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왜 역사공정에 나설 수밖에 없나?

[주장]중원의 주인은 누구든 역사공정에 나섰다... '국민통합' 위한 과제

등록 2006.12.14 14:41수정 2006.12.1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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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동북공정 같은 역사공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일한국과의 영토분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통념이다.

중국의 의도 속에 그런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이 진정으로 역사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중국의 행위를 보다 전체적인 각도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사공정이 중국 한족(漢族)의 영토적 야심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기존의 인식에 매몰되면, 향후 중국이 전개할 보다 새로운 차원의 행보에 적절히 대응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중국의 역사공정에는 한국인들이 대부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다양한 측면들이 숨어 있다. 이 글에서는 그중 한 가지 문제만을 다루고자 한다. 그것은 역사공정이 한족의 특성이 아니라 중국 자체의 지리적 특성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어느 종족이든지 간에 중원(中原)을 지배하는 민족은 이웃나라와 상대로 한 역사분쟁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중국의 역사공정을 비판하는 한민족이 중원을 지배한다 해도 동일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한국이 보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중국의 역사분쟁을 바라보아야 함을 의미한다.

중국이 왜 역사공정에 나설 수밖에 없는가

@BRI@그럼, 역사공정이 한족이 아닌 중원 자체의 지리적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 점을 논의하려면, 중국이 왜 역사공정에 나설 수밖에 없는가를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중국이 역사공정을 하는 이유를 중국인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크게 2가지의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한 가지는 그것이 '중국인의 자아해석'이라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그것이 '국민통합(소수민족 통합)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서는 논의의 편의를 위해 후자에 국한하여 설명하기로 한다.


중국은 영토가 넓고 다양한 소수민족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통합'이라는 과제가 언제나 절실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족을 포함하여 56개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나라인지라, 중국에서는 국민통합이 그 어떤 과제보다도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필요성 때문에 중국은 역사공정에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국제분쟁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국민통합이라는 내부적인 과제가 중국을 역사공정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한족뿐만 아니라 어느 소수민족이 중원을 지배하든 간에, 국민통합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에 중국의 역사공정은 항상 '현재진행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적 실례를 살펴보면, 한족뿐만 아니라 비(非)한족 출신의 왕조도 국민통합에 심혈을 기울였고, 또 그것을 위해 역사공정을 벌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이 이미 고대 주나라(기원전 1066∼256년) 때부터 국민통합과 역사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여기서는 5호 16국 시대(기원후 4, 5세기)와 청나라(1644∼1912년)의 사례만 제시하기로 한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흥미로운 점은 비한족 왕조들이 한족과 호족(胡族, 비한족)의 통합에 상당한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이민족이 중국 내부에 대거 침입한 5호 16국 시대에 북(北)중국에서는 호족과 한족이 상호 공존하였다. 상호 대립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종족들이 한데 모였기 때문에 그 충돌의 위험이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최초의 호족 군주인 남(南)흉노족 계열의 유연(劉淵, ?∼310년)은 호한문제(호족과 한족의 대립 문제) 해결을 주요 국정 지표로 삼았다. 그는 자기 종족이 흉노족이고 또 흉노족이 이전에 한족으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족의 한나라(기원전 202∼기원후 220년)를 연상시키는 한(漢)이라는 국호를 채택하였다.

그리고 그는 한나라 방식의 관제를 채용하였다. 또 그는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劉備, 161∼223년)의 촉나라를 계승하겠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한족을 위무(慰撫) 즉 한족의 마음을 달래는 동시에, 전 중국을 통일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전진(前秦, 350∼394년)의 3대 군주인 부견(苻堅, 338∼385)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고도의 국민통합정책을 선보였다. 부견의 종족 역시 한족의 차별과 멸시를 받던 이민족이었다. 그런데 그는 다른 종족들에게 수도 부근의 토지를 내주는 과감한 사민정책(徙民政策)을 실시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종족의 생활 단위인 부락(部落)을 해산하는 용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 같은 국민통합 노력에 힘입어 부견은 화북(북중국) 전역을 통일할 수 있게 되었다.

비한족의 국민통합 노력은 비단 정치 분야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이것은 역사공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1644년에 산해관(山海關)을 넘어 중원의 패자(覇者)로 등극한 청나라 역시 만주족(여진족의 후예) 출신의 왕조다. 만주족 역시 한족으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받던 종족이었다.

그런데 만주족이 중원을 장악하자마자, 이 종족 역시 이전의 중원 지배자들과 똑같은 행동 패턴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중국처럼 적극적인 국민통합에 나서는 한편 역사공정을 실시한 것이다.

중원의 새 주인이 된 만주족은 한족의 역사를 지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족의 역사를 긍정하면서, 한족과 만주족을 아우른 새로운 '국민 역사'를 창출하려 하였다. 이는 건륭제(乾隆帝, 1711∼1799년)가 중국의 기존 정사(正史)를 인정하고, 나아가 한족의 역사인 <명사>, <구오대사>, <구당서>를 중국 정사에 포함해 24사(史)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만주족은 그러한 방법을 통해 '만주족과 한족은 하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오늘날 중국 정부가 '만주는 본래부터 중국과 하나'라는 메시지를 담은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위와 같이 중국의 역사공정은 한족의 전유물이 아니라, 한족이든 비한족이든 간에 중원 지배자가 일반적으로 취하는 행동패턴임을 알 수 있다.

역사공정, 한국 보다 장기적 전략에서 대응해야

그럼, 중원의 패자라면 누구나 다 동일한 행동패턴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 중의 한 가지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원의 지리적 특성에 있다. 사방의 이웃나라들에게 둘러싸인 광대한 중원 평야를 지키자면, 중국은 내부의 소수민족을 단속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중원의 지배자로 떠오른 소수민족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수민족이 중국을 지배하는 경우에도, 한족을 적극적으로 통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종족을 하나로 통합하자면, 그 여러 종족이 하나의 역사가 있다는 이미지를 창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중원을 지배하는 종족은 누구나 다 국민통합과 역사공정이라는 화두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한족은 국민통합을 위해 오래전부터 그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역사공정도 그 한 가지 방법이다. 이처럼 중원에는 오랫동안 축적된 국민통합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한족이든 비한족이든 간에 중원의 새로운 주인들은 과거로부터 축적된 노하우를 활용하여 국민통합과 역사공정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점들을 볼 때에, 중국의 동북공정을 한민족 대 한족의 관계로 파악하는 한국 내 일부의 인식은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영토분쟁(간도문제) 차원에서만 파악하는 태도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역사공정이 한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원 지배자 일반의 문제라는 점, 그리고 중국이 비단 간도만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크게는 국민통합을 위해 역사공정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국민적 차원에서 인식하지 않으면, 한국은 중국의 역사공정에 대해 적절한 대비책을 수립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의 시각이 달라져야 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응이 보다 장기적 전략 속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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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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