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만난 익숙한 상표들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15] 모스크바 4

등록 2006.12.27 10:36수정 2006.12.2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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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 본 익숙한 상표들

a LG 다리에서 보이는 삼성 간판, 옆에는 현대차들

LG 다리에서 보이는 삼성 간판, 옆에는 현대차들 ⓒ 강병구

이미 지나 온 러시아 도시들에서 한국과 관련 된 것들을 많이 봤지만, 그것들을 모스크바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은 특별한 느낌이었다.


끄레믈 인근의 모스크바 강을 건너는 다리 난간에는 LG 깃발들이 잔뜩 펄럭이고 있다. 그리고 그 다리 앞으로는 커다란 삼성 광고판이 보인다. 양 옆으로는 현대 투싼과 갯츠가 달리고 있다. 이런 모습을 서울이 아니라 러시아 그것도 수도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보게 된 것이다.

@BRI@ 모스크바 사람들이 현대, 삼성, LG를 통해 한국을 생각하는지, 또 이런 상표들이 얼마나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지는 잠시 들리는 여행자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더불어 난 연말이면 한 번씩 보도되는 해외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의 브랜드 인지도가 무슨 국위선양인양 떠드는 뉴스를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삼성, 현대를 통해 외국에 한국을 알린다는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하며 살았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모스크바 중심가에 펄럭이는 LG 깃발과 삼성 간판, 그리고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현대 자동차들이 도로에 즐비한 것에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이런 생각이 겉과 속이 다른 것인지, 실제 경험을 통해 알지 못하던 걸 깨달아서 그런 것인지.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했지만, 그래도 느낌이니 어쩌겠는가.

싸구려 민족주의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머릿속으론 아니라고 생각해도 입으론 실실 웃음이 나는 상황이랄까? 이것이 이국땅에서 본 익숙한 상표들에 대한 내 감상이었다.

모스크바는 블루오션?


a 모스크바의 명동거리에 해당한다는 뜨볘르스까야 거리 중심가의 삼성 전시관

모스크바의 명동거리에 해당한다는 뜨볘르스까야 거리 중심가의 삼성 전시관 ⓒ 강병구

익숙한 저 상호들이, 멀리까지 관광 온 내게 뿌듯함을 주려고 비싼 돈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 게다. 돈이 된다면 지옥까지라도 찾아가 거래를 해야 한다는 투철한 자본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들이 불편하고 사업하기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 모스크바에 앞 다투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익숙한 상호는 한국 것만이 아니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훨씬 즐비한 세계의 수많은 브랜드들이 서로 경쟁하듯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좀 규모가 크거나 눈에 잘 띠는 위치에 있는 건물이라면 어김없이 간판들이 즐비했다. 그런 간판들 사이에 한국 기업의 간판이 있는 것이었다. 독일, 일본 미국의 수많은 차들이 잘 닦인 길을 씽씽 달리고 있었고, 그 중 한국 차는 소수였다.


지난 여행기에도 소개했지만, 지금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는 고유가와 원자재값 상승으로 흘러들어오는 외환에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자고나면 환율이 바뀔 정도로 외환 가치는 떨어지기에 정신이 없고, 더불어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는 높아만 갔다.

비록 러시아 안에서도 지리 환경적 차이가 있었겠지만, 여행 중에도 외환 가격이 계속 하락해 나중엔 가져간 유로를 루블로 환전하는 것이 너무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러시아를 나갈 때 달러는 한 달 사이에 8루블 이상 떨어졌다. 그만큼 루블로 임금을 받는 러시아 인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더불어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공산품이 부족한 나라이다. 미국과 대등한 수준의 무기와 로켓은 만들어도 자동차 기술은 형편없는 곳이 러시아다. 여기에 옷, 식품 가공 등의 경공업 기술은 극단적으로 떨어져서, 질이 떨어지는 중국, 터키 제 옷들도 고급품 못지않게 가격이 높은 곳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러시아를 여행하는 내내 특히 수도인 모스크바에서는 더욱 더 한국 공산품들을 가져다 파는 것이 꽤 괜찮을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에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외국인에 대한 불편한 시각이 팽배하고, 러시아 특유의 일처리 방식에 마피아까지 상대해야하는 점을 생각하면 쉽사리 러시아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대답을 주었다. 이전에 소개한 몇 몇 사례 외에도 수많은 투자 실패 사례가 즐비하다고 하니 불쑥 들었던 생각이 푹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모스크바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새로운 접근법을 생각해보았다. 현지의 러시아인조차도 불편해하는 러시아 서비스는, 구매력이 높아가는 러시아 중산층들의 불만의 대상이라 한다. 물건을 사는 것이 꽤 불편하고 종종 돈을 주고 물건을 사면서도 기분 나쁜 느낌을 받는 것이 외국인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친절한 서비스와 편안한 유통 구조 같은 것을 무기로 공략한다면, 러시아인들에게도 충분히 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저임금 위주로 접근한 공업형 투자가 아니라, 현지인들과 불편한 일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실제 롯데가 이미 이런 생각으로 모스크바에 백화점을 짓고 있었다.

a 2006년 12월 현재, 모스크바 뉴 아르바트 거리에 건축 중인 롯데백화점

2006년 12월 현재, 모스크바 뉴 아르바트 거리에 건축 중인 롯데백화점 ⓒ 강병구

역시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맞는 걸까? 나는 독특한 나의 아이디어라 생각했는데, 이미 그것을 실행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여하튼 이런 접근을 통해 정상적으로 안착하기만한다면 경쟁할 상대가 없는 곳이 모스크바이자 러시아라는 최 선생님의 말을 듣고 보니, 블루오션이라는 경제 유행어가 딱 들어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스크바의 한인들

우리의 IMF시기와, 비슷한 시기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대표되는 러시아 경제 위기 기간을 거치며, 모스크바 내 한인의 수는 급격히 줄었었다고 했다. 그러던 것이 석유가 상승으로 러시아 경제가 활기를 되찾자, 여러 우리나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모스크바에 지사들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고, 특히나 최근엔 롯데의 백화점 건설로 교민 수가 크게 늘고 있다고 했다. 유학생, 주재원 등을 포함해서 대략 5000~6000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어서 교민사회가 형성되고 있는 수준이라고 모스크바 교민들을 궁금해 하는 나에게 최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다.

이전의 도시들에선 주로 중국인 가게나, 고려인들이 운영하는 식료품점에서 한두 가지 가져다 놓은 한국 물건들을 팔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모스크바에서는 한인들만을 상대하는 한국 물건 가게가 운영되고 있었다. 라면, 김 같은 대표적인 물건부터 여러 장류와 한국 과자, 아이들 장난감까지, 좀 비싸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팔리는 물건 대부분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이런 한인 인프라 덕에 개인적으론 한국을 떠나온 지 20여일 만에 그것도 러시아 땅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먹는 호사를 누릴 수 도 있었다.

이런 모스크바의 한인들이 느끼는 한국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한 듯 했다. 여행객인 나도 살짝 우쭐해진 것에 이상으로, 여러 대기업의 간판과 물건들, 그리고 백화점 건축 소식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나라를 떠나면 더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모스크바의 한인들이나, 내가 느끼는 자부심이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청난 잠재력과 더불어, 너무 불편하고 모자란 현실이 공존하는 모스크바, 이런 모스크바에 대한 생각을 가닥 없이 떠올리며 러시아의 마지막 여행지인 상트 뻬쩨르부르그로 떠났다. 출발하는 기차역까지 함께해주신 최 선생님의 배웅을 받으며, 이런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 이곳에 다시 와봐야겠다는 다짐도 함께했다.

a 뻬쩨르부르그로 가는 야간 열차를 탔던 레닌그라츠끼 역 앞에서

뻬쩨르부르그로 가는 야간 열차를 탔던 레닌그라츠끼 역 앞에서 ⓒ 강병구



[여행팁 11] 모스크바에서의 숙박

모스크바의 숙박비는 상당히 비싸다. 기본적으로 러시아에선 거주등록 문제로 저가의 숙박시설에선 외국인 숙박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도시들에선 여러 가지 요령으로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여행객이 많고, 불심검문이 빈번한 모스크바에서 거주등록이 부정확한 상태로 여행을 하는 것은 경찰과 싸우겠다는 무모한 선언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대부분 값비싼 호텔에 숙박해야하는데 호텔비용이 한국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싸다.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극단적으로 비싼 한인 민박비용은 싼 숙박에 대한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트린다. 대부분 민박집이 성수기의 경우 5만원에서 10만원사이의 숙박료를 요구하며, 평균 1박에 8만 원 정도는 생각해야한다.(2006년 기준) 주로 여행객 보다는 주재원 등의 장기체류자가 많다는 점과, 최근 급격히 늘어난 모스크바 방문객 수, 천정부지로 오르는 모스크바 집값 때문에, 다른 도시처럼 호스텔 같은 가격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나마 잘 찾아보면 새로 생긴 민박집들이 홍보가 덜 되어 싼 가격에 방을 주는 경우가 있으니 한국에서 잘 찾아보고 가자.

마지막으로 전 세계 여행객들이 이용하는 유스호스텔은 러시아에선 여전히 불법이라고 한다. 물론 몇몇 호스텔이 있는데, 거주등록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한다고 하니, 그리 추천할 상황은 아닌 듯하다. 그마저도 별로 싸지 않은 듯.

이상의 상황을 종합하자면, 모스크바 여행계획을 확실히 짜서 체류기간을 최소화하던지, 모스크바에 사는 신세질만한 사람을 찾아보자. 생각 외로 찾아보면 주변에 모스크바에서 도움 얻을 만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필자도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을 통해 모스크바 여행의 도움을 얻었다.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다음 기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음 주 화요일(07/01/02)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다음 기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음 주 화요일(07/01/02)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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