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딸렸어도 괜찮아, 사랑한다면"

[호주에서 열달15] 러브스토리로 살펴본 호주인들의 결혼관

등록 2006.12.09 16:34수정 2007.01.1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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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주에서 열 달 동안 지냈는데 그 중 대부분의 시간을 우프(WWOOF, Willing Worker On Oganic Farm, 일손이 필요한 현지 농가가 자신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는 제도) 생활을 했다. 총 11곳의 가정에 머물며 호스트 커플들의 러브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더불어 그들의 결혼관도 알 수 있었다. <기자주>

설사 지금은 지지고 볶고 싸우며 사는 부부일지라도 연애시절에는 닭살커플이었을 거다.

그들에게 연애시절 이야기를 물어보면 부끄러운 듯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도 금새 그 시절 즐거웠던 러브스토리를 술술 풀어놓기 마련이다. 거기에 추임새를 조금만 넣어주면 더 진한 러브스토리를 듣을 수 있고 또, 그 사람과 쉽게 친해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기 때문이다. 내가 매번 우프 호스트 커플에게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물어보는 것도 이런 이유였다.

[커플 하나] 40대 호스트와 20대 우퍼, 파트너 되다'

틸바에 살고 있는 나의 7번째 우프 호스트 앨리(가명·41세)가 자신의 파트너라며 케빈을 소개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케빈이 올랜도 볼룸처럼 잘생긴 이유도 있었지만, 나이가 28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앨리는 이런 '토이보이(toy boy; 한참 어린 연하남을 지칭하는 말)'를 어디서 만났을까 하고 나는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들을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사실, 케빈은 그녀의 우퍼 중 한 명이었다. 앨리는 이혼 후 아이들 둘을 데리고 혼자 살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우퍼들을 받아왔다.

2년 전 영국인 케빈도 이 곳에 우퍼로 오게 되었는데, 케빈이 얼굴도 잘 생겼고 체격도 좋아서 처음엔 앨리의 친구, 수지가 대쉬를 했단다. 하지만, 케빈은 원래부터 앨리에게 마음을 두고 있어서 수지의 대쉬를 거절했고 앨리 집에서 머무는 한 달 동안 둘은 연인사이로 발전했다. 나중에 이 사실은 안 수지는 크게 화가 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을 안 한단다.

여하튼 앨리는 케빈과 나이차가 많이 나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한 달이 지나고 케빈의 비자가 끝나 영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기가 오자, 케빈을 자신의 파트너로 신고해 비자를 연장시켜 주었다.

결혼은 왜 해? 파트너로 충분해

호주에서는 굳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외국인을 동거인, 즉 파트너로 신고하면 2년 기간의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물론 몇 가지의 서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들을 알고 있는 지인들이 증인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2년 후에는 외국인 파트너에게 시민권이 나온다. 그래서 만약 2년 후, 서로 헤어지더라도 파트너는 호주 시민으로 호주에서 살 수 있다.

유럽국가도 마찬가지지만 호주 부부들이 모두 법적인 결혼을 하고 살지는 않는다. 결혼하지 않고 사는 커플의 경우 남편·부인이라는 호칭 대신 '파트너'라고 하는데 법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불이익은 없으며 자식이 있어도 결혼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내가 만나 우프 호스트 커플 중 싱글인 1곳을 제외한 6커플은 결혼을 했고 4커플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앨리에게는 13살의 딸과 10살의 아들이 있는데, 한 주는 엄마와 한 주는 아빠와 살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너무 어린 새 아빠가 창피해 반발심을 가질 법도 한데, 앨리의 아이들은 케빈과 꽤 잘 지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케빈의 붕 뜬 곱슬머리를 놀리기도 했다.

특히 앨리는 아이들과 세대차이가 많이 나서 대화가 안 통할 때가 있는 반면, 케빈은 십대의 주요 관심사인 컴퓨터와 록밴드를 잘 알고 있어서 아이들과 늘 대화가 끊이지 않는 것이 보기 좋았다.

하루는 식탁에서 아이들이 케빈에게 신곡을 다운받아 달라며 음악의 용량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앨리는 도통 바이트가 무엇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물체의 크기를 재는 듯 양 손을 펼치며 나에게 물는 말. 도대체 1바이트는 얼 만큼 크냐고.

[커플 둘] "애 둘 딸린 이혼남이면 어때, 나랑 결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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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과 마릴린이 결혼식 날 찍은 사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모습이다. ⓒ 김하영

브로큰 힐 근처에서 양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나의 11번째 우프 호스트 톰(가명·60세)과 마릴린(가명·50세)의 러브스토리도 독특하다. 특히 내가 그곳에서 우퍼로 머무를 때가 그들의 24주년 결혼기념일이어서 결혼식 사진도 구경할 수 있었다.

톰이 마릴린을 승마클럽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첫번째 부인과 별거 중이었고 어린 딸 둘이 있었다고 한다. 톰의 전 부인은 지루한 시골생활에 적응을 못해 톰과 불화가 생겨 아예 집을 나간 모양이었다.

당시 마릴린도 전 남자친구와 결별하고 힘들었는데 톰이 친구로서 조언을 많이 해주며 위로해준 것을 계기로 많이 가까워졌고, 이후 2년 동안 톰의 집에서 동거를 한 뒤 결혼식을 올렸단다.

그래서 나는 톰에게 "어떻게 프로포즈를 했냐"고 물었는데, 알고보니 마릴린이 톰에게 프로포즈를 했단다. 톰은 이미 전 부인과 결혼해 두 딸이 있는데다가 나이도 열 살이나 많아서 선뜻 결혼 얘기를 꺼내지 못했는데, 아이들을 갖고 싶었던 마릴린은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나는 톰에게 지금이라도 프로포즈를 하라며 놀렸는데 아직도 부끄러운지 금세 자리를 뜨고 말았다.

한국에서 초혼인 딸이 애가 둘 딸린 이혼남과 결혼한다고 나서면 어떤 부모든지 크게 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호주의 부모들은 어떨까. 브로큰 힐에 살고 있는 마릴린의 친정어머니에게 딸의 결혼을 찬성했냐고 물었다. 구세대라서 조금은 보수적인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딸이 톰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아주 좋아하셨단다. 톰이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란다. "톰은 애가 둘이 있는 이혼남이었는데 괜찮았냐"고 묻자, "결혼은 두 사람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며 그런 건 별 문제가 안 된다"고 마릴린은 말했다.

호주와 한국, 거리만큼이나 의식도 달라

다시 마릴린에게 물었다. 딸이 자신처럼 애가 여럿 딸린 이혼남과 결혼한다고 하면 반대할 거냐고. 마릴린은 "이미 자신도 그런 결혼을 해서 말릴 명분도 없을 뿐더러 결혼은 부모와 하는 게 아니고 본인들의 행복을 위해 하는 것이니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반문했다. 같은 경우라면 나는 어떻게 하겠냐고. 나는 한국사회 내에서는 그런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물론 부모님도 크게 반대를 할 것이고, 한국은 호주와는 달라서 새엄마가 친엄마처럼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사회적인 인식이 강하고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지나친 의무감 때문에라도 그런 결혼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마릴린이 하는 말이, 과거 호주에도 그런 인식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결혼할 때만 해도 그런 주변의 시선이 있었고 특히 자신은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어서 톰의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데 힘이 들었는데 나중에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톰의 두 아이를 키우는 것도 더 수월해 졌단다.

호주와 한국은 멀리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의식에 큰 차이를 보였다. 특히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랐다. 같은 상황을 두고 이렇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고 한 쪽에서는 절대 불가한 상황이 다른 한 쪽에서는 아무 문제가 안 된다니.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 22부터 2006년 7월 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중 8개월 동안 우프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의 저작권은 김하영 기자에게 있으며 기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쓰일 수 없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프 호스트들의 이름은 그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덧붙이는 글 김하영 기자는 2005년 9월 22부터 2006년 7월 1일까지(총 9개월 반) 호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중 8개월 동안 우프를 경험하였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호주 문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의 저작권은 김하영 기자에게 있으며 기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다른 곳에서 쓰일 수 없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프 호스트들의 이름은 그들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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