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치킨게임'의 주도권 잡았나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노 대통령 탈당' 놓고 김근태-정동영의 엇갈린 행보

등록 2006.11.29 10:24수정 2006.11.29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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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무현 대통령은 "가급적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당적을 포기하는 상황까지 몰리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자료사진)

노무현 대통령은 "가급적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당적을 포기하는 상황까지 몰리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상당수 언론이 '치킨게임'으로 묘사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대결'에 대한 묘사다.

'치킨게임'은 마주 보고 자동차를 몰다가 먼저 비키는 쪽이 지는 게임이다. 영화 <원초적 본능>에 나왔던 장면이다.

그렇다. 지금 두 사람을 휘감고 있는 건 원초적 본능이다.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다. 그래서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또 실제로 그렇게 해왔다.

달려올 만큼 달려왔다. 이제 면전에 도달한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탈당 가능성을 시사했고, 김근태 의장이 주도한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는 "정치는 당에 맡기고 대통령은 국정에 전념해 달라"는 입장을 정했다.

대다수 언론은 이런 사실에 기초해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을 기정사실화 했다. 12월 9일이 기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이렇게 전망하는 이유가 있다.

탈당, 수순 밟기만 남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탈당을 시사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가급적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당적을 포기하는 상황까지 몰리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키워드는 '상황'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탈당을 규정하는 요소로 열린우리당의 '상황'을 설정했다.

열린우리당은 이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다. 어젯밤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정치는 당에 맡기고 대통령은 국정에 전념해 달라"고 했다. 탈당을 명시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거리두기에 나선 건 분명하다.


언론이 탈당을 기정사실화 하는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12월 9일을 탈당 기점으로 전망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 속에 있다. 이날 내놓기로 한 비대위의 입장이 좀 더 강경해질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벌어지는 '치킨게임'은 경차와 덤프트럭의 대결이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먼저 핸들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증이 필요하다. 김근태 의장, 또는 열린우리당이 덤프트럭 핸들을 잡았다고 단정하기 전에 꼭 확인할 게 있다. 비대위는 정말 의견 일치를 본 걸까? 계파간 이견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어제 내놓은 입장을 흔들림 없이 지켜갈 수 있을까? 그래서 12월 9일이 되면 좀 더 강경한, 즉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을 대놓고 요구할 만큼 분명한 입장을 도출할 수 있을까?

모호한 정동영계, 주역으로 등장한 김근태계

a 정동영 전의장은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김근태 의장은 29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회의에서 `당이 국정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 밝혔다.

정동영 전의장은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김근태 의장은 29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회의에서 `당이 국정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가장 먼저 쳐다볼 곳은 정동영계다. 이들의 입장이 모호하다.

정동영 전 의장은 지난 주 미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앞으로 현안에 따라 시시비비를 가리겠다. 그래야만 당에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다. 이 말만 놓고 보면 청와대와 각을 세우기로 작심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정동영 전 의장이 시비 거리로 삼겠다는 건 현안이지 당의 정체성과 당의 운명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정동영 전 의장은 뚜렷한 입장을 내놓은 바가 없다. 열린우리당 창당은 실패했다면서도 창당정신은 옳았다고 했고, 향후 진로에 대해서는 국민 여론을 살펴 결정하겠다고 에둘러 갔다.

처지가 그렇다. 정동영 전 의장은 참여정부의 2인자였고, 정동영계는 열린우리당의 주류였다. 그런 정동영 전 의장과 정동영계가 순식간에 '안면몰수'를 하긴 쉽지 않다. 명분도 그리 많은 게 아니다.

실리 챙기기가 확실하다면 두 눈 질끈 감겠지만 그렇게 될 것이란 보장도 없다. 이른바 통합신당파에 가세한다고 해서 대선 승리가 보장되는 것도, 계파의 존속·확장이 담보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계파 해체의 운명을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한다고 해서 정계개편에 서광이 비치는 것은 아니다.

정동영계의 이런 처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내일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다.

달라지는 게 하나 있긴 하다. 김근태 의장이 '치킨게임'의 주역이 됐다. 승과 패의 공과 과는 모두 김근태 의장에 집중되게 돼 있다. 일시적으로 김근태계에 주도권을 내줘야 하지만 그만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정동영계는 얻어도 본전, 밑져도 본전이다.

예측 불능이다. 김근태계와 친노 그룹의 중간지대에 서 있는 정동영계가 최종적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지, 현재로선 예측 불허다. 그래서 유동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차와 덤프트럭의 운전자가 뒤바뀔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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