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중국 외교관 원세개, 결국 화를 자초했다

등록 2006.12.15 14:38수정 2006.12.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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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세개의 초상화.

원세개의 초상화. ⓒ 저작권 만료

지난 12일 밤 한국 경찰의 음주 측정을 거부하면서 무려 8시간 반이나 이화여대 부근에서 경찰과 대치한 중국 외교관의 ‘무례한 행동’이 빈축을 사고 있다. 한국인들 앞에서 스스로 ‘대국인’이라고 인식하는 중국 외교관들의 속마음을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외교관들은 이 같은 작은 갈등이 계속 누적되면 결국 한중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주한 중국 외교관들의 ‘선배’인 19세기말 원세개(袁世凱, 위안스카이)의 사례는 두고두고 본보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이 한반도를 상대로 공식적인 내정간섭을 처음 실행한 1882~1894년 기간에 북양대신 이홍장(리홍장)의 명을 받아 조선 현지에서 중국 정부를 대표한 인물은 총 2명이었다. 진수당과 원세개가 바로 그들이다. 이 중에서 원세개는 갑신정변 이후 경질된 진수당의 뒤를 이어 조선에 부임한 ‘악명 높은’ 외교관이었다.

나이 20대에 ‘백그라운드’ 이홍장 덕분에 조선 정국을 장악한 원세개는 그야말로 안하무인 격의 인물이었다. 그가 자행한 극도의 내정간섭 때문에 조선인들의 반청감정이 한층 더 악화되었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리고 그는 1886년 제2차 조선-러시아 밀약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폐위하려는 음모까지 꾸민 바 있다.

원세개가 얼마나 무례한 인물이었는가는 그가 고종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는가 하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1885~1894년 기간 조선에서 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통상 책임자)를 지낸 그는 어디까지나 고종 임금의 아랫사람이었다. 당시 조선 군주는 청나라 북양대신과 동급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북양대신보다 아래였던 원세개는 당연히 조선 군주의 아랫사람이었다.

당시 조선-청나라 관계에서 원세개가 고종을 알현할 때에는 삼국궁(三鞠躬) 예법을 취할 것이 기대되었다. 삼국궁이란 허리를 3번 굽히는 인사법을 말한다. 중국 황제에게는 삼궤구배(三跪九拜)를 하였지만, 조선 국왕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연장자에 대한 인사법’인 삼국궁을 하도록 기대되었다. 참고로, 삼궤구배란 3번 무릎을 꿇은 다음에 9번 절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원세개는 조선 군주에게 그 삼국궁마저 하지 않았다. 그는 고종에게 삼읍례(三揖禮)만 하는 데에 그쳤다. 삼읍례란 두 손을 맞잡은 상태에서 허리를 구부렸다가 펴면서 두 손을 내리는 동작을 3번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예법은 동등한 사람에게나 하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공식적인 칙사도 아닌 하급자 원세개는 청나라의 힘만 믿고 조선 군주 앞에서 극도의 무례를 저질렀던 것이다. 기본적인 예법도 지키지 않았으니, 그 외의 다른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조선에 주재하던 각국 외교관들이 원세개의 무례를 지적하였지만, 원세개는 그에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외국 외교관들이 이 문제를 지적한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보다 지위가 낮은 원세개가 조선 군주를 평등하게 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원세개보다 낮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세개는 그 같은 국제적 비난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홍장의 문집인 <이문충공전집>에 따르면, 그는 “우리는 조선의 종주국”이라면서 삼읍례를 계속 고집하였다.

이처럼 원세개는 자국이 대국임을 내세워 조선 군주에게 무례를 범하고 나아가 조선 내정을 함부로 휘둘렀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중국에게 손해로 돌아가고 말았다. 조선 내에서 반청감정이 확산되고, 청나라에 대한 국제적 견제가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청나라가 조선에 대해 내정간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청나라의 힘 때문이 아니었다. 이것은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영국·미국·일본 등의 열강은 청나라가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해야만 러시아가 조선을 넘볼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청나라를 밀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세개의 무례한 행동과 청나라의 지나친 내정간섭은 결국 국제사회로 하여금 청나라에 대해 등을 돌리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1894년 청일전쟁 때에 서양열강이 외형상으로는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사실상으로는 일본을 지지했던 것은 원세개와 청나라의 ‘도를 넘는 행동’에 대한 불만 때문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물론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원세개의 과도한 무례로 인한 국제여론의 악화도 중요한 원인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점은 외교관 개인의 행위가 자국의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외교관은 외국 현지에서 자기 나라를 대표하기 때문에, 외교관의 실수는 자국의 실수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한국 경찰과 한국 국민에게 무례를 범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사소한 오만과 실수가 중국 전체의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반미감정·반일감정이 확산되고 있다고 하여, 그것이 곧 친중감정으로 직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중국도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한국에서도 그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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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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