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해돋이를 보며 만세부르고 싶었다!

[역사기행 1] 전남 해남군 땅끝과 달마산 미황사 여행을 떠나다

등록 2006.11.30 08:23수정 2006.11.30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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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해돋이. 나는 하나뿐인 해를 바라보며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땅끝 해돋이. 나는 하나뿐인 해를 바라보며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김연옥
지난 25일 하루 동안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전남 해남과 강진군 여행을 다녀왔다. 일행은 나를 포함해서 통영여고에서 국사를 가르치는 김건선 선생 부부, 작곡가 고승하 선생의 아내인 김명숙, 유치원에서 놀이 수학을 가르치는 조수미와 그림을 그리는 박임숙씨로 모두 여섯 명이었다.

우리는 한반도 최남단의 땅끝(전남 해남군 송지면)에서 해돋이를 본다는 설렘 속에 24일 밤 열두 시께 약속 장소에 모였다. 도시가 잠든 깊은 밤에 떠나는 여행은 마치 덤으로 시간을 더 얻은 기분이 들게 해 마음이 더욱더 설렜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밤길을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비추며 마산을 점점 벗어나기 시작했다. 자동차 안에 감미롭게 흐르는 노래가 내 가슴속으로 녹녹히 스며들고, 이따금 잠에 곯아떨어진 나를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이 흔들어 깨우는 듯했다.

한반도 최남단 땅끝에서 해돋이를 보다

땅끝 해돋이를 기다리며. 파란 바다의 하얀 뱃길과 비행기가 남겨 놓은 하늘의 하얀 길도 정겨운 풍경이었다.
땅끝 해돋이를 기다리며. 파란 바다의 하얀 뱃길과 비행기가 남겨 놓은 하늘의 하얀 길도 정겨운 풍경이었다.김연옥
섬을 제외하면 북위 34도 17분 21초의 갈두산(사자봉) 땅끝이 우리나라 맨 끝에 있는 땅이다. 우리가 땅 끝에 이른 시간은 새벽 5시 30분께. 자동차 안에서 1시간쯤 더 기다렸다가 땅 끝 전망대를 향했다.

차츰 엷어져 가는 어둠을 가르며 갈두산(156.2m) 꼭대기에 이르니 봉수대가 보였다. 봉수(烽燧)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나라의 위급한 상황을 알려 적의 침략에 대비하게 했던 통신 제도로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파괴되어 있던 봉수대를 복원해 놓았다.

땅끝의 아침을 여는 장엄하고 화려한 해돋이를 보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전망대 군데군데에 있었다. 나도 그 벅찬 감동을 기대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 날따라 살갗을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이 불어 몹시 추웠다.


그래도 파란 바다에 하얀 뱃길을 내며 지나가는 작은 배와 잠에서 깨어나는 하늘에 기나긴 선을 그으며 저만치 사라져 가는 비행기의 정겨운 풍경에 추위마저 잊었다.

갑자기 누군가 해가 나온다고 소리를 질렀다. 바로 눈앞에 시뻘건 해가 떠오르는 황홀한 시간은 축복이었다. 늘 맞이하는 아침인데도 그날 아침은 특별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조금 전 비행기가 남겨 놓은 하얀 길도 어느새 붉게 물들었다.


멍청이들이 정신을 번쩍 차리도록 한꺼번에 백 개의 해가 떠오르면 좋겠다는 화가 김점선의 글이 문득 생각났다. 그는 어떤 사람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멍청이라고 표현했을까. 어쨌든 그의 말처럼 힘들다고 징징 울지 말고 하나뿐인 해를 바라보며 두 팔을 하늘 높이 쳐들고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우리나라 만세! 땅끝 해돋이 만세! 우리의 처절한 삶 만세!

수묵처럼 스며가는 정
한 가슴 벅찬 마음 먼 발치로
백두에서 땅끝까지 손을 흔들게.
수천 년 지켜온 땅끝에 서서
수만 년 지켜갈 땅끝에 서서
꽃밭에 바람 일듯 손을 흔들게.
마음에 묻힌 생각
하늘에 바람에 띄워 보내게.


땅끝탑에 새겨진 손광은의 시를 음미하며 우리는 달마산 미황사를 향해 또 달렸다.

달마산 미황사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에 취하다

아름다운 절, 미황사 뒤쪽으로 달마산이 보인다.
아름다운 절, 미황사 뒤쪽으로 달마산이 보인다.김연옥

달마산 서쪽 자락에 자리 잡은 미황사(해남군 송지면 서정리)는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절로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의조화상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미황사(美黃寺)의 창건 설화에는 지금의 인도인 우전국 왕이었다는 금인(金人)이 등장한다.

달마산 미황사의 아름다운 대웅보전(보물 제947호)
달마산 미황사의 아름다운 대웅보전(보물 제947호)김연옥

달마산 꼭대기를 바라보고 부처님을 모시러 왔다는 그가 의조화상의 꿈에 나타나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웠다 일어나지 않는 자리에 부처님을 모시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소가 서쪽을 향해 아름다운 소리로 세 번 길게 울고 누운 골짜기에 미황사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미황사의 '미(美)'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취한 것이고 '황(黃)'은 금인의 황홀한 빛을 취한 것이다.

우리는 동백나무 길을 지나 미황사 대웅전(보물 제947호)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의 목조 건물로 빛 바랜 단청이 도리어 담백한 느낌을 주면서 은은한 나무 향기가 코끝으로 전해지는 듯한 아름다운 대웅전이었다.

김연옥

미황사의 대웅전 주춧돌.
미황사의 대웅전 주춧돌.김연옥

대웅전 공포의 용머리 장식을 올려다보니 하나는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데 하나는 여의주가 보이지 않았다. 어떤 깊은 의미가 있는 걸까. 그리고 둥근 주춧돌을 눈여겨보라는 김건선 선생의 말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다에 사는 거북과 게 등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나라 불교가 남쪽의 바닷길을 통해 들어왔다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은 아닐까. 미황사의 창건 설화에 등장하는 금인이 돌로 만든 배를 타고 달마산 아래 포구에 닿았다고 전해지는 이야기와도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미황사 부도밭으로 가는 길에는 가을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동백나무 묘목을 열심히 심고 있는 인부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쳐흘렀다. 시끄러운 수다가 오히려 머쓱한, 그 호젓한 길을 걸어가니 기분이 참 상쾌했다.

미황사 부도밭에서. 그 아름다운 경치에 흠뻑 취했다.
미황사 부도밭에서. 그 아름다운 경치에 흠뻑 취했다.김연옥

그런데 부도밭을 찾지 않고 미황사를 갔다 왔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미황사의 숨은 멋은 바로 고승이 잠든 고색 창연한 부도밭과 그 주변 경치에 있다는 걸 곧 알게 되었다.

한가한 걸음으로 걸어가다 모퉁이를 막 돌자 수려한 달마산 아래로 울긋불긋 단풍 든 나무들이 어우러진 늦가을의 아름다운 풍경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그 순간 모두의 입에서 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부도(浮屠)에 새겨진 문양 또한 인상적이었다. 연꽃과 용 등의 문양도 있지만 거북, 게, 오리, 물고기 등 바다의 생물이 새겨져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바닷길을 통해 불법(佛法)이 들어왔다는 미황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두륜산 대흥사로 가는 숲길에서 운치가 있는 흔들다리를 건넜다.
두륜산 대흥사로 가는 숲길에서 운치가 있는 흔들다리를 건넜다.김연옥

우리 일행은 11시 30분께 미황사를 떠나 두륜산 대흥사(해남군 삼산면 구림리)를 향해 달렸다. 매표소에서 대흥사로 들어가는 십리 숲길은 참 아름답다. 흙 길을 밟자는 김건선 선생의 제안으로 우리는 군데군데 동백나무가 있고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숲길로 들어섰다.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이성선의 '다리')


그 숲길에 있는 징검다리와 흔들다리를 건너며 우리 모두 어린아이들처럼 몹시 즐거워했다. 우리는 흔들다리 위에서 멋진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다고 한참 웃어댔다. 흔들거리는 다리 위를 걸어가는 우리 몸도 즐겁게 흔들렸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5일 하루 동안 다녀온 전남 해남과 강진군 여행 기사를 1)해남 땅끝과 달마산 미황사, 2)두륜산 대흥사와 정약용 선생의 다산초당 여행으로 두 번 나누어 쓸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25일 하루 동안 다녀온 전남 해남과 강진군 여행 기사를 1)해남 땅끝과 달마산 미황사, 2)두륜산 대흥사와 정약용 선생의 다산초당 여행으로 두 번 나누어 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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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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