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만의 내부 출신 국정원장, '약'일까 '독'일까

[정치 톺아보기 146] 역대 원장들과 김만복 제28대 국정원장

등록 2006.11.23 21:17수정 2006.11.23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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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가정보원 안보전시관. 국정원은 창설 45년만에 처음으로 내부 출신 원장을 맞이했다.

국가정보원 안보전시관. 국정원은 창설 45년만에 처음으로 내부 출신 원장을 맞이했다. ⓒ 오마이뉴스 김당


영화 <쉬리>나 <한반도> 그리고 <태풍> 등을 보면 대한민국 국가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나온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서막을 연 <쉬리>에서는 냉동 창고회사로 위장한 비밀 정보기관 'OP'가 국정원을 연상시킨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딴판이다. 이를테면 OP 소속의 테러진압부대까지 마치 FBI 수사관들처럼 이 위장업체의 로고인 OP마크를 붙인 채 출동하는 모습은 비밀 정보기관과는 한참 동떨어진 코메디이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실현한 김대중 정부에서 이뤄진 '소재의 무제한'과 '규모의 경제'로 관객 1천만 시대에 진입한 한국의 첩보 영화는 참여정부 들어 좀더 '리얼'한 쪽으로 진화했다. <한반도>에서는 제작비만 2억원을 넘게 들여 국정원 상황실을 만들었으며, <태풍>에서는 영화 속의 국정원장과 국정원 간부가 차를 타고 실제 국정원 본관 앞에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청사 전경과 함께 영화에 처음 공개되었다.

숨막히는 적막이 흐르는 원장 집무실이 자리잡은 국정원 본관 5층

a 역대 국정원장 사진. 중앙정보부장 10명(서리 포함) 가운데 7명, 국가안전기획부장 12명 가운데 6명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거나 불귀(不歸)의 객이 되었다.

역대 국정원장 사진. 중앙정보부장 10명(서리 포함) 가운데 7명, 국가안전기획부장 12명 가운데 6명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거나 불귀(不歸)의 객이 되었다. ⓒ 오마이뉴스 김당


그러나 아무리 '리얼'한 영화도 그것은 '픽션'일 뿐이다. 현실 속에선 서울시 내곡동 국가정보원 상황실은 '상황'이 없는 한 대체로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특히 국정원장의 집무실이 자리잡은 국정원 본관 5층 중앙은 숨막히는 적막이 흐른다.

중앙정보부(中央情報部)에서 국가안전기획부(國家安全企劃部)를 거쳐 국가정보원(國家情報院)으로 개명하면서 이 비밀정보·수사기관 수장(首長)의 칭호도 '군림'하는 부장(部長)에서 '서비스'하는 원장(院長)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적응'이 안되어 직원들 사이에서도 '무슨 유치원 원장이냐'는 볼멘소리들이 나왔다.

그러나 호칭이 부장이건 원장이건,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은 조직에서 곧 신(神)으로 통했다. 군대에 버금가는 조직의 위계질서와 부서간의 정보차단 원칙에 따른 비밀주의, 그리고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눈과 귀'를 자임하는 '권력 2인자'라는 자부심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서슬퍼런 '박통' 시절의 김형욱·이후락 정보부장까지 갈 것도 없이, 노태우 정부 시절의 S 안기부장은 '코드 1'(대통령)의 전화를 제외하고는 누구의 전화도 '먼저'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공직자들의 경우 대개 비서가 먼저 전화를 연결하는데 국무총리로부터 전화가 와도 총리가 먼저 수화기를 든 뒤에야 본인이 받으려고 해 비서실 직원들이 전화의전 때문에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나 통계수치 같은 객관적 근거는 없지만 기자가 접해본 국정원 직원들의 '원심'에 따르면, 서리·직무대행을 포함해 28명(27대)이 거쳐간 역대 수장 중에서 외풍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하고 조직의 위상을 높인 으뜸 수장으로 신직수(7대)·신건(25대)씨를 꼽는다.


고(故) 신직수씨는 전주사범을 졸업후 군법무관을 거쳐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지냈다. 신씨는 역대 중앙정보부장 중에서 유일하게 군 출신이 아니다. 신건씨는 서울대 법대 졸업후 중수부장, 법무부 차관, 안기부(국정원) 차장을 지냈다. 결국 두 사람은 '법률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법률가 수장 앉힌 것은 권력남용 제어장치

지금은 시대상황이 달라졌지만, 국가안보가 정권안보와 동일시되던 시절에, 유일하게 통치권자와의 독대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이른바 '넘버2'의 자리에 법률가를 앉힌 것은 권력남용의 원심력이 작동하는 권력기관의 속성을 제어하려는 장치였다.

그것은 권력의 속성과 오랜 경험칙의 산물이기도 하다. 역대 정보기관 수장의 인생 역정을 보면 권력의 1인자인 대통령과 2인자인 정보기관장의 관계가 밀접할수록 그의 말로는 늘 '구속 영순위'였다.

실제로 역대 국가정보기관장 수장을 지낸 이들의 인생행로를 보면 중앙정보부장 10명(서리 포함) 가운데 7명, 국가안전기획부장 12명 가운데 6명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거나 불귀(不歸)의 객이 되었다.

초대 김종필 부장부터 27대 김승규 원장까지 역대 수장의 직업을 분류하면 군 출신(18명) 아니면 법률가(신직수·배명인·서동권·신건·고영구·김승규)였다. 그밖에 ▲교수(김덕) ▲관료(노신영) ▲정치인(이종찬)은 각 1명씩뿐이다.

특히 군부가 집권한 제3공화국부터 5공화국까지의 역대 부장(초대 김종필∼14대 안무혁 부장) 가운데 군 출신이 아닌 순수 민간인은 신직수·노신영 부장뿐이다. 그런데 역대 군 출신 수장 18명 가운데 12명(66.7%)이 구속되거나 불귀의 객이 되었다

이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사례는 세 번이나 구속을 반복한 장세동 전 안기부장의 경우다. 장세동 부장은 ▲89년 5공비리 직권남용 ▲93년 통일민주당 창당방해 ▲96년 12·12 군사쿠데타 혐의로 각각 구속된 바 있고, 2002년에는 대통령선거에까지 출마했지만 이른바 '수지 김' 사건으로 민사상 책임과 함께 정부로부터의 구상권(求償權)을 적용 당하는 신세에 놓여 있다.

'악역' 수행할수록 '장수'했지만 물러난 뒤 실종·사형·구속

a 역대 국정원장의 직인과 서명. '악역'을 잘 수행하는 국가정보기관장일수록 '장수'했다.

역대 국정원장의 직인과 서명. '악역'을 잘 수행하는 국가정보기관장일수록 '장수'했다. ⓒ 오마이뉴스 김당


이같은 수난은 정보기관의 속성상 일반 국민에게는 정보기관의 수난과 실패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그 실패는 대부분 최종 정보 수요자, 즉 대통령을 지나치게 염두에 두고 그가 원하는 정보만을 생산해내려는 심리, 즉 '정보의 정치화'(politicization of intelligence)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조직원들이 최고 사용자의 정치적 필요에 맞는 정보 생산물에 편중하고 원내 고위 인사의 개인적 정치목적에 맞게 정보를 수단화한 탓이다.

그러나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래로 역대 정보기관장에 견고한 지역성을 기반으로 측근 인물을 기용한 임명권자의 본뜻이 충성심을 앞세운 '악역의 대행'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악역을 잘 수행하는 정보기관장일수록 '장수'했다.

역대 국가정보기관장의 평균 재임기간이 1년8개월 정도인데 비추어볼 때, 최장수한 4대 김형욱(5년 3개월)과 6대 이후락(3년), 8대 김재규(2년 10개월), 21대 권영해(3년 3개월)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리고 이들은 예외없이 권력(직권) 남용 혐의로 실종·사형을 당하거나 구속되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은 때로는 김대중 납치 사건 같은 '과잉 충성'으로, 때로는 자신의 후계구도를 넘본 이후락 부장의 후임(7대)에 군 출신이 아닌 법률가(신직수)를 처음 기용했으며, 그가 재임하는 동안 법위에 군림해온 중앙정보부에는 처음으로 '법의 지배'라는 인식이 싹튼 것으로 평가된다.

그후 쿠데타로 집권해 직접 10대 부장을 역임한 전두환 대통령은 1981년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꾼 뒤 유학성·장세동·안무혁 등 12·12 쿠데타 핵심세력을 차례로 수장으로 앉혔으며, '보통사람의 시대'를 내걸고 '탈권위'를 표방한 노태우 정부(제6공화국)부터 정보기관에 대한 권력남용의 제어장치로서 군 출신과 법률가가 번갈아 기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는 신건·고영구·김승규 원장으로 이어졌다. 이 가운데 신건씨는 불법감청 사건으로 군출신이 아닌 역대 원장 중에서는 유일하게 구속되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항소심에 계류중이다.

본인 자신이 국가정보기관의 정보·공작정치의 최대 피해자이기에 집권 초부터 국정원의 '3금 원칙'(정치 관여·고문·도청 절대 금지)을 강조해온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말에 국정원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관리하도록 기용한 법률가 출신이 불법감청을 묵인한 혐의로 사법처리된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신씨는 최근 항소심에서 재판부에 국정원장이 불법감청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선입견 배제요청'을 강조하면서 시종일관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항소심의 판단이 주목된다.

처음으로 차장급 수뇌부 전원 내부출신으로 채운 2001년

필자는 신건 원장 시절에 국정원 창설 40년을 기념해 그와 비공식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다만, 국정원장은 언론과 인터뷰하지 않는다는 국가정보기관의 불문율에 따라 인터뷰는 실명이 아닌 '국정원 고위 관계자' 인터뷰로 기사화되었다.

당시 신 원장은 취임후 기존의 국정원 출신 국내(김은성)·북한(김보현) 담당 차장을 그대로 둔 채 해외(최명주) 담당 차장과 기조실장(장종수)을 모두 내부 출신으로 발탁해 국정원 40년 역사상 처음으로 차장급 수뇌부 전원을 내부 출신으로 보임해 국정원 조직의 위상과 직원의 사기를 드높였다.

당시 인터뷰에서 신 원장은 인사 배경과 관련 "전문성과 능력·청렴성·개혁성을 고려해 내부 발탁을 원칙으로 한 결과 차장 네 분이 모두 내부 인사로 채워졌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일부 부서에 잔존한 불법감청의 관행과 실태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김은성 차장을 교체하지 않은 것이 그에게는 개인적 불행을 가져왔지만, 당시로서는 위의 네 가지 기준과 내부 발탁 원칙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당시 불혹(不惑)의 연륜이 된 국정원 내부에서는 조심스럽게 '최초의 국정원 출신 원장 대망론'이 제기되었다.

"이번 인사를 계기로 앞으로 차장까지 외부 인사가 원내에 들어오기가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공채 출신 원장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원장 대망론'까지 조심스럽게 점칠 만큼 정치적 중립을 이뤘고 이제 그럴 만한 연륜도 되었다는 것이 내부의 평가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여만인 23일, 국정원 45년 역사상 처음으로 내부 공채 출신 김만복 1차장이 28대 국정원장에 임명되었다.

1946년 부산 기장 출신으로 부산고·서울대 법대를 나와 유신 시절인 1974년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학원사찰 담당을 시작으로 32년만에 국정원장 후보로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선 김만복 국정원장 후보자는 20일 떨리는 목소리로 "최초의 내부 출신 원장 후보로 이 자리에 선 것은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국민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부·여당뿐 아니라 '집권야당'의 외풍도 견뎌낼 수 있어야

a 국정원 45년 역사상 처음으로 내부 공채 출신으로 수장이 된 김만복 28대 국정원장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국정원 45년 역사상 처음으로 내부 공채 출신으로 수장이 된 김만복 28대 국정원장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대중 정부 초기에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내 정보기관의 생리를 아는 문희상 의원은 이날 청문회에서 "내부 출신 인사가 최초 국정원장직에 앉는다는 것은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의 지적대로 국정원장이 과거처럼 정권의 제2인자인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노무현 대통령 또한 '국정원과 가까이 하면 득볼 것은 없다'며 불가근불가원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이라는 4대 권력기관에 의지하지 않는 정부를 운영하겠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신념이다.

김만복 원장도 "국정원 출신으로 첫 국정원장이 된 데 대해서 이것은 고유업무에 충실하라고 대통령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국정원을 넘겨준 것이 아닌가, 그런 얘기를 하는 직원들도 있다"는 말로 노 대통령의 결단과 이를 환영하는 원내의 분위기를 전했다.

김 원장은 또 23일 취임사에서 "2007년 대선은 우리의 정치적 중립 원칙이 확고히 정착됐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정치적 중립 의지를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는 남아 있다. 어느 부처보다도 상명하복이 철저한 정보기관의 속성상 수장이 누구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조직이 국정원이다. 지난 45년 동안 내부 출신 수장이 나오지 않은 것은 그럴 만한 조직의 '연륜'이 안되서가 아니라 내부 출신일수록 팔이 안으로 굽고 정보의 자의적 취사선택으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모든 것을 걸고 '올인'할 정치권의 외풍을 막아낼 수 있는 강단과 배짱이 있는지도 중요하다. 그것은 비단 정부여당의 외풍뿐만 아니라 사실상의 '집권야당'의 외풍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나 신임 원장이 기조실장·차장 시절에 청와대 참모들의 관계설정에서 보여준 '저자세'와, 인사청문회장에서 이른바 '일심회' 사건의 성격 규정을 묻는 질문조차도 "수사 지휘선상에 있지 않았다"는 구실로 사건의 성격 규정을 회피한 '무소신'은 그가 과연 정치권의 외풍을 막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정원은 이제부터라도 원장이 신(神)인 시절의 구태의연한 '복무지침'보다 부서별 업무지침과 로드 맵을 새로 만들어 업무절차와 책임이 불분명하고 윗사람이 마음대로 전횡할 수 있는 구조 자체를 없애야 할지 모른다. 또 어쩌면 부당한 상관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내부 고발자' 제도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정보기관 조직의 특성상 받아들이기 힘든 제도이지만,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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