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 맞으면 음식은 다 맛있다

딸에게 음식 만드는 법 가르치며 잔잔한 행복을 느끼다

등록 2006.12.11 17:00수정 2006.12.1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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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하루는 만판 쉬었으면 좋겠다. 아무 일도 안 하고 그냥 놀았으면 좋겠다. 밥 때 되어도 밥상 챙기지도 말고 그냥 아무 거나 있는 대로 먹고 그저 하루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놀고 싶다. 하지만 ‘주부’라는 자리는 쉴 래야 쉴 수 없는 자리다.


일요일 한낮, 무얼로 식구들 입을 즐겁게 해줄까 궁리하며 주방으로 가는데 딸이 그런다.

“어머니, 점심 제가 할까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그래 니가 할래? 그럼... 뭐 하까?”
“김치찌게 맛있게 만드는 법 좀 가르쳐 주세요. 그거 제가 한번 해 볼게요.”

나는 애들이 유치원 다닐 때부터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곤 했다. 뜨거운 물은 위험하니까 국물이 없는 계란 후라이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발전해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제법 김치 볶음밥까지 할 줄 아는 수준이 되었다.


실수를 통해서 배운다

어떤 집들은 애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씩이나 되는데도 가스불이 위험하다며 일체 가스레인지 근처에 못 가게 하는 집도 있다. 그래서 그 애들은 간단한 라면조차도 끓이지 못한다고 한다. 엄마가 위험하다며 가스불을 못 만지게 해서 라면 하나도 끓여 본 적이 없단다.


그 집 엄마는 그 엄마 나름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거겠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위험하다고 못 하게 하면 늘 못하는 사람이 된다. 실수를 통해서 배우고 발전하는 법인데 못 한다고 안 하면 늘 못하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 위험하지 않은 거부터 시작하면 되는데 처음부터 위험하다고 막으면 할 수 있는 게 그만큼 적어지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다보면 마음까지 정리가 되지요.
설거지를 하다보면 마음까지 정리가 되지요.이승숙

우리 집 애들은 엄마가 없을 때는 간단하게 먹고 싶은 것을 해 먹을 수 있을 만큼 실력들이 있었는데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주방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애들은 학교 다니느라 주방에 들어올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애들은 음식 만드는 그 생생한 즐거움을 더 이상 즐기지를 못했다.

최근 수능 시험을 끝내고 딸아이는 오랜만에 실컷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고 있다. 이 시간들이 지나면 또 언제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딸애에게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저께 낮엔 같이 장을 보러 갔다. 멸치볶음 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로 했기 때문에 멸치를 사러 갔다. 멸치도 크기에 따라서 용도가 다 다르다. 그래서 적당한 굵기의 멸치 고르는 법부터 가르쳤다.

“멸치는 있지, 요 정도 크기 멸치가 제일 맛있어. 너무 잘아도 맛이 없어.”
“아, 그렇구나. 난 잘면 더 맛있는 건 줄 알았는데... 너무 잘아도 맛이 없는 거구나.”
“그럼. 뭐든지 다 그렇잖아. 너무 커도 안 좋고 또 작아도 안 좋은 거야. 적당한 게 제일 좋은 거지.”

우리 둘은 나란히 팔짱을 낀 채 장을 봤다.

관심과 애정이 요리의 기본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요리 강습이 시작되었다.

“멸치볶음은 말야, 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멸치를 볶다가 물엿과 진간장을 넣고 뒤적여 주는 거야. 마지막으로 통깨를 좀 뿌려주면 요리 끝이야.”
“그렇게만 하면 돼요?”
“그럼. 음식 만드는 거 별로 안 어려워. 음식은 간만 맞으면 다 맛있어. 간만 잘 맞추면 돼. 그리고 물엿을 너무 많이 넣으면 딱딱하게 되니까 적당하게 넣어야 돼.”
“그 적당하게가 어느 정돈데요? 어머니는 그냥 척하면 다 되지만 나는 안 되잖아요.”

“그게 그냥 되니? 다 세월이 말해주는 거지. 엄마도 처음에는 요리 전혀 못 했어. 김치 담으면 반도 못 먹고 버리는 게 일수였는데 뭐. 그런데 자꾸 하다 보면 요령이 생겨. 요리는 말이야 관심과 애정이야. 내가 만든 음식을 누가 맛있게 먹어주면 기분 참 좋잖아. 너도 그렇지? 그러니까 요리는 사랑인 거야.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사람을 생각하면서 만들면 맛있게 돼.”

멸치볶음이 잘 되었는지 맛을 보던 딸이 그랬다.

“어머니, 맛 좀 보세요. 이 정도면 되는 거예요?”
“음... 맛있네. 물엿 조금만 더 넣을까? 너 단 거 좋아하잖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깨 좀 넣어주고 뒤적여 줘라.”

가족이 다같이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가족이 다같이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이승숙

딸애가 만든 멸치볶음은 맛이 좋았다. 양념 간을 대부분 내가 맞춰줬지만 그래도 딸은 자기가 만든 게 맛있는지 또 먹어보고 또 먹어본다.

“어머니, 다른 거도 또 만들어 봐요. 두부조림 해볼까요?”
“그럴래? 두부 그거 찌개에 넣어 먹으나 조림해 먹으나 똑 같겠지? 그럼 찌개 두부 그거 꺼내서 좀 부쳐놔 볼래? 아까 멸치 볶음 했던 그 후라이팬 양념 남은 거에 그대로 조리면 되겠다.”

작은 것에도 행복은 스며 있다

요즘 딸애는 요리에 재미를 붙였는지 혼자서 부엌일을 다 한다. 설거지도 깔끔하게 다 해놓고 반찬도 가르쳐만 주면 다 해낸다.

“당신, 요즘 딸내미 덕분에 살판났네.”

딸이 차려주는 밥을 먹으면서 남편이 괜히 그런다.

“그럼 살판났지. 당신도 좋잖아. 딸이 해주는 밥 먹으니까 당신도 좋지 뭘 그래?”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일인지 우리는 지난 열 달간 체험했다. 자식이 나이를 먹으면 집을 떠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같이 살고 싶었다. 그런데 공부 때문에 딸을 떠나보내고 나니 집이 매끄럽게 잘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딸 밑으로 아들아이가 하나 더 있지만 아들은 사내놈 꼭지를 썼다고 그러는지 자분자분하게 말하고 그러질 않았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면 꾸벅 인사하고는 제 방에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잔잔한 이야기를 나눌 틈이 없었다.

딸이 돌아오자 집에 화기가 도는 것 같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는 밥상은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맛있다. 비로소 집이 집다운 거 같다. 가족이 다함께 같이 한다는 그것이 바로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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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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