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에 불타는 40대 두 사나이가 만나다

[태종 이방원 10] 이성계를 찾아간 정도전

등록 2006.12.11 08:27수정 2006.12.1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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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과 선비가 군영에서 만나 무슨 말을 했을까?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 이것은 단순히 개인과 개인과의 만남이 아니다. 군인과 선비의 만남이다. 그것도 사대부의 사랑방이 아닌 장수의 진중에서 만났다. 선비에게 칼이 필요해서 일까? 장수에게 붓이 필요해서 일까? 아무튼 찾아간 사람은 정도전이었다. 이 때 이성계의 나이 48세. 정도전 41세였다. 의욕에 불타는 40대 두 사나이가 만난 것이다.


정도전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성계를 찾아 갔을까? 단순한 문안 인사라면 여정이 너무나 멀다. 철령 넘어 이성계가 있는 함주는 동북면이다. 유랑하던 정도전이 찾아가기에는 대단한 각오를 필요로 하는 변방이다. 하지만 정도전은 험난한 여정을 뚫고 이성계를 찾아간 것이다.

이성계가 가지고 있는 칼의 노래를 듣고 싶어 찾아 갔을까? 아니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붓의 현란한 춤을 보여주고 싶어서 찾아 갔을까? 600여전 전 그가 이성계를 만나고 돌아갈 때 군영 앞 소나무에 새겼다는 글은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그 글은 기록에 남아 오늘에 전한다.

蒼茫歲月一株松
生長靑山幾萬重
好在他年相見否
人間俯仰便陳蹤

"아득한 세월 한 그루의 소나무
몇 만 겹의 청산에서 생장하였네
다른 해에 서로 볼 수 있을런지
인간은 살다 보면 문득 지난 일이네." <태조실록>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해에 서로 볼 수 있을런지"라는 대목이다. 즉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스스로 볼 수 있다고 다짐하고 있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찾아간 시기는 북풍한설 몰아치는 한겨울이었다. 곧 새해가 다가오는 시점이다. 오고간 이야기의 비밀이 누설된다면 다가오는 새해에 볼 수 없는 소나무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은 살다 보면 문득 지난 일이네." 마지막 부분은 희망에 차있다. 소나무를 다시 볼 수 있을까?라고 노심초사 걱정하던 것이 지나고 보면 기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결론짓고 있다. 이야기의 상대를 신뢰할 뿐만 아니라 오고간 이야기의 핵심 사항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뜻이다.

자신도 결연하게 의지를 밝혔다. 그냥 지나치는 말이 아니다. 살아있는 소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한자 한자 칼끝으로 새겼다. 이것은 결의하고는 차원이 다른 엄숙한 의식이다. 자신이 찾아간 장군의 군영 앞에 말없이 서있는 소나무를 다음 해에도 볼 수 있기를 기원하는 자기 맹세다.


"덕을 잃은 군주는 신하가 폐 할 수 있다"는 내용에 눈독을 들이다

@BRI@정도전은 영주에서 태어나 아버지 친구 이곡의 아들이며 유학자였던 이색의 문하에 들어갔다. 이 때 만난 동문이 정몽주, 이숭인이다. 아버지 정운경은 형부상서를 지낸 관리로서 <고려사>에 기록된 청백리 5인중의 하나에 들어간 청렴한 선비였다. 1360년 성균관시와 1362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충주목사록을 시작으로 관직에 입사했다.

전교주부를 거쳐 정7품 통례문지후로 봉직하고 있을 때 연거푸 부모상을 당해 낙향했다. 3년간 시묘살이 하면서 틈틈이 독서에 몰입했다. 이 때 빠져든 책이 정몽주가 전해준 <맹자>다. "덕을 잃은 군주는 신하가 폐 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당시로는 불온한 책이다. 정도전은 이 책을 탐독하고 책장이 헤지도록 정독했다.

탈상 후 개경에 돌아와 관리들의 인사행정을 담당하는 예의정랑을 거쳐 성균관 박사가 되어 왕에게 <대학>을 경연하는 태상학 박사가 되었다. 왕의 지근거리에서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정도전이 성균사예로 있을 때 생애 처음 시련이 찾아왔다. '친원이냐? 친명이냐?' 갈등의 기로에서 선택을 요구받은 것이다.

원나라 수중에 있던 동녕부를 정벌하여 무공을 세운 이인임이 공민왕이 죽자 문하시중을 꿰차고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우왕을 추대하여 정권을 잡자 돌아섰다. '배명친원' 정책이다. 공민왕 이후 대세로 굳어지던 친명정책이 뒤집힌 것이다. 국론이 분열되었다. 사대부와 권신들이 우왕좌왕했다.

기우는 해를 붙잡아야 한다는 친원파와 떠오르는 해를 맞이해야 한다는 친명파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나라의 안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파의 이익에 따라 이전투구가 벌어졌다. 천하를 다투는 대륙의 소용돌이가 큰 바람이 되어 고려반도에 불어 닥친 것이다. 지정학적 위치상 인접해 있는 강대국이 흔들리면 덩달아 널뛰어야 하는 약소국의 숙명이다.

기우는 해를 붙잡아야 하나? 떠오르는 해를 맞이해야 하나?

그 무렵 대륙은 요동치고 있었다. 세계의 정복자 원나라가 쇠퇴하고 천하를 손에 넣으려는 영웅호걸들이 대륙을 활거 했다. 호주(濠州) 안휘성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사찰을 떠돌던 주원장이 홍건적 장수 곽자홍의 부하가 되어 두각을 나타내더니만 남경을 점령하고 중원을 손아귀에 거머쥐었다.

대륙의 패권자 원나라는 명나라에게 북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주원장은 서둘지 않았다. 자신의 사부(師父) 주승(朱升)의 가르침대로 '천천히'를 따르고 있었다. 이른바 완칭왕(緩稱王) 이론이다. 스스로 완(完)이라 결론짓는 것을 경계하고 성(成)이라 선언하는 것을 서둘지 말라는 것이다. 만만디(慢慢的) 하고는 격이 다른 경세가들의 정략이다.

하지만 전장의 전세는 달랐다. 명나라는 주원장이 건국을 선포한지 겨우 6년째 되는 신생국이었지만 파죽지세였고 원나라는 지리멸렬했다. 세계 최대의 강대국 원나라가 고비사막을 넘어 패주하고 있었다. 대륙의 끄트머리 고려반도에서도 대륙의 판도를 가르는 그림이 보였다.

이인임도 그 그림을 판독했다. 하지만 정권을 잡자 돌아선 것이다. 이인임의 발목을 잡는 것은 수구세력이었다. 원나라와 사대관계를 유지하며 명맥을 이어오던 고려에서 권력과 토지와 부를 독점한 기득권 수구세력이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반발을 두려워한 이인임이 서산에 기우는 해를 바라보며 그 해 앞에 머리를 조아린 것이다.

한 나라의 외교는 나라의 운명을 가르고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 국가 장래를 담은 미래전략이 녹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인임이 선택한 외교정책은 미래가 없었다. 손에 들어온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자신의 권력과 자파 이익을 보호하는 것일 뿐 국가 장래는 안중에 없었다. 잡을 때는 비판하고 잡으면 야합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련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귀양길에 오르다

이러한 와중에 원나라에서 사신을 보낸다는 소식이 왔다. '고려와 원나라가 연합하여 명나라를 공격하자'는 카드를 가지고 조공국 고려를 찾는다는 것이다. 솔깃했다. 조정이 분열하고 혼란에 휩싸였다. '융숭히 대접하자'는 파와 '배척하자'는 파로 갈려 치열하게 논쟁이 벌어졌다.

'융숭히 대접하자'고 문하시중 이인임이 총대를 멨다. 이 때 정도전은 원나라 사신을 배척하자는 지론을 굽히지 않았다. 이인임에게 줄을 서지 않은 것이다. 대륙의 패권을 놓고 원나라와 명나라가 벌이는 각축전에서 정도전은 민감한 후각으로 대세를 읽은 것이다.

"선왕(先王) 공민왕께서 계책을 결정하여 명(明)나라를 섬겼으니, 지금 원(元)나라 사자를 맞이함은 옳지 못합니다. 더구나 원나라 사자가 우리에게 죄명(罪名)을 가하고자 하니, 그를 맞이할 수 있습니까?" <태조실록>

실력자 이인임에게 찍힌 정도전은 회진으로 귀양길에 올랐다. 이러한 정도전이 훗날 더욱 막강해진 명나라를 상대로 '요동정벌론'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조선 개국 후 이방원과 각을 세우며 '요동정벌론'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무슨 연유 때문이었을까?

이 무렵 정도전의 소회를 털어놓은 글이 그의 저서 삼봉집(三峰集)에 남아 오늘에 전한다.

사람의 마음속의 이치(理)는 바로 상제(上帝)의 명(命)한 바이나, 그 의리(義理)의 공변된 것은 혹은 물욕(物欲)의 가린 바가 되고, 그 선악(善惡)의 보응(報應)이 또한 전도된 것이 있어 선하여도 흑 화(禍)를 얻고 악(惡)하여도 혹 복(福)을 얻어, 선을 복주고 악을 벌주는 이치가 분명하지 못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착한 것을 좇고 악한 것을 버릴 줄 알지 못하고 오직 공리(功利)에 나가기만 힘쓸 뿐이니, 이는 사람이 하늘에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삼봉집 심문천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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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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