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해돋이를 기다리며. 파란 바다의 하얀 뱃길과 비행기가 남겨 놓은 하늘의 하얀 길도 정겨운 풍경이었다.김연옥
섬을 제외하면 북위 34도 17분 21초의 갈두산(사자봉) 땅끝이 우리나라 맨 끝에 있는 땅이다. 우리가 땅 끝에 이른 시간은 새벽 5시 30분께. 자동차 안에서 1시간쯤 더 기다렸다가 땅 끝 전망대를 향했다.
차츰 엷어져 가는 어둠을 가르며 갈두산(156.2m) 꼭대기에 이르니 봉수대가 보였다. 봉수(烽燧)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나라의 위급한 상황을 알려 적의 침략에 대비하게 했던 통신 제도로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파괴되어 있던 봉수대를 복원해 놓았다.
땅끝의 아침을 여는 장엄하고 화려한 해돋이를 보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전망대 군데군데에 있었다. 나도 그 벅찬 감동을 기대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 날따라 살갗을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이 불어 몹시 추웠다.
그래도 파란 바다에 하얀 뱃길을 내며 지나가는 작은 배와 잠에서 깨어나는 하늘에 기나긴 선을 그으며 저만치 사라져 가는 비행기의 정겨운 풍경에 추위마저 잊었다.
갑자기 누군가 해가 나온다고 소리를 질렀다. 바로 눈앞에 시뻘건 해가 떠오르는 황홀한 시간은 축복이었다. 늘 맞이하는 아침인데도 그날 아침은 특별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조금 전 비행기가 남겨 놓은 하얀 길도 어느새 붉게 물들었다.
멍청이들이 정신을 번쩍 차리도록 한꺼번에 백 개의 해가 떠오르면 좋겠다는 화가 김점선의 글이 문득 생각났다. 그는 어떤 사람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멍청이라고 표현했을까. 어쨌든 그의 말처럼 힘들다고 징징 울지 말고 하나뿐인 해를 바라보며 두 팔을 하늘 높이 쳐들고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우리나라 만세! 땅끝 해돋이 만세! 우리의 처절한 삶 만세!
수묵처럼 스며가는 정
한 가슴 벅찬 마음 먼 발치로
백두에서 땅끝까지 손을 흔들게.
수천 년 지켜온 땅끝에 서서
수만 년 지켜갈 땅끝에 서서
꽃밭에 바람 일듯 손을 흔들게.
마음에 묻힌 생각
하늘에 바람에 띄워 보내게.
땅끝탑에 새겨진 손광은의 시를 음미하며 우리는 달마산 미황사를 향해 또 달렸다.
달마산 미황사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에 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