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어르신들의 조상숭배는 일종의 신앙?

시제 모시는 절차 간소화의 어려움을 보고

등록 2006.12.06 15:57수정 2006.12.0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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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으로 시월은 시제를 많이 모시는 계절이다. 시제(時祭)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시향(時享), 시사(時祀)와 같은 말로 "해마다 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산소에 가서 지내는 제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어린 시절 우리집 시젯날인 음력 10월 15일. 전날은 모든 식구가 우리집에 모여 떡을 만들고. 전을 부치고, 유과를 만드는 등 온갖 음식을 만드느라 북새통이나 다름 없었던 기억이 난다.

@BRI@1년에 한 번인 시제는 잔치나 다름이 없어 학교가 파하면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왔고, 시젯날이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되어지기를 학수고대했었다. 학교를 가지 않거나 일찍 파하고 책보따리를 X자로 둘러메고 시제를 모시는 산소로 달려가 도포 입은 어른들이 나누어 주시는 떡이랑 전이랑 얻어 먹기 위해서였다.

물론 어른들은 음식을 만들고, 만들어진 술과 음식을 지게에 지고 산소까지 가야 하는 등 고생이 이만 저만 아니었지만 어린 철부지들은 오랫만에 맛있는 음식을 얻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온정신이 시제 모시는 산소에 쏠려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추억이 많은 시제가 산업화 물결에 따라 급속도로 간소화되 가고 있음에도 금년 85세이신 우리 아버님은 7대 종손으로 시제를 비롯한 조상 모시는 일은 신앙이요, 종교라고 할 정도로 철저하신 분이다. 그런 관계로 지금까지 시제는 제사음식을 만들어 모든 산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모시는 것에 감히 누구도 개선을 건의하지 못했고 옛날 식으로 해 왔었다.

a 지금은 10여호 밖에 않되지만 한때는 제주양씨 22호, 약 150여명이 살았던 고향 마을로 산너머 멀리 순천만 S자 수로가 보인다.

지금은 10여호 밖에 않되지만 한때는 제주양씨 22호, 약 150여명이 살았던 고향 마을로 산너머 멀리 순천만 S자 수로가 보인다. ⓒ 양동정

그런데 작년에 7대 조부이시며 제주양씨 19세 손이신 한정공 할아버지의 선산 일부가 순천시의 도시계획에 의해 일부 수용되는 바람에 약간의 토지 보상금이 문중에 지급되게 되었고, 문중회의에서 보상금에 대한 용처를 상의한 끝에 제각을 지어 윗대 할아버지들의 시제를 묘소까지 가지 말고 제실에서 모시도록 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새로운 토지를 매입하여 제각을 짓고 하는 일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어 금년 시제를 새로 지은 제각에서 모시기로 했다고 한다.


a 제주양씨 19세손 한정공 양사증을 배향한 한정사가 완공되었다.

제주양씨 19세손 한정공 양사증을 배향한 한정사가 완공되었다. ⓒ 양동정

그런데 종손이신 아버님과 문중의 젊은 세대들 사이에 시제 모시는 방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홍역을 치렀다고 한다.

아버님은 5대조 이상 11분의 할아버지마다 각 개인별로 별도의 제사음식을 만들어 11번의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주장이셨고, 문중의 젊은 세대들은 제사음식을 한 벌만 준비하여 한 번에 모시자는 주장이었다고 한다.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팽팽하게 의견대립을 하다가는 급기야 종손이신 아버님의 시제 불참 선언이 나오게 되었고. 이에 문중에서 한발 양보하여 7대, 6대, 5대로 나누어 세벌의 제물을 준비하여 3번의 제사를 모시자는 안이 제시되었고. 아버님은 지역사회에서 양반 가문이라고 하는 몇몇 성씨 문중에 직접 전화를 하시어 현재 시제 지내는 방법 등을 확인하시고서야 마음을 푸셨다고 한다.

a 한정공할아버지의 7대 종손의 재배로 시제가 시작되고...

한정공할아버지의 7대 종손의 재배로 시제가 시작되고... ⓒ 양동정

이런 우여 곡절 끝에 12월 3일(일요일)로 날을 정하여 세벌의 제사음식을 준비하고,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후손들이 50여 분이나 모이고, 세번 제사상을 차리고 세번의 제사를 지내는 데 약 5시간이 소요 되었으니 아버님 고집대로 11번의 제사음식을 만들어 지내려 했다면 하루에 다 지내지도 못할 뻔했던 것이다.

a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후손들이 경건하게 무릎꿇고 앉은 가운데 축문이 낭송되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후손들이 경건하게 무릎꿇고 앉은 가운데 축문이 낭송되다. ⓒ 양동정

수백년을 내려오던 조상숭배의 한 가지 방법인 시제 모시는 방법의 개선과정을 지켜보며 조선시대 궁중에서 제례의식 절차를 가지고 국론이 분열되어 정파가 갈리고, 당파가 생겨서 국사를 그르친 일이 있었다는 가르침을 이해하고도 남을 만했다.

a 시제를 끝내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후손들 기념촬영

시제를 끝내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후손들 기념촬영 ⓒ 양동정

시제를 모시고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내년에는 "제삿상을 세번 차리는 것은 너무 힘들고 낭비가 많다"는 문중의 젊은 층의 주장과 "조상 모시는 일이 신앙이요 종교나 다름 없다"는 문중 어르신들 간의 논쟁이 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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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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