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큰 손'은 무엇일까요

가족을 살피는 아내의 손과 아픈 아이 다독이는 어머니의 손입니다

등록 2006.11.24 18:44수정 2006.11.25 20:0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여름,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종수 신부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농사 일로 손이 다 부르텄다면서요?"

a 농삿일로 쩍쩍갈라진 나의 손.

농삿일로 쩍쩍갈라진 나의 손. ⓒ 송성영

농사 일로 쩍쩍 갈라진 손을 <오마이뉴스>에 사진까지 찍어 올린 적이 있는데 그 기사를 읽었던 모양입니다.

"생각보다 손이 곱네요."
"그렇쥬, 내 손이 월래 그래유."
"그런데 아주머니의 거친 손이 더 큰 손이네요."


신부님이 계신 전주 팔복동성당은 공단 지역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공단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의 거친 손들을 수없이 잡아 보았을 것입니다. 아마 매끈한 내 손을 잡아 보고 폼 잡는 한량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부끄럽기도 했고 또 억울했습니다. 내 손은 진짜로 쩍쩍 갈라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서너 달만에 본래 매끈한 손으로 원위치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신부님 말씀이 전적으로 옳았습니다. 내 손보다 아내의 손이 더 힘 있는 큰 손이었습니다. 아내의 손은 내 손보다 작고 연약하지만 주부 습진을 달고 다닐 정도로 가족들을 위해 온 마음을 쓰고 있는 손이기 때문입니다.


내 손은 어려서부터 쉽게 트질 않았습니다. 겨우 내내 동네 앞 냇가에서 썰매를 타고 논두렁에서 불장난을 하며 지낼 때도 몇 날 며칠이 지나면 말짱해졌습니다.

"어째 니 손은 기지베 같다, 잉"


아무리 쩍쩍 갈라져도 며칠이면 말짱해지는 내 손

어려서부터 수없이 들어왔던 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7남매 중에 셋째인 내가 아버지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딱 한 군데 닮지 않은 구석이 있다면 바로 손이었습니다. 농사꾼이었던 아버지의 손은 그야말로 솥뚜껑이었습니다. 동네에서 아버지의 팔씨름을 이겨낼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린 나는 아버지처럼 힘이 세지고 싶었습니다. 약골에서 벗어나 힘센 사내가 되기 위해 모진 애를 썼습니다. '남자다운 손'으로 탈바꿈시키려 용을 썼습니다. 그야말로 피터지게 주먹을 갈고 닦았습니다. 거죽나무에 새끼줄을 감아 놓고 하루에 오십 번, 백번씩 정권단련을 했습니다. 손마디가 벗겨지고 물집이 잡혀 터지고 피가 나도록 무지하리만큼 단련시켰습니다. 정권에 굳은살이 박일 때까지 단련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손을 보면서 강한 힘은 길러나갔습니다. 하지만 더 힘 센 것은 어머니의 여린 손이었습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 사경을 헤맬 정도로 심하게 앓아 누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하고 온 몸이 펄펄 끓었습니다. 버스도 다니지 않았던 시골구석에서 어머니는 어린 나를 데리고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내 몸의 열은 식히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나는 쓰디쓴 한약을 먹어가며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군불 지핀 방안에서 두터운 이불을 덥고 지냈습니다. 내 몸의 열기를 뽑아내기 위해 이런 저런 방법을 다 쓰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아마 이열치열 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혼미한 나를 잠깐 잠깐 바로 잡아준 것은 한약도 이열치열 법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어머니의 손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손은 한 줄기 바람처럼 시원했습니다.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는 혼미한 미로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이끌어 주는 한줄기 빛과도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오로지 자식을 살려 보겠다는 온 마음을 손에 불어 넣었을 것입니다. 그 마음이 온전히 내 몸으로 퍼져 열을 식혔을 것입니다.

내 몸의 열을 식혀 주었던 사랑 담긴 어머니의 손

하지만 나는 당뇨를 앓고 계시는 어머니의 아픈 다리를 만져 드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내 마음은 어린 나에게 쏟았던 어머니의 마음만큼 간절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히려 내 손보다는 어린 자식들의 손이 더 큰 힘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배탈이 났을 때 아버지인 내 손으로 낫게 해주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다 과식을 해서 배탈이 나면 나는 아이들의 손을 빌립니다. 아이들이 내 배에 손을 올려놓고 있으면 어렸을 적 어머니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어린 아이들의 마음과 내 마음과는 또 다릅니다. 나는 어떤 뚜렷한 목적으로 온 마음을 모아 기운을 만들어내지만 아이들은 그저 손을 대고 있을 뿐입니다. 배 위에 손을 대 놓고 책을 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한 뱃속이 시원하게 뚫릴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기운이 울울창창한 숲의 기운과 가깝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숲에서 머리가 맑아지는 이치와도 같은 것이겠지요.

어린아이들보다 더 자연에 가까운 것은 갓난아기들입니다. 고사리 같은 아기의 손을 보는 것 자체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나는 그런 아기들의 손을 통해 순수한 자연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아기들의 손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봄날, 무수한 새싹이 돋을 때 숲에서 느껴지는 그런 맑은 기운으로 다가옵니다. 아기들의 손은 숲 그 자체입니다. 숲의 기운만큼이나 큰 손입니다.

가끔씩 나는 숲은 인간의 가장 순수한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순수한 마음과 만나면 감격에 겨워 눈물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자연 그 자체인 아기들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산모처럼 말입니다. 갓난아기의 손이야 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세상에서 가장 큰 손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우리 집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이 용돈 받은 돈을 저축하겠다며 통장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돈에 별 관심이 없던 녀석이 어쩐 일인가 싶었습니다. 통장을 만든 다음 날이었습니다.

"통장에 있는 돈 줌 빼 줘."
"겨우 하루 지났는데 뭘 하려구?"
"엄마 손 아프잖어."


엄마가 주부 습진으로 고생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모양입니다.

"얼마를 빼 줄까?"
"전부 다."


우리 집에서 모르는 게 가장 많은 녀석이지만 손이 가장 크고 마음이 너른 사람은 가장 나이가 어린 인상이 녀석이었던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