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쌈지, 앤디 워홀을 만나다

[사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행복한 쌈지길 나들이

등록 2006.11.24 10:27수정 2006.11.2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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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그리고 19일. 2주간의 황금 같은 일요일 아침. 필자가 늦가을 쏟아지는 추풍낙엽(秋風落葉)을 밟으며 당도한 곳은 인사동이다. 주말 인사동 거리는 수많은 인파로 넘쳐나고 있었다. 휴일을 맞아 너도나도 서울의 명물인 인사동으로 쏟아져 나온 모양이다.

a 휴일, 인사동은 다채로운 볼거리로 가득했다.

휴일, 인사동은 다채로운 볼거리로 가득했다. ⓒ 곽진성

북적거리는 인사동 거리, 복잡하기는 해도 필자는 이런 인사동의 시끌벅적함이 마음에 든다. 거리 곳곳에서 우리의 옛 복장으로 변장한 사람과 전통 물건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인사동 거리에는 전통 공예품을 파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값싼 기념품 부채부터 값나가는 진짜 예술품까지 우리 문화재에 관해서라면 인사동엔 없는 것이 없다.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느낌이 드는 곳, 이곳이 바로 인사동이다.

하늘 위 자동차를 보다

"와."
"저게 뭐야?"
"자동차다! 하늘을 날고 있어."

예술품을 구경하며 한참 거리를 걷는데, 저만치 먼 곳에서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며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뭐지? 궁금한 마음이 들어 한걸음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와!' 나도 모르게, 순간 탄성이 터져 나온다. 가을 하늘을 나는 자동차다.

a 건물 옥상에 전시된 예쁜 자동차. 이를 지켜보는 연인의 모습이 애틋하다.

건물 옥상에 전시된 예쁜 자동차. 이를 지켜보는 연인의 모습이 애틋하다. ⓒ 곽진성

아니, 가만 보니 그게 아니다. 1층짜리 작은 건물 위에 큼지막한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었다. 동화에나 나올 듯하게 예쁜 자동차다. 재밌는 전시에 웃음이 나왔다.


한참, 하늘 위 자동차를 바라보다 그곳을 지나쳐 들어가니, 곧이어 쌈지길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여기부터 요 근래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쌈지길이다.

얼마 전 인사동에서는 때 아닌 쌈지길 유료화 논란이 있었다. 인사동의 명물인 쌈지길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멀쩡한 길을 구경하는데 돈을 내라니, 말도 안 되는 방침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필자만이 아닌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결정은 인사동을 사랑하는 수많은 누리꾼들의 반대에 부닥쳤다.

다행히 필자가 인사동에 다녀갔을 때는, 쌈지길은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입장료를 받았다가 누리꾼들의 거센 비난을 받고 다시 무료로 바뀐 것.

빵 냄새를 맡았다고 빵 값을 받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거리를 걸었다고 입장료를 받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기에 무료로 바뀌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들이 마음 놓고 쌈지길을 구경할 수 있으니.

우여곡절을 겪은 쌈지길이지만, 주말을 맞은 그곳엔 해외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가만 들어보니 세계 온갖 언어가 다 들리는 듯하다.

a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 뒤로 펼쳐진 보랏빛 우산의 향연. 장관이다.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 뒤로 펼쳐진 보랏빛 우산의 향연. 장관이다. ⓒ 곽진성

가까운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들, 먼 유럽에서 온 사람들, 머리에 보자기를 싸맸는데 도통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곳에서 온 세계인들의 언어가 섞여 있었다.

한국의 전통 명물거리에 온 외국인들. 왠지 모르게 신나는 일이다. 그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즐거워 보인다.

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만 즐거운 것은 아닌 모양이다. 우리의 젊은 연인, 친구들도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재밌는 인형 앞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기념촬영을 한다. 차례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온갖 예쁜 포즈로 사진을 찰칵한다.

각국 사람들이 사진을 찍지만, 세계 공용의 사진 포즈 '김치'는 한결같다(물론 외국인들에게는 '김치'가 아니겠지만). 재밌는 일이다.

혼자서 인사동 이곳저곳을 돌며 한참 사진을 찍는데, 어떤 연인들이 "사진 좀 찍어주세요!" 하고 부탁한다. 이런, 행복한 모습에 샘나지만 어쩌랴. 정성스레 사진을 찍어주니, 연인들은 잘 나온 사진에 즐거워한다.

쌈지길 위로 보이는 가을 하늘은 보랏빛 우산의 향연이다. 참으로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 없는 광경이다. 그래서일까? 관광객들도 모두 하늘을 쳐다보면서 걷고 있다. 봄에는 진달래 꽃비가 내리더니, 가을에는 보랏빛 우산이다. 쌈지길을 꾸미는 독특한 상상력에 웃음 짓는다.

앤디워홀 만나러 가 봅시다

쌈지길에서는 앤디워홀 작품 전시회가 한창이었다. 10월 25일부터 내년 1월 25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는 인사동을 들르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찾아볼만하다. 잠깐, 그렇다면 우선 앤디워홀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a 오락실 기계 작품.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락실 기계 작품. 눈길을 사로잡는다. ⓒ 곽진성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1928~1987)은 피츠버그 카네기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상업디자이너와 화가로 활약했으며 나중에는 영화, 소설 부문 등에서도 활약한 현대 미국의 대표적인 예술가이다.

사실 처음에는 외국인 전시회가 왜 우리 전통 거리에서 열리는지 의문도 들었다. 조금 생뚱맞은 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전통의 거리에서 현대 거장을 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런 대단한 사람의 작품을 인사동에서 볼 수 있다니 가슴이 뛴다.

쌈지길 계단 위를 올라가니 오락 기계 같은 것이 눈에 띈다. 진짜 오락기계인지 궁금해서 가보니, 진짜가 아니라 앤디워홀의 작품이다.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예술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감명 깊었다. 앤디 워홀의 또 다른 작품은 콜라병이 잔뜩 그려져 있는 그림이었다. 역시나, 현대 문명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이미지를 비판하고 있는 모양이다.

a 곳곳에 전시된 앤디 워홀의 작품들. 콜라병의 무수한 배열이 눈길을 끈다.

곳곳에 전시된 앤디 워홀의 작품들. 콜라병의 무수한 배열이 눈길을 끈다. ⓒ 곽진성

앤디 워홀은 마릴린 먼로의 초상을 다양한 색상의 실크 스크린으로 제작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마릴린 먼로란 배우는 워낙 대중성이 강해 그녀를 예술가로 인정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앤디워홀은 다른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마릴린 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앤디워홀은 마릴린 먼로의 무수한 초상을 그려내, 그녀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평범함에 충격을 가해 대중성을 예술로 변모시켰다. 무의미했던 콜라병을 무수히 배열해 예술로 만든 것처럼.

이쯤 되면 앤디워홀이라는 예술가, 존경할 만하다. 남들이 하지 않은 일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한 일 아닌가? 그렇기에 전시회를 둘러보며 필자는 앤디워홀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행복한 쌈지길 나들이를 마치다

쌈지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 다 되었다. 보랏빛 우산, 앤디 워홀, 그리고 사람들로 북적인 인사동.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a 200m에 달하는 인사동 쌈지길. 가을을 맞아 더욱 아름답다.

200m에 달하는 인사동 쌈지길. 가을을 맞아 더욱 아름답다. ⓒ 곽진성


a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우산이 내려올 것 같다.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우산이 내려올 것 같다. ⓒ 곽진성

유료다, 무료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쌈지길. 논란이 무료로 종지부를 찍자, 쌈지길은 다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저녁이 다 되도록 인파가 끊이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다녀온 인사동 쌈지길 기행. 몸은 조금 힘들었지만 이것저것 보고 들은 것이 많아서 좋은 하루였다. 무엇보다 우리 전통의 거리가 세계 각국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아서 좋았다. 전통의 거리에 등장한 현대예술의 거장 앤디 워홀을 만난 것도 소중한 기억이다. 즐거웠던 이야기를 여기서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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