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사막에서 야영하기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 21] 내몽고 고비사막 바단지린에서의 하룻밤

등록 2006.12.19 20:50수정 2006.12.20 15:05
0
원고료로 응원
다시 2호차를 만나다

아... 한 20여 Km 달린 지점에서 정차 중인 2호차가 보인다. 그러나 우릴 발견하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고 다시 주행한다. 제발 만나게만 해달라던 그 간절함이 같은 질량의 분노로 변하는 순간.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가시는 겁니까! 그대로 가면 아라싼여우치 나온답니까!.” 무전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또 흥분했다.

사막이어서일까.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낼 장소라서? 내 몸이 아파서일까. 통증만큼이나 세포가 곤두서서? 그 때문에 사막에서 일행의 안위나 동태를 무시한 행동으로 확대해석한 것일까?

자포님이 다가와 사과를 한다. 대화에 빠져 그만 뒷차를 못 봤다고. 그런데 얼굴을 펼 수가 없다. 어제의 소심에 오늘의 다혈질까지. 이제 들킬 건 다 들켰다.

a 고비 사막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백구와 파라곤

고비 사막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백구와 파라곤 ⓒ 오창학


오후 6시 40분 아라싼여우치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애초 아라싼여우치를 지나 야영지를 찾을 생각이었으나 그곳까지 도착하면 해가 질 것 같아 그냥 해가 있을 때 야영지를 찾기로 했다. 사막에 바퀴를 넣는 순간 아까의 일들은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 되었다. 만났으니 그만이고 이 모진 곳에 같이 있으니 그 아니 든든한가.

타마리스크의 가시 줄기들이 하체를 긁어대는 소리가 요란하다. 보기에는 평지이건만 굴곡이 심한 지면은 차체를 요동하게 한다. 다행히 지표면이 단단한 편이어서 바퀴가 빠지는 상황은 아니다.


이건 꿈이다. 드디어 내가 사막에 왔다. 한반도에서 백구와 함께 길을 나선 지 보름. 기어이 고비 사막에 함께 섰다.

약 15Km쯤 지나 지대가 평평한 곳에 둥지를 튼다. 위도 38도 58분 55초, 경도 102도 16분 32초. 묘한 경험이다. 이렇다 할 바위 한 줄기, 나무 한 그루가 없다. 이 문명의 이기가 아니었다면 수치로나마 내 머문 자리를 남길 수 있었으랴.


a 사막에서의 야영 준비. 공동실로 사용할 스크린 타프가 설치 되고 대강의 진용이 짜진다.  그 시각 사내들이 설영으로 분주한 사이 장부를 정리하는 아내

사막에서의 야영 준비. 공동실로 사용할 스크린 타프가 설치 되고 대강의 진용이 짜진다. 그 시각 사내들이 설영으로 분주한 사이 장부를 정리하는 아내 ⓒ 오창학


지금은 잔잔하지만 언제 불지 모르는 사막의 모래바람에 대비해 차 두 대를 기역자 모양으로 붙이고 그 안에 대형 텐트(스크린 타프)를 친다. 철봉씨까지 포함해 일행 일곱이 모두 들어앉을 수 있는 유용한 공간이다.

1호차 백구와 2호차 파라곤의 지붕엔 루프텐트가 달려 있다. 잠금장치를 열고 루프텐트 뚜껑을 들어 올리면 완성되는 텐트. 바닥에 패드가 깔려 있어 등이 편안하다. 지붕 위에 설치되는 까닭에 야생동물이나 파충류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지면의 냉열기와 습기로부터 보호해 최적의 야외 잠자리를 제공한다.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카펜션'이다.

그런데 2인용인지라 나와 아내, 에릭님과 교수님이 루프텐트를 사용하고 나리님과 자포님은 스크린 타프에서 야전침대를 펴고 자기로 했다. 철봉씨는 자신의 1인용 텐트를 폈다.

a 사막의 화장실 설치. 사막에서 지평선 끝까지 가 일을 보지 않으려면 꼭 필요한 장비다. 앞에 삽이 꽂혀 있다면 내부에 사람이 없다는 뜻. 삽이 없다면 누군가 안에서 일 본 자리를 묻고 있다는 신호

사막의 화장실 설치. 사막에서 지평선 끝까지 가 일을 보지 않으려면 꼭 필요한 장비다. 앞에 삽이 꽂혀 있다면 내부에 사람이 없다는 뜻. 삽이 없다면 누군가 안에서 일 본 자리를 묻고 있다는 신호 ⓒ 오창학


화장실을 설치한다. 여기는 사막이고 앉으면 그 자리가 사막일 터에 무슨 웬 화장실? 무리 중 성별이 다른 사람이 있다면 얘기는 다르다. 아니 설사 동성끼리의 결집체라 해도 큰일 보는 모습을 빤히 노출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시선을 피하려 지평선 끝까지 갈 수는 없잖은가(여기는 일망무제의 사막이다).

이런 때 유용한 설비가 이 화장실이다. 화장실 설치 1단계. 삽으로 땅을 판다. 이 구덩이는 1회 사용 때마다 조금씩 덮일 것이며 내일 이 자리를 걷을 땐 평지가 되어 있을 것이다.

화장실 설치 2단계. 화장실을 가방에서 꺼내 던진다. 그러면 알아서 펴진다. 3단계. 팩을 박아 고정한다. 4단계. 화장실 앞에 삽을 박아 표지를 세운다. 화장실 사용 시 가지고 들어가 일 본 자리를 묻을 때 쓴다. 나올 때 가지고 나와 화장실 앞에 다시 박아 세운다.

즉 화장실 앞에 삽이 박혀 있다면 내부에 사용자가 없다는 뜻이고 삽이 없다면 누군가가 안에 있다는 말이다. 이때는 화장실 주변 범접 금지. 원래는 해변에서 탈의 및 사워 용도로 사용하는 공간이지만 이렇게 사용하니 실용만점이다.

a 고비 사막의 석양.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해는 처음 본다. 일망무제의 사막 바다

고비 사막의 석양.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해는 처음 본다. 일망무제의 사막 바다 ⓒ 오창학


오후 8시 30분. 해가 지고 있다. 묘한 일이다. 왜 젊은 사람이 일출보다 일몰의 정경에 더 끌리는지. 하루를 끝냈다는 안도감, 휴식에 대한 기대. 그러면서도 저 해는 내일 또 뜨리라는 희망. 뭐 이런 것들이 복합된 감흥 때문일게다.

지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처음 본다. 처음이 아닌가? 프랑스의 벌판에서 보았던가? 모르겠다. 지평선 너머 일몰에 대한 선험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내 사유 공간에 저 광경이 처음 각인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오늘은 참 별 것 아닌 많은 것들에 감동한다. 파삭파삭하게 건조한 흙, 풀을 가장한 가시 나무, 땅 빛과 똑 같은 보호색의 도마뱀, 매일처럼 지는 해, 푸석푸석한 바람. 그리고 그곳에 선 나.

a 뭐니뭐니 해도 먹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아,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이 풍성한 사막의 저녁만찬을 여행 내내 그리워하게 될 줄을.....

뭐니뭐니 해도 먹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아,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이 풍성한 사막의 저녁만찬을 여행 내내 그리워하게 될 줄을..... ⓒ 오창학


에릭님이 손수 요리를 했다. 우웨이에서 장 본 푸성귀와 육류로 그럴싸한 저녁 식탁이 꾸려지고 한국에서 수송해 온 와인잔까지 등장한다.

부른 배로 텐트 밖에 섰는데 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의자에 앉아 넋을 빼고 쳐다보다 야전침대를 깔고 아예 누워서 감상한다. 지면의 서에서 동까지가 모두 하늘이고 그만큼의 공간에 빼곡히 별이 열렸는데 손을 뻗기라도 할 양이면 우수수 털어낼까 두렵다.

천황봉 일출을 바라고 지리산 세석평전을 오르다가 별에 머리를 찧을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숙이던 기억 이래 얼마만의 일인가. 이 기억을 오래 남기고 싶어 사진기를 집어 들었는데 감도 1600으로도 별이 화면에 잡히지 않는다. 그저 이 장면을 가슴에 담을 수밖에.

a 야영의 아침

야영의 아침 ⓒ 오창학


별구경에 지쳐 더부룩한 속을 안고 루프텐트에 들다. 사막 바람에 펄럭이는 텐트 천막 소리를 배경으로 잠이 드는가 싶더니 어느 새 아침이다. 사막의 밤을 누가 춥다 하였는가? 잔뜩 긴장해 동계용 침낭까지 챙겼는데 한 쪽 다리만 침낭 속에 넣은 채 반바지차림으로 잤다. 현재 고도가 1390m임을 감안하면 여름철 고비사막의 일교차는 견딜만 하다.

애석하게도 일출은 놓쳤다. 내가 늦은 것인지 해가 얼렁뚱당 솟았는지는 알지 못하겠다.

江風索我吟 강바람 날더러 시 지으라 하고
山月喚我吟 산 달은 날 불러 술 마시게 하는도다
醉倒落花前 취하여 진 꽃 위로 거꾸러지니
天地爲衾枕 천지가 바로 이부자리로구나


남송4대가 양만리(楊萬理)의 시가 딱 떠오르는 장면이다. 나리님과 자포님이 텐트를 벗어나 사막 귀퉁이에 야전침대를 펴고 나란히 노숙했다.

a 멀쩡한 텐트를 놔두고 자포님과 나리님은 노숙을 감행했다. 전갈이 오가는데.....자포님은 완벽한 노숙자의 용모다

멀쩡한 텐트를 놔두고 자포님과 나리님은 노숙을 감행했다. 전갈이 오가는데.....자포님은 완벽한 노숙자의 용모다 ⓒ 오창학


'취하여 진 꽃 위로 거꾸러지니 천지가 바로 이부자리로다...'

아름다운 말이다. 내가 운영진으로 참여하는 '오프로드 캠핑(http://cafe.daum.net/offroadcamping)'의 깃발 문구이기도 한데 나리님과 자포님의 자태가 딱 그 모습이다.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이불 삼은 배경 뒤로 오토바이 한 대가 보인다.

몽골식 양탄자 안장 장식이 얹힌 현지인의 오토바이. 설마 이런 곳에 인적이 있으랴 싶은 곳에 둥지를 틀었건만 이렇게 간단하게 손님이 찾아들었다. 하하. 우리는 이 많은 짐을 꾸려 이토록 요란하게 방문해야 했던 곳을 이 양반은 양떼 풀어놓을 곳을 찾으러 달랑 오토바이 한 대로 움직였다. 지평선 저 쪽에 마을이 있단다.

당신이 있어 사막이 아름다워

a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 같이 있기 때문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 같이 있기 때문이다 ⓒ 오창학


아내는 느지막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참 지칠 줄 모르고 즐겁다. 아내가 빈 맥주캔을 내 귀에 대어준다. 소라에선 바다소리가 난다지만 맥주캔은 왜?

"사막 소리가 나."
"사막 소리?"

정말이다. 말로 형언키는 어렵지만 모래 쓸리는 소리, 그 모래 위를 지나는 바람 소리, 그 바람 위에 내리는 햇살 소리가 어우러지는 느낌이 분명 사막의 소리다.

"사막이 왜 아름다운지 아나?"

아내에게 물었다.

"물이 있어서?"
"당신이 있어서..."

아내가 까르르 웃는다. 나는 진담인데... 이 황량한 벌판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당신과 함께 하기 때문인데, 무엇을 하든 둘이어서 행복한 건데.

'힘 내라 파라곤!'

a 가자 아라싼여우치로

가자 아라싼여우치로 ⓒ 오창학


아쉬움은 남지만 언제나 그랬듯 이곳도 우리의 터는 아니기에 짐을 꾸렸다. 아라싼여우치를 향한다. 살포시 빠지는 바퀴 때문에 '4H' 상태로 움직였다. 아라싼여우치를 60여 Km 남겨 놓고 다시 도로에 올랐다.

4륜을 풀고 한껏 가속하려는데 2호차에서 무전이 온다.

"1호차 잠깐만요!"

a 아, 제발......과열로 멈춰버린 2호차 파라곤. 완치되었다 믿었던 한국에서의 증상이 다시 도졌다

아, 제발......과열로 멈춰버린 2호차 파라곤. 완치되었다 믿었던 한국에서의 증상이 다시 도졌다 ⓒ 오창학


아, 이를 어쩌란 말인가. 2호차가 엔진과열로 정차하고 있다. 과열이라니? 오늘 겨우 얼마를 움직였다고. 불안하다. 한국에서 사자평 오를 때 이런 현상을 겪고 나서 엔진 헤드를 비롯해 관계부속을 다 갈았는데 다시 그 증상이 온 것은 아닐까?

내 방정맞은 생각이 틀렸기를 바라며 2호차 파라곤에 다가갔는데 울컥울컥 냉각수를 토해내는 모습이 영락없이 그때의 증상이다. 도대체 이런 일이 하필이면 사막 중간에서...

아, 아라싼여우치까지만 가면 정비소가 있을까? 정비소가 있다면 이 증상을 잡을 수 있을까? 당장 사막을 빠져나갈 일도 걱정이지만 아직 2/3도 더 남은 이후의 여정이 두렵다.

'힘 내라, 파라곤! 우린 할 수 있을 거야. 해 내야 돼.' 녀석의 몸체를 어루만졌다. 우린 여길 나갈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2006년 7.14-8.21까지 중국 내 실크로드 구간 14,000Km를 국산 사륜구동 2대를 가져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글은 자동차여행 포털사이트 ‘알브이라이프(http://www.rvlife.co.kr)’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2006년 7.14-8.21까지 중국 내 실크로드 구간 14,000Km를 국산 사륜구동 2대를 가져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글은 자동차여행 포털사이트 ‘알브이라이프(http://www.rvlife.co.kr)’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이 기자의 최신기사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횡단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