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찾아간 바이칼... "정말 호수 맞아?"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9] 이르쿠츠크 2

등록 2006.11.28 12:03수정 2006.11.2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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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봄 날씨야, 겨울 날씨야

경찰만큼이나 여행자를 당황스럽게 한 것은 날씨였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의 시베리아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이야기는 익히 듣고 왔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였다.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첫 날인 4월 27일, 기온이 영상 15도까지 올라가 입고 있던 겨울옷들이 거추장스러웠다. 하지만 다음날은 영하의 날씨에 눈까지 내렸다. 그 다음날도 영하의 날씨, 그러다가 영상으로 다시 기온이 올라가 비가 오고…. 이르쿠츠크에 머문 6일 간 '이게 며칠 사이에 변하는 날씨 맞나' 싶을 정도로 변덕스런 날씨를 경험했다.

하긴 날씨는 러시아뿐 아니라 북유럽에서도, 월드컵 기간에도 계속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날씨는 참 순하다는 생각도 했다. 날씨가 순하다는 말이 이상하지만, 그런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이번 여행에선 날씨 때문에 많이 고생했다.

변덕스런 날씨는 여행자의 옷에 영향을 미치고, 그건 그만큼 배낭의 무게를 늘리는 요소다. 날씨 때문에 생긴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많이 남아 있다.

아무튼 영하와 영상을 들락거리는 이르쿠츠크의 날씨 변덕은 앞으로 맞닥뜨릴 고생을 암시했다.

혼자서 바이칼 호수 찾아가기


a 4월 28일에 내린 이르쿠츠크의 눈.

4월 28일에 내린 이르쿠츠크의 눈. ⓒ 강병구

이르쿠츠크에 온 목적은 바이칼 호수를 보는 것. 이틀 동안 휴식도 취했겠다, 몸이 풀린 난 바이칼 호수로 향했다. 그런데 배낭여행기라고 쓰고는 있었지만, 사실 이 시점까지는 혼자 여행한 게 아니었다. 가이드가 동행한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프스크에서도 그렇지만,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고 난 뒤 이틀 동안 민박집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움직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동안 겪은 러시아 여행의 어려운 점들이 더해져, 바이칼 호수를 혼자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워졌다. '말도 안 통하는데 혼자 돌아다니다 경찰에 잡혀 곤욕을 치르는 것 아닐까? 잘못해서 바이칼 호수가 아닌 엉뚱한 데로 가서 길을 잃어버리는 거 아니야?'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다. 우진 형님이 가는 방법을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주셨지만, 솔직히 '데려다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척 가보고 싶던 곳이기에, 무거운 발을 이끌고 아침 일찍 민박집을 나섰다. 우선 설명을 들은 대로 이르쿠츠크 외곽에 있는 시외버스정류장(압토바그잘)을 찾아갔다. 바이칼 주변의 모든 도시를 연결한다는 이르쿠츠크 시외버스정류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왜소했다. 하지만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바구니를 든 아주머니들까지, 우리나라 지방도시의 버스정류장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정규버스 대신, 정류장 공터에 서있는 리스트뱐카행 봉고차를 찾아탔다. 이르쿠츠크에선 봉고차가 대중교통 수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리스트뱐카 같은 장거리를 갈 때도 이 점은 마찬가지였다.

봉고 안에는 러시아 아주머니와 아이들 등 여러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독일인 여행객 두 사람도 눈에 띄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리스트뱐카에서 바이칼 호수를 보러간다는 이 사람들은, 이후 몽골을 거쳐 중국 베이징으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이들이 눈에 띄었던 건 내가 여행을 시작한 후 처음 만나는 여행객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4월 말이 여행 비수기라고는 하지만, 이제껏 여행객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기에 더욱 반가웠다.

바이칼 여행의 시작점, 리스트뱐카

a 리스트뱐카 버스정류장과 노천시장.

리스트뱐카 버스정류장과 노천시장. ⓒ 강병구

1시간여를 달려 리스트뱐카에 도착했다. 바이칼 호수의 남쪽 끝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인 리스트뱐카는 바이칼 여행의 출발점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가까운 바이칼 인근 마을이며, 바이칼 호수가 녹는 5월에서 10월 사이에는 배를 통해 바이칼의 이곳저곳을 여행할 수 있는 곳이다.

a 훈제 오물과 러시아 맥주.

훈제 오물과 러시아 맥주. ⓒ 강병구

마을 자체는 버스 정류장과 선착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작은 곳이지만, 바이칼 여행의 중심지답게 다양한 가격대의 숙박지를 갖추고 있고 이런저런 볼거리와 즐길거리들도 있다. 특히 버스정류장 왼쪽에 펼쳐진 노천시장과 거기서 파는 훈제오물은 이곳에 왔다면 꼭 먹어봐야할 별미이다.

바이칼 호수에만 서식한다는 '오물'이란 민물고기는 기름기가 많은 편인데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대부분 훈제를 해서 먹는데, 시원한 맥주 한 병과 같이 먹으면 진미가 따로 없다. 날씨가 추울 때는 길 건너편 상점에서 도시락 라면을 하나 사서 같이 먹어도 별미다. 단 오물은 기름기가 많고 비릿한 맛이 나기 때문에, 아무리 맛있더라도 싸오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식으면 먹기 힘들다. 그러니, 아쉽더라도 그 자리에서 먹을 만큼만 즐기자.

이게 정말 호수란 말이야?

어릴 적 세계지도를 보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가 바이칼 호수였다. 유라시아 대륙 북쪽에 마치 초승달 모양의 구멍이 난 것처럼 길쭉하게 표시된 바이칼 호수는 지도로 봐도 신기했다.

a 리스트뱐카에서 찍은 바이칼 호수의 전경.

리스트뱐카에서 찍은 바이칼 호수의 전경. ⓒ 강병구

실제로 와보니 더 신기했다. 호수라면 민물일 텐데, 민물에 수평선이 있다. 호수 넘어 왼쪽 끝에는 봉우리가 하얀 산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직 4월말, 즉 바이칼이 녹지 않은 시기이기에 호수의 얼음 위를 걸어 다닐 수 있었다. 호수를 걸어 다니며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일 것 같은 모습을 보며 마치 꿈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얼음이 녹는 5월 이후에는 호수에 나지막한 파도도 친다고 한다. 그리고 리스트뱐카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인근으로 이동해 바이칼의 곳곳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걸 보지 못해 많이 안타까웠다.

얼음에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로 순백인 바이칼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될 정도로 깨끗해보였다. 하지만 바이칼 물을 떠먹는 것은 삼가라는 전언. 바이칼 인근에도 개발 바람이 불어 여러 공장 등에서 나오는 오수가 그대로 방류되고 있다고 한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론 리스트뱐카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오폐수를 보더라도, 이 물을 그냥 떠먹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비록 인근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바이칼의 물을 떠가는 것을 목격했지만. 역시 사람의 손길이 닿아 멀쩡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밖에 없던 씁쓸한 경험이었다.

a 리스트뱐카 마을에서 바이칼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오폐수.

리스트뱐카 마을에서 바이칼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오폐수. ⓒ 강병구


[여행팁 7] 배낭여행객으로 바이칼 즐기기 1

▲ 이르쿠츠크 압토바그잘
ⓒ강병구
리스트뱐카 가는 법

이르쿠츠크의 압토바그잘(시외버스정류장)을 찾아가면 기본적으로 바이칼 인근 도시로 가는 버스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리스트뱐카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에 공식 시외버스가 아니더라도 갈 수 있는 교통편들이 있다.

특히 시외버스정류장 오른쪽 공터에 가보면 '리스트뱐카'라는 팻말을 붙이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봉고차 운전사들을 만날 수 있다. 키릴문자를 잘 모를 경우, 앞에서 서성이는 기사들에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이런 봉고차들의 종점이 리스트뱐카이기 때문에, 어디서 내려야 할 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르쿠츠크로 돌아올 때는 내린 곳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봉고차를 찾으면 된다.

봉고차 쪽이 운행 횟수도 많고 가격도 싼 편이다(2006년 4월 기준, 편도 60루블). 단 사람이 다 차야 운행한다는 점, 인원수 초과로 자리가 상당히 불편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것.

바이칼 호수에 대한 정보들

바이칼 호수에 대한 정보들은 사실 찾아보면 상당히 많다. 최근 한민족의 시원지가 바이칼 호수 인근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인터넷이나 서적들에 상당한 정보가 축적되어 있다. 현지에서 영어자료를 구하는 것은 어렵다. 한국에서 충분히 자료를 찾아간다면 상당히 풍부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바이칼 사랑'(http://www.baikalland.net) 사이트와 이르쿠츠크에 거주하는 박상훈님 홈페이지(http://www.baikalinfo.co.kr)에서 바이칼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바이칼 인근 숙박시설을 문의할 수도 있다.

또 영어로 서비스되는 이르쿠츠크 포털사이트(http://www.icc.ru)에서는 지도를 비롯해 이르쿠츠크와 인근 지역에 대한 최신 뉴스, 날씨 등을 알아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기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기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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