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장단에 맞춰 흥에 겨운 춤 한판 벌였으면 좋겠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74] 장구채

등록 2006.11.23 16:20수정 2006.11.2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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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장구채는 꽃과 꽃받침에서는 장구의 모양이 연상되고, 기다란 줄기에서는 장구채를 연상하게 된다.

장구채는 꽃과 꽃받침에서는 장구의 모양이 연상되고, 기다란 줄기에서는 장구채를 연상하게 된다. ⓒ 김민수

장구채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으뜸으로 치는 것은 바닷가 갯바위에서 피어나는 '갯장구채'요, 다음으로는 길가 어디에나 무성하게 피어나는 장구채다. 개인적으로 갯장구채를 으뜸으로 치다보니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나 꽃이 흔하지 않은 계절에야 비로소 불려나온 장구채가 투덜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장구채에게 아부를 하자면 '네가 못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바쁜 세상사에 깜빡 잊고 지냈는데 세상살이가 고단하다보니 생각나는 것은 너뿐이더라'는 것이다.

부동산을 가지고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나라, 요즘 아파트가격이 거품이네 뭐네 어쩌네 하지만 억 단위뿐만 아니라 십억이라는 단위를 가볍게 넘어선 아파트 가격에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 내 집 한 채 갖겠다는 꿈을 일찌감치 포기한 나만 그럴까?

어느 리서치에 의하면 요즘 버블세븐이네 뭐네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람이 80%가 넘는다고 하니 넉넉한 집을 가진 이들이나 이미 버블세븐 지역에 아파트 잡아놓은 사람들 빼고나면 나머지는 집에 대해서는 달관한 사람들일 것이고, 그를 빼고 80%니 거의 모든 서민들이 우리 말로 열받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a 분홍빛으로 피어나 흰색으로 변하는 장구채도 있다.

분홍빛으로 피어나 흰색으로 변하는 장구채도 있다. ⓒ 김민수

고단한 세상살이가 없었던 시절은 없었으니 우리 조상들은 고단하고 힘들 때 그냥 한숨만 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음주가무를 통해서 그 고단함을 씻어낸 이들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춤과 노래, 지금이야 노래방의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지만 그 옛날에는 거문고 가락, 장구가락에 맞춰 창을 부르며 춤을 추며 고단한 세상사를 잠시 뒤로 했을 것이다.

장구채, 그를 보면서 나는 무당을 떠올렸다.
어릴 적 굿판에서 꽹과리와 장구의 장단에 맞춰 칼춤을 추는 무당을 본 적이 있다. 신명나게 굿판을 벌이다 신을 받고는 겅중겅중 뛰던 무당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굿판, 기원하는 의미도 있지만 결국은 이 세상의 고단한 삶을 풀어보려는 잔치가 아니던가! 그냥 장구채의 꽃말을 '무당 혹은 굿판'이라고 붙여주면 어떨까, 그럴싸한 무당과 관련한 전설을 만들어 보는 것은 또 어떨까 싶다.

a 붉은 립스틱을 칠한 듯 붉은 무늬가 들어간 변이종장구채도 있다. 그리 많은 개체는 없으나 2년간 관찰할 수 있었다.

붉은 립스틱을 칠한 듯 붉은 무늬가 들어간 변이종장구채도 있다. 그리 많은 개체는 없으나 2년간 관찰할 수 있었다. ⓒ 김민수

길가에 무성지게 피어 있는데도 한동안은 눈에 띄질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밤 운전을 하다 길가에 하얀꽃의 무리가 흐드러지게 핀 것을 보았고, 다음 날에야 그것이 장구채라는 것을 알았다. 너무 많이 피어 있어서 그냥 그렇게 지나쳤던 꽃들, 보려고 하지 않으니 지천이라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흰색 혹은 분홍색 일색이라고 생각했던 장구채 중에서 유난히 붉은 빛을 간직한 변이종 장구채를 만났다. 그리고 그 다음해까지 관찰한 결과, 꼭 그 곳에서만 피어 있었다. 지난 가을 씨앗을 받아 텃밭 한 구석에 흩뿌려 놓았었는데 이른 봄에 서울로 이사를 한 까닭에 붉은 장구채가 그 곳에서 피었는지는 확인을 할 수가 없었다.

보통의 꽃과 다른 특이한 점이 있으면 '변이종'이라고 하는데 식물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는 변이종이 주는 매력이 있는가 보다. 그래서 이파리에 무늬를 가진 난은 고가에 거래가 된다고 한다.

언젠가 오름을 산책하는 길에 보랏빛 무릇 사이에서 흰색 무릇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그런 것을 가리켜 '특종'이라고 한다. 오히려 달라서 더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다. 물론 사람에게 대접받는 일이긴 하지만 설령 그렇게 다르다고 자기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는 일도 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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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생각의 차이뿐만 아니라 우리의 경우는 유난히 인종차별이 심하다. 백인들에게 황색인종이라고 차별을 받으면서도, 흑인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은 절대로 우호적이지 않은 것 같다. 오죽하면 아직도 '살색'이라는 색깔을 말할 수 있는 나라일까 싶다.

나는 왜 다른 장구채들과 다른 색깔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몰라요.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내 안에 언제부턴가 그 색깔이 들어 있다는 것 뿐이랍니다. 나는 그저 다른 꽃들이 그러하듯 내 안에 들어 있는 색깔을 죄다 내어놓을 뿐이랍니다. 엄마의 엄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로 거슬러 올라가면 여느 꽃들과 다르지 않았겠지요. 나는 다르다고 슬퍼하지 않아요. 그 다름이 바로 나의 모습이니까요.<자작시-장구채>

현대인들은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다를 것을 추구하면서도 다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타협점을 '동일함'이라는 것으로 잡는다. 남들이 사는 집 크기만한 곳에 살아야 안도하고, 메이커를 입고 신어야 안도하며, 남들이 가진 것을 갖지 못하면 불안해 한다. 그 불안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버블이라고 하지만 아파트값이 상승하니 남들과 같지 않은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것 같아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a 옹기종기 모여 피어난다. 장구채의 군락을 밤에 보면 은하수를 보는 듯 하다.

옹기종기 모여 피어난다. 장구채의 군락을 밤에 보면 은하수를 보는 듯 하다. ⓒ 김민수

겨을날씨 치고는 오랜만에 맑은 날씨다. 봄날처럼 따스한다. 이런 날 마당에 잔치판을 벌려놓고 장구장단에 맞춰 흥에 겨운 춤 한판 벌였으면 좋겠다.

흥에 겨운 춤사위로 세상사를 온전히 내려놓을 수 없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한판 흥겹게 놀고나면 "그려,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지, 돌고 도는 거지" 체념이 아닌 달관하는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길가 혹은 밭두렁에 흐드러지게 피어 바람에 흔들리며 밤새도록 밤하늘의 별들과 잔치를 벌였을 장구채, 그들의 잔치가 한껏 무르익었을 때 함께 어깨 춤추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꿈을 꾼다.

"덩 덩 덩기덕 쿵딱, 더러러러 더러러 덩기덕 쿵딱" 장구소리에 맞추어 '다드락' 소리가 드릴 때까지 그냥 그렇게 세상사 다 잊고 흥에 겨운 춤 한판 벌렸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장구채는 7-8월, 길가나 밭둑에 피어나는 들꽃입니다.

덧붙이는 글 장구채는 7-8월, 길가나 밭둑에 피어나는 들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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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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