두려운 것이 또 있을까?


3. 이룰 수 없는 욕망

스티븐 킹의 작품 중에 <캐슬록의 비밀>이란 것이 있다. 평온하던 마을 캐슬록에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와서 상점을 개설한다. 그 상점은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파는 곳이다. 그리고 이 상인은 그 대가로 자신의 요구를 한 가지 들어달라고 말한다. 그때부터 캐슬록은 아수라장이 되어간다.

11살짜리 소년은 엽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두 여인은 식칼을 들고 길거리에서 결투를 벌인다. 결국 불바다로 변한 캐슬록을 뒤로 하고 그 상인은 다시 길을 떠난다. 또 다른 마을을 폐허로 만들기 위해서.

<애완동물 공동묘지>의 주인공도 이런 헛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의 아기는 교통사고로 죽는다. 주인공은 죽은 아기를 살리기 위해서 무시무시한 전설이 깃든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아기를 묻는다. 아기는 되살아나지만 괴물로 변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스티븐 킹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조용하던 가정이나 마을이 파괴되어 가는 것'이다. 이런 파괴를 부추기는 것은 사람들의 욕망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결국 그 대가를 치르고 만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은 모두 해피엔딩이 아니다.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게도 철저하게 파괴되면서 대단원을 맞는다. 이룰 수 없는 욕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 사람들의 일상은 공포로 변해가는 것이다.

4. 그리고 아이들

스티븐 킹의 작품에는 유독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밝고 단란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아니다. 부모는 이혼했거나 별거중이다. 이도저도 아니면 매일 싸움만 하는 가정이다.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의 주인공인 9살 소녀 트리샤는 말한다.

"내내 싸우기만 하는 가족을 보면 미쳐버리지 않을까?"

<시체> <그것>은 이런 아이들이 등장하는 스티븐 킹의 대표작이다. <시체>는 리버 피닉스가 주연한 영화 <스탠바이 미>의 원작이기도 하다. 집은 가난하고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서 딸이 임신하지 않았는지 의심하며 폭언을 퍼붓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매를 맞는다.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은 모여서 모험을 떠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성장한다.

"나는 점잖은 사람들 속에서 성장하지 못했다. 나는 미국의 중하류 계층에서 자라났다. 따라서 내가 가장 솔직하고 자신 있게 묘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부류의 사람들이다."

스티븐 킹의 이 말처럼, 작가는 중하류 계층의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 어려운 가정의 희생양은 언제나 아이들이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도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남는다. 주기적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괴물과도 같은 어린시절의 악몽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다시 그 기억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등장인물은 어린시절의 기억을 이겨내지 못한 채 스스로 괴물처럼 변해간다. 어린시절의 상처가 성인이 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영향을 미치는 전형적인 경우다. 부모의 폭력과 폭언,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일상적인 공포가 아닐까?

5. 스티븐 킹의 신작 <셀>

<셀>의 무대는 미국의 보스턴이다. 10월 1일 오후 3시, 휴대폰(셀)으로 전화를 하던 모든 사람들이 미치기 시작한다. 이성과 사고력이 사라지고 살인의 본능만이 남은 좀비처럼 변해간다. 그 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멀쩡하다. 남은 사람들은 좀비를 피해서 달아나지만 곧 자신들이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휴대폰으로 획일화된 세상처럼 좀비들도 획일화돼 어디론가 행진해간다. 그리고 휴대폰이 진화하는 것처럼 좀비들도 조금씩 진화한다. 좀비들은 그 자체가 휴대폰인 것처럼 멀리 떨어져서도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살아남은 주인공 일행은 이런 좀비 집단에 맞서서 싸우며 가족을 찾기 위한 사투를 시작한다.

휴대폰은 괴물이다. 현대사회에서 휴대폰은 단순한 통신 수단이 아니다. 점점 진화해가는 휴대폰은 현대사회의 아이콘과도 같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은 상상하기도 힘들만큼, 이미 휴대폰은 개인의 생활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의 사물 중에서 어느 것 하나가 괴물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아마도 언제나 곁을 떠나지 않고 끝없이 울려대는 휴대폰일 것이다. <셀>에서 스티븐 킹은 휴대폰에 대한 현대인의 강박증을 일종의 집단무의식으로 확대시킨다.

6. 다시 스티븐 킹

스티븐 킹은 1999년에 커다란 교통사고를 당했다. 스티븐 킹의 말에 의하면 당시에 10차례 가까운 수술을 받고 하루에 100알쯤 되는 약을 삼켜야 했다고 한다. 그 사고 이후로 이전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미 그가 만들어낸 업적만 하더라도 그는 전설이 되고도 남을 만한 작가다.

전세계적으로 수 억부 팔려나간 책과 '오 헨리 상' '전미 도서상 공로상'까지 수상했을 정도이니, 스티븐 킹은 더 이상 단순한 대중문학 작가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가 만들어낸 수많은 베스트셀러야 말로 대중문학계의 괴물인지 모른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흔히 공포소설 또는 추리소설로 분류하지만, 스티븐 킹의 작품은 공포소설도 아니고 추리소설도 아니다. 그냥 '스티븐 킹 소설'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스티븐 킹 지음 /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 펴냄.

덧붙이는 글 스티븐 킹 지음 /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 펴냄.

셀 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 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행담도휴게소 입구,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역사 행담도휴게소 입구,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역사
  2. 2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3. 3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4. 4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5. 5 윤 대통령 조롱 문구 유행... 그 와중에 아첨하는 장관 윤 대통령 조롱 문구 유행... 그 와중에 아첨하는 장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